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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라는 책이 있는데, 선물 받았는데 솔직히 많이 못 읽었다. 많이 못 읽었다기보다 읽다가 굳이 이걸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조금 들어서 굳이 안 읽고 있다.

나는 원씽 이라는 책을 군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그 책에서 몇 가지 배운 게 있는데, 그 중 가장 커다란 무언가가 뭐였냐면 재미없으면 책을 덮고 의미없다고 생각되도 책을 덮고 다 읽었다고 생각되는 책도 그냥 덮는 거였다.

왜 그런 걸 배웠냐면, 그 책을 읽다가 어떤 글귀에 그런 게 있었다.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였나 뭐 그런 문구였던 거 같은데, 나는 그 글귀를 내 식대로 내 마음대로 내가 듣고싶은대로 받아들였다.

그걸 읽다가 정확히 어떤 내용인진 잘 기억 안 나지만, 책을 다 읽었다고 생각되거나 더 얻어갈 게 없다고 판단되면 그냥 그 페이지에서 책을 덮는 걸 배웠다. 왜냐면 그 책 내용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나는 결국 그 책을 완독해야한다는 생각이 끝까지 다 읽었고 후회했기 때문이다. 초반 20% 정도 읽었을 땐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끝까지 읽고 만족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책이 더 이상 할 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때 접어야한다고 그 때 깨달았는데,

그 뒤로 거기에 해당하는 책이 머니볼이었는데, 한 70 페이지 정도 읽고 매우 만족했다. 그 뒤로는 더 이상 읽지 않았다. 어차피 이 책의 내용이 여기서 완결이구나 싶었기 때문에.

여튼 그래서 아니다 싶은 책은 더 안 읽는데 이 책도 처음에는 흐음 하다가 나중에는 굳이? 하는 생각이 들어서 (왜 굳이? 라고 생각했냐면 내가 개인적으로 하는 얘기를 남의 눈으로 또 봐야하나? 같은 생각을 느껴서) 안 읽고 있다.

그 저자의 글과 내 생각이 유사한 점은 딱히 없을 수도 있는데 그냥 말하는 방식이 비슷해서 그렇게 느끼나 싶기도 하고, 솔직히 별 다를 게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내용은 다른데 바라보는 관점? 바라보는 기준? 이 유사해서 아 이 뒤에도 대충 이런 느낌의 글로 이어지겠구나.. 싶어서.

여튼 여기까지는 안 읽고 있는 이유의 이야기였고

그래서 남이 읽는다고 하면 비추천. 그냥 나랑 자세한 생각 나눌 정도로 깊게 친구하면 되지 않을까? (뜬금)

 

여하튼 문득 저 제목으로 글을 쓰는 이유가 뭐냐면 그냥 힙합 얘기가 조금 하고 싶었다.

저게 제목인데 저걸 제목으로 삼은 이유가 있긴 있구나 싶었다. 요새 사람들은 남의 이미지만 소비하면서 자기 삶을 잊으려고 한다 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인스타그램에는 뭐 절망이 없다 그런 내용의 부분이 있는데

내가 취미로 요리하는 남자 채널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왜 이렇게 화려한 채널을 보고 있을까. 그리고 약간의 현탐도 왔다. 나는 이런 채널을 보면 종종 현탐이 온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다들 현탐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채널은 은근히 인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우결 같은 프로그램도 인기가 많았고, 이 외에도 내가 지금 생각이 안 나서 예시를 들긴 힘든데 이러한 대리만족형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건 많았다.

그래서 이게 시대의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이 부분에서 가장 언급하기 좋은 건 흑인과 힙합이다. 흑인 노래를 들으면 돈 자랑, 가사 자랑이 많다. 흔히 흑인이 성공하고 자기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그런 가사를 쓴다고 하지만, 갑자기 문득 드는 생각이 그게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좋은 가사를 써도 그 가사를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자기네가 아무리 돈을 과시하고 싶어도 듣는 사람이 싫어하면 안 쓴다. 반면 그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 가사를 쓴다.

그런데 흑인은 쓴다. 힙합은 돈 자랑을 존나게 한다.

그런데 한국은 예전엔 그런 게 안 먹혔다. 2010년대 이전. 그런데 지금은 먹힌다. 아주 잘 먹히고 누구나 좋아한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일리네어 때부터 가속화되기 시작해서 (2010년대 초) 언에듀케이티드 키드의 유행 (2018년 즈음)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이게 왜 그럴까?

왜 못사는 흑인은 돈 자랑을 존나게 하고

왜 못 살게 된 지금 시대를 사는 10-20대가 돈 자랑 하는 힙합을 좋아하는가?

 

결국 삶이 힘들수록 삶을 잊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삶이 힘들수록 삶이 팍팍할수록 오히려 더 화려한 걸 찾아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명품을 쓰지 않아도 명품 자랑하는 래퍼의 노래를 듣고, 잘난 연인이 없어도 우결에서 연예인급 연인을 소비하고, 인스타에서 잘 생기고 잘 사는 사람의 이미지를 소비해야만 한다.

내가 가장 비참해질 때는 거울을 볼 때다. 거울을 보면 못 생긴 사람이 하나 있고 되게 그지같은 사람이 하나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 거 처럼 우리는 힘들수록 현실을 직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힘들수록 더 좋은 걸 보고 더 화려한 걸 쫓고 더 화려한 일상을 소비하고 싶어한다. 내가 꿈에서 깨어나면 너무나 서글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이를 소비할 수가 없었다. 주변에 다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으니까, 자기의 주변 사람들과의 무언가에서 그걸 찾아내야만 했다. 인터넷이 없었고 스마트폰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미지를 매우 간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시대가 와버렸다. 삶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으로 월 N만원만 납부하면 무제한으로 이미지와 영상을 소비하면서 남의 잘난 삶을 내것처럼 소비할 수 있다.

나도 인스타에서 잘 생긴 셀럽 사진을 보면서 연애도 안 하는데 내 옆에 저런 친구가 있는 것마냥 저런 친구와 연애라도 하는 것마냥 대리만족을 느낀다. 우리는 그저 사진을 보기 위해 팔로우하고 있는 거 뿐이지만, 그걸 볼 때마다 그런 대리만족이 있는 건 분명 사실이다.

이건 인스타 셀럽만 그런 건 아니다. 우리가 연예인을 보면 친구처럼 여긴다. 실제로 전원책 같은 사람도 항상 썰전 하던 시기에 주변에서 되게 친구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 할배가 말이다.

나도 인스타를 보면 네오 아카리랑 친구가 된 거 같고 창민이나 성호랑 친구가 된 거 같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네오 아카리와 친구도 아니고 창민이나 성호랑 친구도 아니라는 점이다. 내 손을 뻗었을 때 절대 닿지 못 하는 곳에 있는 친구들이고, 나는 평생 살아가도 저런 친구와 길거리에 지나치다 보는 거 말곤 마주할 일이 없다. 그런데 그런 친구를 내 옆에 두고 마치 내가 걔네의 친구가 된 거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단 얘기다.

그런데 그거 알고 있나? 서울대가 아닌데 서울대에서 서울대인 척 하고다니면 진짜로 자기가 서울대생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런 거처럼 우리가 단순히 우리 옆에 저런 잘난 친구들을 팔로우하고 보고 있을 뿐인데도 우리는 걔네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단 얘기다.

나는 솔직히 어느 정도 대리만족 했던 거 같다. 내가 마치 잘 생긴 사람의 친구라도 되고 잘 생긴 사람이라도 된 거마냥 약간은 소비했던 거 같다. 처음에는 그저 잘 생긴 사람 관음할려고 한 거지만, 부작용으로 그런 대리만족도 느꼈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시대가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로 바뀐 게 아니라 원래 인간은 대리만족을 하면서 살아왔다.

단지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속으로 자리 잡으면서 그걸 일상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 아닌가 싶다.

그간 힘들면 음악과 같은 그런 요소에 의지하는 장재인 같은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음악에 의지하는 시대가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소비할 수 있는 모든 컨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마약을 걸어다니면서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힘들수록 행복한 걸 보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이건 졸라 그지같이 사는 흑인이 돈자랑 힙합을 즐겨듣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고 점점 살기 팍팍해지는 한국에서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걸로 증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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