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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호

명반병, 혹은

명반병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가 만드는 앨범을 위대한 앨범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병인데, 이게 매우 안 좋은 의미로 쓰인다. 명반에 집착할수록 음반 활동이 줄어들고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난 뒤 명반이랍시고 내놓아봐야 크게 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명곡은 투자한 시간이나 노력과 전혀 상관없이 나온다. 내 생각일 뿐이지만 시간이나 노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분노나 어떠한 감정의 갈망이 오히려 명곡을 써낸다는 느낌을 받는다.

결국 작품이라는 건(소설, 음악 뿐만 아니라 지금 내가 쓰는 글조차 말이다) 타인에게서의 공감(감정의 형태가 유사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타인에게 내 감정을 온전히 전해주었을 때를 공감이라고 표현한 단어다)을 이끌어냈을 때 가장 극적인 효과를 가진다.

우울한 사람이 우울한 내용의 작품을 써냈을 때 공감받기 쉽다.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우울한 척 해봐야 위화감만 생성해낼 뿐이다. 우리가 차였을 때, 차여서 너무 슬플 때, 감정으로 차인 감정에 대해 써야만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그 감정을 조금이라도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뽑아낼 수가 있다.

이런 감정을 놓치지 않고 잘 살려서 쓴 작품은, JK의 곡이 유명하다. 음반 준비 다 해놨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앨범 다 갈아엎고 냈던 앨범, 8:45 Heaven 이라는 곡이 있다. 여러분도 살면서 몇 번 들어봤을 거다.

[MV] Drunken Tiger(드렁큰 타이거) _ 8:45 Heaven

이 때문에 예술한다는 사람을 자기 자신을 역겹다고 생각할 때도 종종 있다고 한다. 누군가가 죽었을 때 누군가가 죽은 때의 감정에 슬퍼하면서도 그걸 작품의 감정으로 승화시켜버리니 이게 내가 슬픔을 느끼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싶어 역겨워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명반병 따위에 걸려있으면 자기 작품에 만족을 못 해서 자꾸만 수정을 하게 되는데, 수정을 하다보면 기술적으론 조금씩 나아질지언정 작품에 담긴 감정은 점점 퇴보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때의 감정은 점점 옅어지고 글을 자꾸만 바꾸다보면 그 감정이 글에서 점점 사라져버린다.

작품을 만들어내는데는 감정을 보존하기 위해 짧은 시간을 써야한다.

이는 김영하가 강연에서 했던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김영하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제한 시간을 주고 미친 듯이 독촉하면서 쓰게 만들게 한다고 그랬는데 그럴 때 좋은 글이 많이 나온다고 그랬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진 않을 거다. 어떤 사람은 분명 시간을 많이 들였을 때 더 좋은 글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다 똑같은 행동으로 뽑아낸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대체적으로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손 가는 대로 썼을 때, 작품의 퀄리티는 조금 떨어진다한들 감정은 온전히 보전되어 있기 때문에 그 감정을 조금만 다듬기만 하면 되는 글이 나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평소에 글을 쓰고 연습하는 행위로 나중에 수정을 덜 해도 되는, 감정을 최대한 예쁘게 담아내서 나중에 감정이 잘 보이게 화석 발굴하듯이 흙에서 꺼낼 때도 손이 덜 가게 해야하고.

 

그런데 이런 문제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명반병에 집착하면 자기가 불만족을 해서 자꾸만 수정하고 갈아엎다보니 작품 자체도 안 나온다. 작품이 있어야 창작자도 존재하는 건데 작품을 내지 않고 다듬기만 하고 있으니 아무리 시간을 들여봐야 의미가 없다.

솔직히 명반을 만들어내는 건 어느 정도의 운빨도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실력이 뒷받침되어준다고 할 때 일단 많이 만들어내면 그 중에 하나는 대박치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정작 자기가 작품을 내질 않으니 혼자서 레고질 하듯이 다듬고만 있으니 좋은 작품이 나올 확률도 점점 떨어진다.

하스스톤에는 예전에 그런 말이 있었다. 승수로 밀어붙여라. 하스스톤의 구조상 승률이 50%만 초과하면 판수로 밀어붙이면 어떻게든 전설은 찍을 수 있었다. 다만 그 승률이 너무 작게 차이나면 현실적으로 시간을 들일 수 없는 판수가 필요하니 불가능하긴 한데, 여하튼 별 25개(25승)만 얻으면 전설을 찍을 수 있을 수 있던 때가 있었다.

50판을 해서 +25로 승급하려면 엄청 빡세지만, 2000판을 해서 +25하는 건 어렵지 않다. 반반 승률보다 조금만 높으면 된다. 프로게이머는 80% 승률로 금새 전설 달아버리지만, 나는 실력이 안 되니 2000판을 해서 52% 승률로 전설을 찍으면 된다.

이처럼 작품을 일단 꾸준히 내면 그 중에 하나는 얻어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도 내지 않으면 얻어걸리는 일조차 없다.

로또를 맞고 싶으면 일단은 로또를 질러야 한다. 로또를 안 지르면 아예 로또를 맞을 확률이 제로다. 하지만 로또를 하나라도 지르면 제로에 가깝지만 제로는 아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당첨될 세계선을 늘리고 싶으면 꾸준히 질러야 한다.

(물론 로또는 당첨 확률이 너무 낮고 오히려 내가 얻게 될 돈보다 쓰게 될 돈이 많기 때문에 안 하는 게 이득이지만, 단순히 가볍게 제로인 확률을 제로는 아니게 만든다 정도로 지르는 건 솔직히 그렇게 멍청한 행동이 나는 아니다)

그런데 로또는 확률게임이기라도 하지 작품은 정말 대충 지껄였을 뿐인데도 누군가가 좋아해줄 수도 있다.

 

명반병은 독이다.

가볍게라도 꾸준히 쓰는 사람이 좋은 결과를 얻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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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영상(유튜브)의 차이

글과 영상의 광고 단가는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

유튜브가 조회수당 1원 조금 넘는 수준인데, 사실 애드센스를 달아놓은 페이지도 조회수당 1원 정도다(물론 유튜브는 거의 2원까지 가지만 웹페이지는 광고를 많이 달아두지 않으면 1원보다 못 하다).

그런데 왜 유튜브는 돈이 되고 웹 페이지는 돈이 안 되느냐.

사실 웹페이지도 돈이 된다. 개별적으로 광고를 받지 않고 수수료를 떼는 애드센스로 하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 페이지는 안 되고 유튜브는 되는 이유.

웹페이지에서 조회수가 나오려면 웹사이트로서의 강점이 있어야 한다. 디씨나 루리웹처럼 커뮤니티 회원 간의 정보 생산에 강점이 있을 수도 있고, 다나와를 비롯한 쇼핑몰처럼 웹사이트 자체가 강점이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해야만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회원이 생기고 일정한 조회수가 발생한다.

그런데 개인 블로그로는 컨텐츠가 질적으로 부족하고, 엔터테인먼트적으로 인기를 끄는 일도 어렵다. 한계가 명확하게 존재한다.

유튜브는 영상 하나가 대박터지면 여기저기 퍼져나가지만, 글은 아무리 대박터져도 글 하나에 백만 조회수가 나오진 않는다(유튜브는 돈 잔뜩 들여서 만든 알고리즘 덕분에 유튜브에서 못 벗어나게 만드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글은 이러한 방향으로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

물론 파워블로그도 있고 예전 이글루스하던 시절에도 누군가의 팬이 엄청 많았으니 아예 한계가 없다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항상 그러한 팬을 소유할 수 있고 많은 조회수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유명한 소수는 어느 플랫폼이어도 잘 나갔다.

내가 말하는 건 대중적인 기준에서의 문제다.

유튜브는 대중적인 기준에서조차 잘 된다(허들이 낮다).

유튜브는 영상이 컨텐츠가 조금만 좋아도 너무나 쉽게 퍼지고 조회수도 잘 나온다. 반면 개인의 글은 컨텐츠가 아무리 좋아도 쉽게 잘 퍼지지 않는다. 내 얘기가 아니라(내가 좋은 컨텐츠를 썼냐 하면 그건 아니니까) 일반적인 얘기다.

유튜브는 조금만 좋은 취급을 받으면 10만 구독자는 금방이고 평균 조회수도 2-3만씩은 뽑힌다. 이러니까 유튜브가 돈이 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영상을 좋아하니까.

내가 책과 블로그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그랬다. 그런데 우리나라 독서율을 생각해보면 블로그 컨텐츠도 취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글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한계가 있다.

그래서 아무리 소설을 잘 쓰고 무료로 뿌렸더라도 회마다 백만조회수가 나올 수 없는 소설 같은 장르에서는(아무리 잘 써도 연독률은 천천히 하락한다) 책으로 판매하는 방법이 베스트다. 아무리 무료로 뿌려도 책을 판매할 때의 수익보다 커지지 않으니까. (소설이 영상과 달리 중간에 광고를 들으면 몰입을 확 깨는 문제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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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 혹은 칭찬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정도를 넘어서 성적으로도 좋아할 때 성적인 어필도 곧잘 던지고 그러는 게 문제지, 좋아한다는 감정 자체는 엄청 표현을 많이 한다.

잘 하는 걸 잘 한다, 좋아한다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어렵지 않다.

특히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어도 잘 하는 게 있으면 잘 한다고 그런다. 나를 짜증나게 하거나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이어도 내게 매력적인 부분이 있어 호감이 생기면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래서인지 내 진정성이 떨어지는 느낌이 없지않아 있나보다.

그런데 나 정말로 내가 긍정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 인정을 안 하는 편인데.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워하고, 잘 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잘 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워한다.

 

롤을 예로 들어보자.

나는 분명 롤에서도 다른 사람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한다. 그런데 항상 칭찬만 있던가? 단지 나는 장단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나누고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칭찬했다.

단지 평가할 때 내가 가지지 못 한 부분을 가진 사람을 조금 더 고평가하는 경향은 있다. 나는 딜러를 잘 못 하니까 딜러를 기깔나게 하는 스XX 님이나 이렐리아로 피가 적은데도 피 차는 양까지 어림잡아 계산 해서 앞으로 Q를 써서 들어갈 수 있는 곰XX 님 같은 분에 대해 조금 더 고평가하는 건 분명 있다.

하지만 이 분들이라고 모든 걸 완벽하게 하진 않는다. 그런데 단점도 작을 뿐더러 굳이 장점이 단점의 모든 부분을 커버하는데 그걸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단점이 더 커지면 그 때는 단점이 거슬리겠지만 지금 그렇진 않으니까.

그리고 나는 어떤 특정 지점을 분명이 꼽아서 말해줬다. 그 사람이 시간이 지나 조금 못 해진다고 하더라도 그 장점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물론 시간이 지나서 못해져서 그 장점이 없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경우 있다. 여러분도 게임을 안 하면 당연히 게임을 못 해지니 그 때와는 다를 수 있다. 나도 근 10년 전의 롤 하던 때와 지금을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 때는 진짜 나도 못 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못 한다. 다른 사람도 그럴 수 있다.

내가 예전에 칭찬했다고 지금도 잘 한다고 말하긴 애매할 수 있고, 실제로 나도 그걸 느끼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잘 한다고 안 했을 수도 있다. 다만 여러분이 그러한 부분까지는 캐치하지 못 해서 여전히 나한테도 잘 한다고 해줬었는데 라고만 생각해서 아직도 잘 한다고 해주고 있다고 믿는 걸 수도 있다! 나는 그런 말 거의 안 하고 있는데도! 아니면 단순히 장점이나 성향에 대해서 말해줬을 뿐인데도 칭찬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 누가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단 얘기일 뿐이니 크게 신경쓰지 말고.

여하튼 난 정말 좋다고 말 할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만 말했다. 이유까지 찝어서.

 

긍정적인 평가를 자주, 많이 해준다는 이유로 진정성이 떨어진다고 하는 건 너무 아쉽다. 버릇처럼 하는 게 아니라 좋은 게 있기 때문에 좋다고 할 뿐인데.

곰XX 님을 예로 들어보자. 내가 이 분을 잘 한다고 생각했던 계기는 카서스 정글 같은 챔프를 쉽게 잘 하고 이렐리아로 앞으로 Q를 쓰는 각을 볼 줄 알기 때문이었다. 챔프 이해도가 높고 계산이라는 걸 할 줄 알고 각을 볼 줄 아는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뭘 해도 다 잘 한다. 롤에 진심이어서 랭크만 열심히 했으면 다이아는 찍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

스XX 님을 예로 들어보자. 내가 이 분을 잘 한다고 생각했던 계기는 군대에서 휴가 나와서 노말팟을 하는데 15연승인가 그 이상을 하고 갔기 때문이었다. 승리 이전에 승리의 내용이 너무 깔끔했다 항상. 라인전은 기본적으로 출중하고 한타 딜도 엄청 잘 넣고 운영도 할 줄 알고 오더도 다 내릴 줄 알았으니까. 이 분이 플레인 이유는 그냥 자기가 랭크를 덜 하고 즐겜으로 해서일 뿐이다. 자기가 잘 한다고 생각하는 포지션에서 특정 챔프 몇 개만 했으면 충분히 다이아 하고도 남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평가했던 거 뿐이다.

전역한 뒤에는 그 때처럼 하드캐리머신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어도 그 장점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잘 한다고 했던 거 뿐이다. 단점도 물론 있지만, 굳이 단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 장점이 매우 좋은데.

물론 장점을 발휘해주지 않을 때야 이잉 할 수 있지만, 장점을 사용하지 않고 적당히 게임한다고 해서 그 장점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부자는 망해도 3년 간다는 말처럼 결국 클라스는 영원하다고 사용하기 복잡한 아펠리오스 같은 챔프를 금새 숙달하고 잡기만 하면 다 썰어버리는 그런 일을 아무나 할 수 있던가?

결국 장점이 굳건하니까 칭찬을 할 뿐이다.

그걸 발휘 해주지 않아서 게임을 캐리해주지 못 하더라도 장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장점이 사라진다는 건 나이를 먹고 피지컬이 떨어지면서 그 장점이 진짜로 “안 하는”이 아니라 “못 하는”이 됐을 때 사라지는 거니까.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 뿐이라면 여전히 장점은 유효하다.

장점이 유효하니까 결국 단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던 정글도 조금 하더니 금새 잘 하는 거고 어느 포지션에 갖다놔도 다 잘한다.

왜? 애초에 롤이라는 게임에서 필요로 하는 피지컬과 판단력이 있는데 그게 여전히 뛰어나니 정글 간다고 못 해지는 건 아니니까. 물론 본인이 정글에 가서 정글에 대해 공부를 안 하고 관심도 안 가진다면 못 하는 플레이어로 남아버릴 수도 있지만 그 분은 게임에도 진심이니까 그런 정보 습득력도 빠르고 곧잘 받아들이니까 금새 는다(칼바람 얼마 하지도 않는 거 같은데 칼바람 탱커 승률이 좋다는 걸 알 정도니까).

여튼 그렇다. 결국 칭찬할 거리가 있으니 칭찬을 했을 뿐이다. 나는 억지로 뽑아내서 칭찬하는 일은 진짜 웬만해선 잘 안 한다. 아예 안 한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나한테 절대 게임에서 좋은 소리 못 듣는 사람도 있다. 많다. 그런데 좋은 소리 못 듣는 사람한테는 내가 애초에 게임을 하자고 잘 안 한다. 그러니 아무나한테 다 해주는 거처럼 보일 뿐이다. 여러분에게 칭찬받은 사람이 10/100이라면, 내 주변에서 내게 칭찬을 받은 사람은 10/10인 거 뿐이다. 왜냐면 나머지 90을 다 버렸으니까.

 

이처럼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들러붙고 잘 대해주니 내 주변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있어서 여러분이 아무한테나 다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 뿐이다.

나는 안 좋아하는 사람은 옆에 잘 안 두니까.

나는 여러분과 달리 친하기만 하면 적당히 옆에 두는 그런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내 주변에는 진짜로 웬만해선 내가 좋아하는 사람 위주로 많이 붙어있다. 물론 모두를 좋아한다고는 솔직히 말 못 하겠다. 호감이긴 한데 좋아한다 정도까진 아닌 경우도 있고, 진짜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내가 “님을 싫어하진 않아요(좋아하지도 않아요)” 같은 따위의 대사를 칠 정도의 호감도가 바닥인 사람은 내 주변에 거의 없다.

예전에 친했어도, 예전에 좋아했어도 사람 답답하게 만들면 어느 정도 유예 기간을 주다 어느 순간 크리티컬 히트 찍으면 신경 끈다. 회사 상사도 아니고 내가 친구관계에서도 싫은 사람 붙잡고 좋은 척 하면서 의리로 지내야 하나? 의리에 대한 글을 예전에 썼었듯이, 나는 의리보다는 그 때의 감정에 충실하게 지내고 싶다. 적어도 지금은. 내가 필요로 하는 여러분의 장점이 사라지면 나도 떠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좋아하고 있고(좋아한다고 짜증나는 일조차 한 번도 없다는 얘긴 아니다), 좋아한다고 표현을 거리낌없이 하고 최선을 다 할 뿐이다. 그래서 그런 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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