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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

나도 불과 1년 전? 까지만 해도 싫어하는 사람을 엄청 많이 관음했었다. 왜인지 신경쓰이고 솔직히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러지 않는다.

어느 순간이었을까. 그걸 느꼈다. 아 내가 왜 이런 사람한테 내 관심을 쏟고 있지? 그리고 정말 그 사람이 싫어서 기억에서 지우고 싶으면, 최대한 생각을 안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생각을 하고나서부터는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아예 안 들어가는 수준은 아닌데 들어간다하더라도 1년에 3회도 채 되지 않는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일절의 관심을 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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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쫓지말고 돈이 쫓아오게 하라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과거 “시장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었는데, 이 보이지 않는 손의 문제점은 실제로는 “시장주의가 아니었다”라는 점이다.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건, 수요가 부족하면 가격이 상승하고 가격이 상승해서 이익이 창출되기 시작하면 그 산업에 달라붙는 사람이 늘어나 다시 공급이 추월하고, 반대로 공급이 많을 때는 사는 사람이 없고 경쟁을 하다보니 점점 망하게 되면서 망할 만큼 망하게 되면 다시 생산자가 적어지고 수요가 많아짐으로 가격이 정상화되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그런데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대표되던 시장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항상 커다란 기업이 무너질 땐 모두가 피해를 입기 때문에 결국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더라도 결국 기업을 어떻게든 지켜준다는 점이였다.

기업을 지키는 과정에서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이 거지같은 구조 때문에, 노동자는 짤리고 경영자가 회사에 들이부은 자본은 지켜질 수 있는 거였다. 그리고 구조조정의 특징은 항상 “쓸모없는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건데, 대체불가능한 고급 사무(영업, 재무, 기술 등 => 대체로 좋은 부모 밑에서 교육을 받았을 확률이 높음) 인력은 정말 IMF급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아무런 일도 겪지 않고 만약 짤린다고 해도 다른 기업으로 이직도 가능하며 자기가 회사를 차릴 자본도 이미 많이 구해놓은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여하튼 이런 이유로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주의자들의 이익대로 사용되었을 뿐, 제대로 그 원리를 실천했던 적은 없다시피 하다. 대공황 때부터 쭈욱.

 

돈을 쫓지말고 돈이 쫓아오게 하라는 말도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다를 바 없다.

 

돈을 쫓지말고 돈이 쫓아오게 하라는 건 열정페이를 받고 일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돈을 최우선가치로 두지말고 내가 원하는 걸 하다보면 돈이 쫓아오게 된다는 얘기일 뿐이다.

예를 들면 당신에게 웹툰 작가로의 꿈이 하나 있고, 하나는 먹고 살기 위해 적당히 공무원 혹은 대기업에 취직할려고 하는 인생 설계가 하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은 돈 때문에 대기업에 취직을 할 수 있을 때 대기업에 취직을 한다.

잘 생각해보자. 우리가 치킨을 먹을 때 3천원 할인 쿠폰 주는 1만 6천원짜리 A 치킨(결제가격 : 1만 3천원)과 맛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치킨이지만 배달비까지 다 하면 1만 9천원인 B 치킨이 있다. 그리고 내가 집에서 직접 만드는 C 치킨도 있다.

만약 우리가 치킨을 먹었을 때 만족도가 어떤 게 가장 높을까? 당연히 누가 뭐라고 해도 B 치킨이다. 하지만 우리는 “돈 때문에” “할인 때문에” A 치킨을 먹으면서 불만족을 한다.

물론 돈 때문에 A치킨에 만족하는 사람도 분명 있긴 하다.

그리고 C 치킨도 있다. C 치킨은 내가 직접 만들어먹어야하고 매우 번거롭지만, 닭정육 가격까지, 기름가격 한 20회 쓰는 거까지 생각하면 8천원에 해결할 수 있다.

C치킨은 노력하는 거까지 다 따지면 정말 피곤하다. 그런데 돈 때문에 C 치킨을 선택하면? 스트레스 그 자체다.

이 얘기는 B를 선택해야 좋다는 게 아니다. 내가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면 C가 만족도가 높을 수 있고, 내가 돈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A가 낫고, 일반적으로 만족도를 생각하면 B가 낫다.

그러니까 목적 자체가 돈인 사람과, 돈이 목적은 아닌 사람과, 만드는 게 목적인 사람에 따라 선택지가 다 달라진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A가 아니라 B, C 정도에 있다.

C인 사람이 게임회사에 취직한 상태인데 연봉 때문에 A라는 회사에 가서 모바일 가챠 똥겜 배끼는 것만 만든다면 게임 때문에 불행할 수도 있다.

반면 돈이 목적인 사람은 돈이 쫓아오게 하라고 해서 나는 게임 만드는 사람이니까 게임이 중요해 하면서 C로 갔다면 그 또한 불행하다.

B인 사람도 C나 A를 선택해서 불행할 수 있다.

 

돈이 쫓아오게 하라는 말은 열정페이를 납부하면서 하고싶은 일을 하라는 게 아니다. 열정페이 강요당하면서 일해봐야 2000년대 초반 넥슨 배 불려주는 직원 그 이상 그 이하도 안 된다. 당시에 넥슨 퇴사하고 던파 만든 개발자, 넥슨 퇴사하고 메이플 만든 개발자는 자기가 일군 회사 넥슨에 팔아서 돈 잔뜩 벌었다.

잘 생각해보자. 던파 만든 개발자나 메이플 만든 개발자는 돈 때문에 나갔나?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게임 만들러 나갔다. 저런 게 “돈이 쫓아오게 하라”는 의미지,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대우도 못 받으면서 죽자사자 하는 게 돈이 쫓아오게 하라는 말이 아니다.

어차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더라도 나의 가치는 합당하게 받아야 한다. (물론 합당하다는 건 절대적인 합당 수치가 아니다. 웹툰처럼 시장이 초기라면 분명 돈을 못 받는다. 그런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만약 돈이 목적이 아닌데 돈만 보고 이직을 하거나, 게임이 목적이 아닌데 죽자사자 한 게임에 매달려있거나 그러고 있으면 당연히 망한 선택이다.

 

모 디씨 갤러리에서 웹소설 작가가 정말 많이 나왔다. 얘네는 10년 전이었으면 라노베 워너비질이나 하고 거지처럼 다 망한 채로 결국 거지같은 직장에서 지내고 있었을 텐데 지금은 웹소설 시장이 정말 흥해버려서 그 중에서 돈 꽤 잘 버는 친구들도 엄청 많이 나왔다. (안 간지 한 2~3년 넘어서 모르겠지만) 얘네가 만약 돈 때문에 글을 포기했다면 지금처럼은 안 됐을 거다.

이런 예는 정말 많다. 임요환, 페이커와 같은 프로게이머도 있고 조석 같은 웹툰 작가도 있다.

 

물론 열정이 다 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돈이 안 되는 거에 20년 붙들려있다고 빛을 보진 않는다. 엄청나게 많은 운도 겹쳐져있어야하고 재능도 겹쳐져있어야 한다. 아무리 게임을 좋아해서 게임에 죽자사자 들러붙어있어도 주변의 평가가 쓰레기라는 평가밖에 없다면 그 사람은 죽어도 회사에서 대접받을 수 없다. 반면 게임에 정말 열정적이라면 지금 당장 페이가 적더라도 임원까지는 단순히 뛰어가는 사람도 분명 있다.

 

돈이 쫓아오게 하라는 건 돈만 보고 선택하지 말라는 얘기일 뿐이다.

예를 들면 고등학생 야구선수처럼 말이다. 프로팀과 대학을 선택해야 하는데 돈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프로팀을 선택했고 프로팀에서 제대로 된 데뷔조차 하지 못 하고 은퇴한 사람의 일화가 있다. 그리고 그 뒤로 절대 돈 때문에 결정을 바꾸진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게 세이브매트리션에서 이름 좀 날렸던, “머니볼” 주인공인 빌리 빈의 현역시절 이야기다.

 

그리고 돈이 쫓아오게 할려면 당연히 그 누구보다 잘해야 한다. 고작 게임회사 다니면서 남들만큼 일하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니까 돈이 쫓아올 거라고 기대하는 거라면 욕심이다 그것도.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걸 누구보다 잘 해야 돈이 쫓아온다. 잘 해야. 누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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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둔 글 주워서 쓰기

요새 글이 확 줄어든 이유

저기서 포스타입 임시글에 관한 얘길 했었다. 그런데 솔직히 저기 써둔 내용 대부분 완성할 거 같지가 않다 저기서. 그래서 여기에 간단하게 어떤 내용을 쓰려고했는지 모아서 풀어낼 생각이다. 어차피 휴지통으로 갈 거라면 이렇게 짧게라도 써두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좋아함을 받는다는 것

타인의 좋아함을 받는 행위는 누군가에게 버려질 수 있단 얘기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그렇게까지 신경쓰진 않는 편인데,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엄청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아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같은 고민을 생각보다 많이 한다.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개같은 행동을 하면 솔직히 내가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 아닌 이상은 별로 신경 안 쓰인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미움을 샀을 거 같은 말을 했을 땐 말을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불안하다.

뭔가 SNS에서 쓰레기같은 말을 하고 누군가가 싫어하면 어떡하지 같은 일들.

뭐 이런 거야 개인적인 얘기긴 한데, 이건 조금 폭넓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아이돌을 좋아할 때 흔히 아이돌이 갑이고 우리가 을처럼 묘사된다. 그런데 이는 대체재가 있는 사랑을 받는 사람의 기준에서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딜레마는 남팬만화 같은 아이돌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인기없는 아이돌에게 열심히 덕질하는 열성적인 팬들이 있다. 그런데 이 인기없는 아이돌들은 인기가 없다보니까 자신에게 열정적인 팬들을 좋아해줄 수밖에 없다. 물론, 아이돌 하는 애들의 나이가 어리다보니까 외모로 차별하고 저런 애들에게 내가 왜 비위 맞추고 있어야하지 해서 아닌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이 을이 되고 팬이 갑이 되는 상황이 분명 있다. 팬은 언제든지 덕질을 그만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사랑이 언제 끊길까 두려워 불안함에 떨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좋아함을 받는다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다. 감당해야 할 무거움이 있을 수 있다.

 

싫은 술자리

나는 분명 싫어하는 술자리가 있다. 나는 솔직히 아빠와 술을 마시는 게 싫다. 아빠 뿐만은 아니지만. 아빠는 평소에 내게 못 했던 말을 밥을 먹을 때 주제랍시고 툭툭 던지고, 술 먹을 때도 툭툭 던진다. 솔직히 생각해보자. 평소에는 결혼 안 하니? 같은 질문을 안 하던 사람이 밥 먹을 때마다 말할 기회가 생겼답시고 여친 없니? 결혼 생각없니? 같은 질문을 해대면 누가 좋아할까? 이건 그나마 평범한 예다. 이보다 더 심한 질문, 더 짜증나는 질문은 차고 넘친다.

나는 그래서 술 마실 때 술을 기반으로 평소 못 했던 말을 내게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술자리와는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대화할 기회가 생겼을 때마다 주제랍시고 거지같은 주제를 던져대는 사람과 대화하기 싫을 뿐이니까. 그런데 단지 그런 사람들은 술을 마셨을 때 더 많이, 더 심하게 내뱉는다.

여하튼 그렇다보니 나는 아빠와는 밥이나 술 먹는 일을 억지로 피한다. 절대 같이 안 먹으려고 한다.

사람 간에 대화가 하고 싶다면 대화 할 만한 주제를 꺼내야만 한다. 항상 민감한 주제, 거지같은 주제를 주제랍시고 꺼내면 그 사람은 기피대상 1호밖에 안 된다. 특히 술 먹고 평소 못 했던 말을 하는 사람들 피곤할 때가 많다. 어차피 대부분 상처주는 말이고.

 

부모따라 강남간다

솔직히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돈 쓰는 걸 아까워한다. 솔직히 이게 자식에 대한 사랑인가? 싶을 때가 있다. 동생도 그걸로 아빠랑 싸웠던 적이 있다. 나한테 그거 쓰는 게 아까워요? 같은 말을 했던 거 같던데 솔직히 공감한다.

그게 그렇게 아까운가? 싶을 때가 있다.

여하튼 부모님은 구질구질하다. 그런데 문제는 나도 구질구질하단 점이다. 나는 부모의 기분 나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안 해야지 하면서 생각을 했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닮은 면이 분명 있다. 그냥 어릴 때부터 그렇게 키워져왔고 그렇게 생각을 하다보니까 어느 면에서는 분명 닮아있다. 내가 아무리 의식한다고 해도 내가 의식하는 지점만 그렇게 안 할 뿐 의식하지 못 하는 점에선 닮아있다.

자기도 모르게 부모를 닮고 부모 따라 강남가게 되는 경우가 분명 있다.

 

동성애

나는 남자와 여자 둘 다 좋아한ㄷ. 취향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처음으로 남자”도” 좋아한다고 느낀 건 초등학생 때 소풍갔던 날이었다. 소풍가는 길 단체로 같이 탄 버스 안에서 문득 성적인 감정을 느꼈다.

여기까지 써져있는데 그 뒤로 무슨 얘길 하려고 했던 건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남자와 여자 둘 다 좋아하는데 여자를 조금 더 좋아한다.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데 나는 남자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보는 야동도 망가도 전부 노말이고 이입하는 것도 남자가 여자 따먹는 부분에만 이입하고 게이들이 절대 안 좋아할 법한 요소로만 야동을 본다. 나는 여자가 더 좋다.

근데 여자는 여자 특유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러다보니까 일상적으로 여자를 좋아할 일은 별로 없다. 여자도 나를 별로 안 좋아하고 나도 여자 성격을 별로 안 좋아하다보니까 서로 겹칠 일이 별로 없다. 반면 남자는 성격이 마음에 드니까 외모가 조금 별로거나 그래도 조금 꼴리면 대충 좋아할 수 있다.

그리고 SNS같은 곳에서는 여자를 좋아해도 여자 좋다고 말하기가 힘든 게 “한남충이세요?”같은 소릴 들을 확률이 높아서 굳이 여자 얘길 안 한다. 나는 남자한테 치는 드립을 여자한테도 똑같이 칠 수 있어야한다고 믿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해도 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나를 이상한 범죄자처럼 취급할 수 있다.

그래서 굳이 남자 얘기만 하는 거지 난 여자가 더 좋다.

물론 진짜 귀엽게 생긴 사람만 따지면 그러니까 정점의 외모만 따진다면 남자가 더 낫다. 하시모토 아리나나 네오 아카리 같은 친구들보단 송형준이나 응팔 때 박보검이 낫지. 근데 일반인 기준에선 여자가 훨씬 낫다..

근데 딱히 무슨 주제를 이야기하려고 했던 건진 모르겠다 쓰다보니깐. 여튼 그렇다!

아 이렇게 말하면 뭐 남자를 안 좋아하나? 할 수 있는데 아니오 그거도 아니다. 남자도 좋아한다. 보통 남자는 여자를 보면 그냥 보지만 달려있으면 다 좋아하지 않나? 나도 외모 합격점(평범 정도만 되도)만 되고 성격 조금 괜찮으면 다 좋다.

근데 번탈남이 여자한테 좋아한다고 하면 여자가 개불쾌해하고, 그리고 많은 남자가 여자한테 그런 어필을 안하듯이,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남자가 있어도 그런 어필 진짜 웬만해선 잘 안 한다. 하는 사람이 없다곤 안 하겠는데 웬만해선 있어도 안 한다.. 간접적으로는 조금 티 낼 때 있는 편이긴 한데.

근데 또 짜증나는 건 별로인 애가 자기 따먹을 거라고 생각하나? 하면 그거도 개빡침. 못생긴 여자가 도끼병 걸린 게 졸라 개꼬운 거처럼 애매한 남자애가 도끼병 걸리면 얼마나 빡치겠냐구.

 

왜?

다들 왜?라는 질문을 하고 살라고 말하지만, 정작 왜? 라는 질문을 하면 대부분 사람은 싫어한다. 나도 그렇다. 나도 나한테 따박따박 반박하는 사람 개꼬울 때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

나는 솔직히 당연한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보니(그래서 이상한 새끼라는 말도 많이 듣고) 왜? 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런데 왜? 라는 질문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방금 말했듯이, 나를 싸이코 취급하거나 정신 나간 놈 취급을 한다.

왜? 라는 질문을 가지면 안 된다 세상에선.

왜? 라고 질문하라는 인간들은 그저 정론인 이야기를 하는 것 뿐, 그렇게 살아서 그렇게 행동하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왜? 라는 의문을 가지는 순간 엄청 불쾌해한다.

 

가격과 만족도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매하려고 검색을 하고 있을 때, 일반적으로 비싼 제품이 좋은 제품이라는 걸 이해하면서도 잘 와닿지는 않는다. 대개 가격도 유사하고 평점도 유사하기 때문에 이걸 사나 저걸 사나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캣폴을 하나 사려고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제품을 검색할 때마다 가격이 곧 품질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3만원대 캣폴, 5만원대 캣폴도 있다. 하지만 이 제품의 리뷰는 지지가 약하다는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옆의 20만원대 제품을 보면 100명이 넘는 구매자가 평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점이 5점이다. 놀랍게도 이 정도 가격대의 제품들은 4점 이하가 별로 없다.

우리는 치킨을 하나 먹을 때조차 1천원, 2천원 할인 때문에 좋아하는 치킨을 거른다. 그런데 고작 그 1, 2천원 때문에 엄청나게 불만족하면서 먹게 된다.

우리는 1, 2천원을 투자하는 한이 있더라도 만족할 만한 제품을 사야한다. 비싸다는 이유로 썩은 책상, 썩은 의자를 사용하다보면 결국 후회한다. 비싸다고 좋은 제품은 아니지만 비싼 게 대부분 만족도가 높다.

누구나 생각하는 뻔한 얘기지만 캣폴 보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사이버 구걸

포스타입에서 글 쓰는 게 사이버 구걸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가격을 지불하고 그에 합당한 무언가를 파는 거지만, 개당 200원, 300원하는 글이 잘 팔리지도 않는데 이러고 있으니 바구니 내밀어두고 돈 던져주길 기대하는 사람처럼 보이더라.

물론 이런 말은 하면 안 좋다. 구매해준 사람이 기분 나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유튜브 같은 것도 그런 게 아닐까? 물론 그건 사람이 던져주는 건 아니지만, 가끔 악기 가지고 공연하고 앞에 모자 놔두면 거기에 돈 던져주고 가는 것들. 그런 것과 다르지 않지 않을까? 싶더라.

그 사이버 구걸과 정당한 크리에이터와의 그 미묘한 사이 지점에 대해 잘 모르겠다. 잘 되면 구걸이 아니고 실패한 사람은 구걸인가 싶기도 하고.. 그냥 뭔가 자꾸 봐달라고 하는 게 구걸처럼 문득 느껴지더라.

근데 이게 꼭 그런 식으로 자학할 필요는 없는 게, 음식시장이나 마트만 가도 시식코너로 호객을 하고 자갈치 시장에서도 호객을 하는데 그렇게 호객하는 게 당연한 거고 다들 광고하는 게 당연한 건데.. 이런 생각을 하면 평범해보이긴 한다.

사이버 구걸이라는 게 내가 실적이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기도 하다.

여튼 그런 생각이 문득 들더라.

 

내가 보는 것의 가치

나는 저번부터 말했지만 인방을 16년 즈음부터 많이 봤다. 하지만 불과 올해 초까지만 해도 인방은 무시당하는 요소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나도 철구 같은 이미지 때문에 솔직히 조금 그렇긴 해 하고 있었고, 내가 보는 게 다른거라는 걸 인지하면서도 쟤네가 저렇게 무시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납득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18년, 19년 되면서 점점 인방이 대중화되면서 그 때부터는 솔직히 까일 때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아 인방이 이렇게 많이 바뀌었는데 아직도 철구 타령을 하네 싶었으니까.

그렇게 무시를 많이 당했었다. 대놓고 하는 사람이야 없었지만, 은연중에 그 무시하는 날선 문장들을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사실 내가 보는 게 꼭 남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없고, 남이 무시받을 만한 요소일 수도 있다. 남의 시선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내가 잘 보고 즐기면 됐지 왜 남들에게까지 이게 그렇게 구리지 않고 좋은 거다 라는 걸 인정받아야만 하는가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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