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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로의 신뢰

타인을 신뢰하는 일은 주먹을 쥐고 네 번째 손가락을 빳빳하게 펴는 일이다. 평범한 사람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이용해서 끝까지 밀어올릴 때만 제대로 펼 수 있다.

나는 못 생겼기 때문에 실망감을 주고 싶지 않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친구를 만나지 않는다. 예전에야 만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 중 왜 안 만나주냐 나를 싫어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나는 너를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싶어할 정도로 좋아하는데 너는 나를 만나주지 않으니 너는 나를 고작 버튼 하나로 연을 끊을 수 있는 온라인 인간 정도로만 생각하는 거 같다.

이 때, 내가 “나는 정말 인간 이하일 정도로 못 생겼다. 만나봐야 너는 실망하고 나는 쌩까인다”라고 말했을 때 이를 신뢰하는 상대는 없다. 나는 진심인데.

물론, 상대도 “나는 외모 정말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도 진심이었을 거고 나도 그걸 믿지 않는다. 나만 피해자인 척 말하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신뢰라는 게 전부 이렇다.

“근거”가 없으면 믿질 않는다.

내가 못 생긴 외모 사진을 주면 되겠지만 내가 못 생긴 얼굴 사진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면 오프라인에서도 만났겠지. 하지만 못 생겼기 때문에 만나질 않는 사람이다보니 사진도 줄 수 없는데, 정작 사진을 주지 않으니까 근거가 없어 자신의 상상대로만 상상하고 나의 말을 구라라고만 믿는다.

내가 투페이스처럼 나머지 반은 해골인 얼굴을 가졌다, 라고 하면 너무 비현실적일까? 현실적으로, 입이 돌아가고 사시에 눈 크기도 짝눈이고 더러운 피부에 고개를 항상 45도 정도로 기울이고 다니고 피부는 짙은 황색에 머리는 꼬불거리는 개털 머리인 원형탈모의 사람이라고 상상해보길 바란다.

그런 사람이 과연 사진을 남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나는 나의 행동 자체가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믿질 않는다.

왜? 자신의 경험 내에서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친구를 만나면 아무리 못 생겨도 아래의 이미지처럼 생긴 사람만 나온다. 아래의 경우가 가장 최악이고 보통 이보다 더 멀쩡하다. 저 사람과 큰 차이 없게 생겼더라도 살은 덜 쪘고 나이도 덜 들어보이고 저딴 표정도 안 지을 테니까.

살아있어서 요캇타 (아이마스)

이렇게 생긴 사람만 나오니까 못 생겼다고 하면 이렇게 생긴 사람만 상상을 하고, 결국 “못 생기긴 했지만 사람같지 않을 정도로 못 생겼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람 같게는 생겼겠지. 저 사람이 외계인은 아니니까. 이 정도면 괜찮은데. 혼자서 은연 중에 그렇게 생각하고 저는 괜찮으니 같이 밥 한 번 먹자고 하면서 자꾸만 만나자고 한다. 한 번도 본 적 없으면서.

내가 한 말을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의심하고, 나의 말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신뢰한다. 내가 투페이스처럼 생겼으면 어떡하려고?

투페이스

자신과 만난 사람이 길거리 모든 사람의 이목을 끌 정도로 기괴하게 생긴 사람이면 어떡하려고? 얼굴 반이 다 드러나서 근육과 뼈가 보이면 어떡하려고? 정말로 그런 사람과 만났을 때도 감당할 자신이 있다고?

지금의 나도 글 내내 상대방의 “못 생겨도 괜찮다”는 말을 의심한다.

왜? 나는 실제로 만났다가 쌩까여본 적도 있고, 반대로 내가 쌩깐 적도 있다. 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외모를 매우 중요시한다. 왜? 나는 얼빠니까 하기 싫어도 하게 된다. 잘 생겼으면 호감도가 아무 일 없어도 상승하지만 못 생겼으면 호감도가 아무 일 없이도 떨어진다. 지내다보면 못 생긴 사람의 외모도 신경쓰진 않지만 최소 몇 주는 그 외모로 인해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타인의 “괜찮다”는 말을 못 믿겠다. 내가 일반적으로 평범하게 안 생겼다고 판단되었을 때 나는 분명 쌩까일 테니까.

10년 전에 블로그에서 친했던 삼성전자 다니는 수원 사는 누나를 만났는데 내가 너무 찐따처럼 생겼는지 다음 날부터 더 이상 블로그를 하지 않게 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어떤 친구가 만나자 만나자 너무 조르고 졸라서 자꾸만 어필해서 만났더니 그 뒤로 나에 대한 상냥함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적도 있다.

그래서 믿을 수가 없다 나도.

다른 사람들도 이와 같은 이유들로 나의 말을 믿지 않는 거고.

신뢰는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도 대부분은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처음 말했듯이 “네 번째 손가락을 밀어올려주면” 손가락은 펴진다. 밀어올려주는 지지대가 없다면 다시 내려앉겠지만, 우리는 어떠한 확실한 근거를 내보임으로 상대의 신뢰를 이끌어낼 수 있다.

당장 내가 사진을 주면 상대방도 내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고 고려해주겠지. 내가 보여주기 싫어서 문제일 뿐.

 

하지만 감정은 속을 까뒤집어보지 않는 이상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 내가 프로필에 이민결 사용설명서를 잔뜩 써놓은 이유도 처음부터 의심을 하지 않길 바라서다. 이렇게까지 써놨는데 근거가 없다고 의심하진 않겠지. 그럼 나에 대해 오해하지 않겠지.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 라고 말했을 때, 너는 나를 싫어한다 라고 의심하면 자신의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라는 말을 의심한다. 아무리 좋아한다고 증명해주고 싶어도 속을 까뒤집어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근거도 제시할 수 없다.

행동적으로 꾸준히 납득시켜주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해하겠지만 자존감이 엄청 낮고 정신병자에 가까울 정도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면 보통 사람은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엄청나게 납득시켜주어도 끝까지 납득하지 못 한다.

결국 신뢰는 타인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다.

 

하지만 이를 알아도 상대방의 말을 신뢰 못 하겠을 때가 있다.

내가 의심병에 빠지게 되는 순간이 있다.

자존감이 떨어지면 내가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고, 그러다보면 타인의 작은 행동에도 불안이 생긴다. 내가 최근에 쓰레기처럼 행동해서 나를 싫어해서 저러는 게 아닐까?

그 때 상대방에게 물어보곤 한다.

대부분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의심은 한 번 시작하면 내 자존감이 차오를 때까지,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란 확신이 들 때까지 나를 지배한다. 저 사람의 말이 그저 상처를 주기 싫어서 한 말은 아니었을까? 사실 나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러는 게 아닐까.

 

최근에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다. 그래도 나는, 신뢰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고 대부분은 구라를 치지 않고 주변 사람을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티는 최대한 안 내고 있는데(났을 수도 있지만), 그런 기분을 느끼고는 있다.

여기서 헤어나가는 게 쉽지가 않다.

상대가 어필을 해준다고 바뀌지도 않는다. 왜?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니까. 나의 처지가 나아져서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면 상대가 증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의심은 사그라든다. 단지 내가 쓰레기같은 사람이라 내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올 뿐이니까.

혹여나 내가 어느 날 의심이 쌓이고 쌓여 터져버리면 조금만 양해를 부탁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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