기록보관소

그거

1차 대전의 원인은 유대인에 있다. 저 잔뜩 쳐먹은 돼지들을 보라. 독일 민족이 다시 건강해지려면 분노의 칼을 들어 기생충들을 섬멸해야 한다. 독일인과 유대인이 같은 침대칸을 타는 일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가? 몇 달 동안 3천 명이 넘는 유대인이 베를린으로 이사했는데,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 기생충들이 여기서 무슨 짓을 하겠는가? 이제 그 악마들의 뿌리를 뽑아야한다.

 

문득 궁금해져서 뭔가 찾아보다가 든 생각을 쓸 생각인데, 이 글은 어떤 사람들에겐 매우 불쾌한 글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무시할려고 쓴 게 아니라 그냥 ‘문득’ 했던 생각을 말한 거니까 오해하지 말아줬음 좋겠다.

그리고 저기 첫 문장은 히틀러 선동 방법 이라고 검색하면 히틀러 선동 방법이 아니라 괴벨스 선동 방법이 나오는데, 거기에 나오는 문구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당연히 히틀러가 괴벨스의 간택을 받은 거고 당연히 괴벨스는 편집자일 뿐이었는데, 이상하게 대중에게는 히틀러보다 괴벨스의 선전 방법이라고 자주 나오는 게 약간 의아한 부분이 있다.

기본 컨텐츠는 히틀러인데 편집자인 괴벨스만 가지고 편집의 신이라느니 하는 게 되게 이상한 거 같다. 히틀러 연설 영상 안 본 사람이 없을 텐데, 히틀러 말빨이 더 중요했던 게 아닌가 싶어서. 근데 시간이 정말 많이 지난 후 대중들은 선동에 대한 그 시기의 정보를 괴벨스로만 기억하고 있고 히틀러는 그냥 희대의 쓰레기 정도로 퉁 넘어가버렸다.. 고 생각하는데 여튼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저 문구를 문득 보면서 든 생각이 뭐냐면

왜 유대인은 항상 ‘쓰레기’로 지목받고 차별의 대상이 될까? 라는 생각인데, 그건 그냥 유대인이 돈을 잘 벌어서인 거 같다.

(유대인이 자본가 같은 프레이밍이 씌워진 건 당시 조건 속에서 결국 할 수 있는 게 돈 가지고 돈 놀이 하는 거였기 때문이라는 듯한 뭐 그런 얘기가 자주 보인다.)

내가 지금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결국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은 증오의 대상이 된다라는 점을 문득 떠올렸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도 부르주아니 뭐니 죽창이니 말을 되게 많이 하는데, 이게 참 신기하게도 강남에 건물 한 채 가진 사람도 이재용 같은 재벌이 극혐이라고 그러고 다들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잘 살면 죽창이니 뭐니 그런다.

그러니까 결국 나를 착취하는 인간들이 존재하고, 나를 착취하는 인간들은 나보다 잘 사니까 나보다 잘 사는 사람은 전부 죽창의 대상이 된다고 믿는 거 같단 얘기다.

그런데 사실 자기보다 조금 잘 산다고 자기를 착취하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보다 조금 잘 사는 사람을 자기를 착취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병적으로 화를 내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문득 든 생각이 그냥 어릴 때부터 그런 쪽의 사설 같은 것들을 찾아읽어서 그러니까 괴벨스의 선동을 보면 유대인을 저렇게 묘사하고 죽어야하는 대상이라고 하고 분노의 대상이라고 여기듯이, 결국 그런 식으로 분노의 대상으로 삼고 그래서 그냥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중국인이 한국에서 도움 안 되는 버러지짓을 하는 걸 욕하면 “인종차별”이라고 말하면서 자기가 보기에 자기보다 조금 잘 사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사는 사람을 전부 “죽창을 맞아야 할 사람”으로 규정하는 행동은 옳다는 듯이 생각하는 게 너무 모순된 거 같단 얘기다.

나는 그 죽창의 대상을 상정해두고 분노하는 거 자체는 마이너스 감정이 크니까 별로 보고싶진 않은데, 그렇다고 그게 잘못된 생각인가? 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

 

물론 내가 그 사람들이 가끔 짜증날 때가 있는 건 자기 기준에서 “부자”나 “부르주아”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월 300 받는 사람도 3억짜리 건물 하나 있으면 부르주아고, 20억 강남 아파트에 살아도 부르주아고, 자기보다 못 사는데 건물이라도 하나 있으면 부르주아고, 그냥 자기보다 잘 사는 사람이 다 부르주아라면 자기도 누군가에겐 부르주아일 텐데 그걸 제대로 규정하지 않는 게 1차적으로 짜증나는 거고, 그 다음으로 짜증나는 건 나보다 잘 사는 인간이 내가 마치 부르주아라는 듯이 보는 게 2차적으로 짜증난다. 가끔씩 보면 있다 즈그 할매할배가 서울에 가진 집이 있고 자기네 부모도 괜찮은 지역에 집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자기는 월급 받고 생활해야 한다고 자기를 “가난하다”라고 표현하고, 나는 자기보다 더 나쁜 조건이지만 뭐.. 가난하진 않지 (여유가 없진 않지) 라고 표현하면 나를 부르주아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느그 애미 전세집이 얼만데? 라고 물어보면 서울전세 5억 7억짜리 들어가있으면서 지방 2억짜리 아파트에서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고 “부르주아!!”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게 좀 꼬운 지점이지

뭐 잠시 얘기가 샜는데

 

하여튼 흑인 혐오나 중국인 혐오나 부르주아 혐오나 그 혐오의 원인 자체가 매우 유사한 거 같다는 말이다. 흑인이 혐오되는 건 흑인이 쓰레기라서는 아닐 것이다. 흑인이 다만 예전에 노예로 팔려오고 노예로 살았고 그래서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결국 못 사는 사람이 많으니 마약도 팔고 총도 빵빵 쏘고 그러는 것일 텐데, 결국 그 이미지가 흑인 혐오 대상이 되는 거고

중국인도 별 반 다를 바 없을 것이고

부르주아 혐오도 자기 주변에서 착취하는 자본가가 있거나 어떻게든 돈을 더 벌기 위해 우리를 착취하는 모습을 보이는 뻔뻔한 모습들을 뉴스 등지에서 보기 때문에 우리가 그 분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정작 실제로 내 주변에 부르주아를 만날 일도 없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이렇게 일을 하면서 일개미처럼 살아야 하는 게 누군가가 착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믿기 때문에’ 그러는 거 같단 얘기다.

흑인도 모두가 마약팔고 총쏘진 않을 거고, 중국인도 모두가 그렇진 않을 거고, 부르주아도 모두가 그렇진 않을 텐데 우리는 우리가 봐왔던 경험과 뉴스만을 보면서 나름의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상태에서 미디어를 통해 중국인, 흑인 등을 혐오하고 주변 사람들끼리 그 경험을 기반으로 혐오하면서 그 혐오가 확대,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가끔 주변에 여초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면서 병적으로 여혐하는 사람이나 흔히 말하는 결혼 후 개판나는 생활 등을 언급하면서 여혐을 또 재생산하지 않는가?

그런 거처럼 흑인, 중국인 등에 대한 혐오도 같아보인다.

그리고 이 혐오는 방식이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자본가나 부르주아에 대한 혐오도 별반 다를 바 없는 거 같다.

그리고 이 혐오를 더 강하게 키워주는 게 뉴스 매체인 거 같은데, 결국 조중동이나 경제신문에서 하는 노조 후려까기와 다를 바 없는 걸 여러 자칭 진보 매체라고 하는 곳에서도 똑같이 하고 있을 뿐인 거 같다.

이 생각을 문득 하니까

아 글로 돈 벌어먹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같은 생각이 들더라.

유튜브에 보면 이걸 그대로 실천하는 친구들이 많다. 우파 컨셉 잡고 박정희 찬양하고 노조 까고 할배들이 좋아하는 말 해주면 할배들이 진짜 좋아죽는다. 그게 윤서인이 대표적인 건데 윤서인 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유튜버가 그러고 다닌다.

근데 또 반대에도 그대로 있다. 진보 컨셉 잡아서 그냥 자본가 죽창 이러고 있으면 걔네들도 좋아죽는다.

결국 우리 경험에 있는 무언가들, 우리가 증오를 가지게 될 무언가들을 발견해서 그걸 무시하고 혐오하면 적어도 그걸 혐오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아래로 끌어모을 수 있단 얘기다.

그리고 그건 흑인, 유부녀, 멕시코인, 중국인 등과 같은 우리가 보기에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 뿐만 아니라 부자처럼 애매모호한 것들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데

결국 그 시절에 유대인이 죽은 이유는 결국 부자가 혐오받는 이유랑 똑같은 거였다고 보인다. 결국 이런 혐오의 감정은 결국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강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거 같다.

그런데 그게 요즘 기준에서 pc한 부분을 자극하는 거라면 우리가 잘못됐다고 언급을 하는데, 문제는 pc한 부분을 자극하지 않는 것들-부자-이 더 위험한 거 같다. 왜냐면 유대인이 그렇게 박해받은 것도 그랬을 테니까. 걔네가 잘 사는 사람이 많고 돈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이 많으니 저런 애들을 다 잡아 족쳐야한다고 그럴 수 있었겠지.. 싶어서

 

이 글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근데 내가 보기엔 그냥 그런 거 같다.

내가 따라서 한 번 써보겠다.

 

2020년 3월 대폭락의 원인은 기관에 있다. 저 잔뜩 쳐먹은 돼지들을 보라. 경제가 다시 건강해지려면 분노의 칼을 들어 기생충들을 섬멸해야 한다. 건강하게 돈을 버는 일반 회사원과 사기쳐서 돈을 버는 증권사 직원이 같은 침대 칸을 타는 일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가? 몇 달 동안 몇 천명이 넘는 증권사 직원이 여의도로 이사했는데, 화가 치밀어오른다. 그 기생충들이 여기서 무슨 짓을 하겠는가? 이제 그 악마들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이건 틀린 말이다 전적으로.

대폭락의 원인은 기관에 있지 않다.

금융가 사람이 돈을 가지고 놀고 업무량이 많아서 연봉을 많이 받는 건 맞다. 실제로 사기꾼 같은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인간들도 종종 기사로 뜬다. 그런데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일반 횡령이 종종 발생하듯이 증권쪽에서도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건데, 이런 식으로 혐오를 하려면 끝없이 할 수 있다.

부자에 대해서도 똑같은데 그냥 유대인을 부자로 바꾸면 똑같다. 자기 게임기 버리는 배우자, 흑인, 멕시코인 그 어떤 걸 넣어도 똑같다. 배우자는 게임기 버리고 자기를 통제하고 월급 다 뺏어가고 집에서 노는 쓰레기들이고, 흑인은 마약파고 총으로 사람쏘고 범죄하고 강간하는 쓰레기들이고, 멕시코인은 마약쟁이들인데

 

그런데 우리가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그러니까 그런 경향성을 가지는 조건이 있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그걸 ‘그 사람’이라고 믿는다.

나는 아직도 2020년에 관상 믿는다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어이없는데, 관상이 아예 또 어이없는 건 아니다. 왜냐면 찐따는 찐따처럼 표정을 짓고 다니고 아닌 사람은 즐겁게 표정을 짓고 다닐 건데, 그게 당연히 얼굴에 드러나겠지 그걸 10년 20년씩 하고 다녔으면. 근데 그렇다고 관상이 맞다는 소리는 틀린 거라는 거지.

근데 관상이 맞다고 할 거면 내가 종종 중국인을 혐오하는 거도 공감을 해줘야하는 거고(왜냐면 똑같은 방식의 근거니까), 내가 찐따 혐오하는 거도 공감해줘야지. 근데 그런 건 부정하는데 부자는 그래도 된다..? 이건 이상한 거 같다.

나도 돈 많이 가지고 배부른 소리하는 사람 싫다. 근데 너희들도 내가 중국인 혐오하는 거 싫지 않느냐. 중국인을 비롯해서 국내 외의 다른 못 사는 국가에서 돈을 벌겠다고 3D 직종의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건 걔네가 없었으면 임금이 올라가고 다른 사람이 행복하게 살 일들이었는데 걔네가 들어옴으로 인해 걔네가 저렴한 값에 자기 노동력을 덤핑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계속 불행하게 살아야하는 거다. 수급이 안 맞으니까. 지금 내가 하는 소리 틀린 거 하나도 없다. 당연히 공급이 부족한데 수요가 있으면 가격이 올라야하는데 인력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가? 그게 바로 중국인을 비롯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여러 가난한 국가에서 넘어오는 인간들 때문이다.

지금 너도 내 이야기를 보고 “아니 얘 뭐래..” 라고 할 거다. 아니 공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근데 이렇게 ‘그걸 문제삼고 그걸 없애야한다’라고 말하는 이 방식이 유대인은 바퀴벌레고 죽여야한다! 고 하는 거랑 똑같단 얘기다.

그리고 이건 흔히 말하는 혐오에 다 쓰이는 방법들이고, 내가 아까 말했듯이 PC한 건 “혐오하면 안 돼”라고 하지만 “PC에 포함되지 않는 것(부자)” 같은 건 당연스레 혐오를 한다는 거다.

근데 결국 그것도 하면 안 된다는 거고.

아니면 그걸 허용하고 다른 것도 다 허용해주든가.

그런데 사람들은 이건 허용하지만 저건 나쁜 거다 이런 식으로 자기 기준에서 편을 갈라버린다.

 

이런 식으로 혐오되는 감정을 이용하면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전쟁도 일으킬 수 있다. 2020년에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단지 그 시대의 상황처럼 모두가 분노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뿐이다.

1차 세계대전으로 핍박받는 독일인이 있었기 때문에 그 분노의 감정이 너무 커져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거지, 만약 그런 경제상황이 없었다면 히틀러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선전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까 결국 그런 식으로 누군가를 향해 증오와 분노의 칼날을 들이미는 건 결국 자기자신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기 가장 좋은 조건이라고 보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부자 혐오든 가난한 사람 혐오든 어떤 혐오든 간에.

 

누군가는 매체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할 것이다. 그 때 이용하기 가장 쉬운 게 특정 부분에 대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버튼 눌린 거처럼 행동하는 혐오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메갈을 욕하고 일베를 욕하면, 부자를 욕하면 가난한 사람을 욕하면, 노조를 욕하면 어딘가에서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당연시 되는 순간 처음에 그 ‘경험’ 정도로 잘 모르던 사람도 그걸 ‘원인’으로 규정해버리고 그런 식으로 병적으로 혐오하게 되고 그러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리고 아 나도 뭔가 혐오하고 무시하면 관심받을 수 있을까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나도 가난한 사람 후려까고 노조 까거나 아니면 아예 반대 노선에 있는 참여연대처럼 그런 식으로 하면 되나 그런 생각도 들고 그러더라

걍 그렇게 하면 관심이 0이 아니라 적어도 10 정도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구~ 마치 얼굴 달고 스트리밍하면 안 봐주는데 판때기 달면 오타쿠들이 좋아죽는 거처럼 말이야 거기도 하꼬는 많겠지만 0명이 아니라 50명이라도 봐주는 게 판때기 달아서인 경우도 많자너. 없었으면 0명이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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