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코로나19 백신에 대해 약간의 의심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내 나름의 이유는, 기존 신약개발 업체에서 3상을 통과하기까지 10년씩도 걸리고 10년 동안 노력해서도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게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백신 개발이 어렵기 때문이다. 글로벌 대유행으로 인해 전세계에서 치료제 개발을 해야겠다고 아무리 많은 제약사들이 덤벼들었다고 해도 기존의 그 경험과 근간을 그렇게 쉽게 흔들 정도로 ‘쉬운’ 일이었냐는 게 내 의심의 원인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안 되던 걸 한 번에 했다고?” 그리고 개발하기 위해 많은 부분에 대해 편의를 봐줬다는 부분도 미심쩍은 이유고.
우리는 평소에 이러한 의심을 많이 한다. 피아노를 10번 쳐오라고 그랬는데 너무 빨리 다 했다고 하거나, 건설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거나. 이럴 경우 우리는 합리적으로 무언가 안 하거나 뺀 게 아니냐고 의심을 한다.
이런 당연한 의심 작용으로 내가 아는 선에서 의심을 한 거 뿐이다.
그게 옳다 옳지 않다 이전에, 왜 그렇게 빨리 되었느냐 라는 그 자체가 그리고 신약 개발을 위해 각국에서 엄청나게 밀어주었다는 점 등을 생각했을 때 혹여나 약을 만들기 위해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의심 때문이다. 그게 진짜 틀려서라고 믿어서도 아니고 단지 올바른 검증이었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다.
약이 틀리고 안 틀리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도 그래서 코로나 백신을 맞는다면 2-3년이 지난 뒤에 맞고 싶다고 그런 거고. ‘안 맞고 싶다’가 아니라 ‘2-3년 뒤에’ 맞고 싶다고 그랬다. 왜냐면 그 때는 많은 사람들 대상으로, 백신을 먼저 맞은 사람들 대상으로 검증이 되었으니까 내가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 그 때 그 검증이 옳은 거였구나, 하고 그냥 내 의심일 뿐이었네 하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할 때 가장 불쾌한 건, 이걸 듣는 사람이 자꾸만 ‘상상’을 한다는 점이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보통 어떤 상상을 하냐면 이민결이라는 사람은 의학도 믿지 않고 약도 믿지 않고 신문의 불안 조장에 음모론에 속아넘어간 병신이며 과학도 불신하며 세상 모든 걸 불신하는 사이비와 다를 바 없는 다단계에나 속아넘어갈 법한 수준 낮은 사람이다 라고 상상한다. 저대로 생각하진 않겠지만 방금 언급한 수많은 부분 중 하나 이상은 있을 거다.
나는 안티 백신을 주장하지 않았다. 단지 ‘코로나19의 치료제’에 대해서만 의심을 했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걸 안 믿으면 뭘 믿을 수 있는데요?’라는 말이 돌아온다. 나는 의학이나 과학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없다. 안티 백신을 주장한 적도 없으며 나도 평범한 약이든 백신이든 잘 맞는다.
단지 코로나 바이러스는 백신을 만드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라는 기존에 퍼져있던 정보, 그리고 임상 3상까지는 10년도 걸리는데 1년 만에 모든 걸 끝내버렸고 그 과정에 편의를 많이 봐줬다 라는 점 때문에 코로나19 치료제에 대한 의심이 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내가 의심하는 부분만 제대로 설명해주면 언제든지 나도 의심을 거둘 수 있다. 그걸 설명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그냥 맞다는 말만 반복하고 맞다고 하는 사람들도 왜 맞는지 전혀 모른다. 거의 독도는 우리땅이지만 근거는 댈 수 없다 급이다.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주장하고 싶으면 일본 주장의 근거도 알고 그에 대한 반박도 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저 독도가 우리땅이라고 한다고 우리땅이 되는 게 아니다)
내가 코로나19 치료제에 대한 의심이 있는 사람이구나! 라고 하면 나는 아무 말도 안 한다. 그게 조금 모자라보여도 내가 의심이 있는 건 사실이고 그 사실까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한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이상을 바라본다. 아까 위에 언급한 그런 내용들 말이다.
그게 싫은 거다.
사람이 어떠한 행동, 어떠한 말을 했을 때 완전하게 전해지지 않는 이유는 과대해석 때문이다. 이는 고양이(를 비롯한 애완동물)를 키울 때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행동인데, 고양이가 매일 쫓아다니고 화장실 앞에서 대기하고 집에 오자마자 애옹애옹 하고 울면서 반겨주면 이는 분리불안을 의심해봐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샤워하고 있을 때 욕실 앞에 고양이가 가만히 대기하고 있으면 ‘고양이가 보초도 서네’같은 식으로 ‘상상’하면서 받아들인다. 내가 고양이 갤러리 같은 곳에 실망하고 안 가는 이유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한 식으로 글을 작성한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상에 기반한 글들.
내가 원하는 건 그냥 내가 한 말 까지만 받아들이는 거다.
여러분도 어떠한 행동을 했을 때 누군가가 과대해석을 하면 당황해한다. 예를 들면 그냥 별 생각없이 “그래”라고 보냈는데 상대가 딱딱하게 말했다고 혹시 나를 싫어하는 걸까? 불쾌하게 여기는 걸까? 생각하면서 “저 싫어하세요?”라고 물으면 당혹스러워한다. 이런 게 ‘상상’이다. 상대는 그저 그래 라고 보냈을 뿐인데 그래 라는 그 한 마디로 온갖 추측과 상상을 한 뒤 그런 말을 하니까.
그리고 여러분도 그런 자존감이 낮은 친구와 대화하면 너무 피곤하고 자기 말이 자기 말 그대로 안 보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한다. 좋아한다고 말해도 이런저런 상상을 한 뒤 잘못한 게 있어 좋아한다고 말하는 줄 알고, 자기 기분 맞춰주려고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믿고. 내 말이 내가 말한 의도대로 전해지지 않을 때, 그런 게 우리는 일상적으로 너무나 많다.
나는 단지 그런 게 싫을 뿐이다. 물론, 나라고 타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도 그렇고 많은 사람이 그렇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같은 언어를 쓰고 있어도 언어는 한계를 가진다. 결국 타인에게 내 의도대로 말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싫고 허탈하고 짜증나기도 하고 그런 걸 벗어나지 못 하니 답답하고 그런 거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단지 그런 얘기였을 뿐이다.
애초에 내가 이렇게 글자를 많이 사용해서 내가 지금 한 생각을 온전히 전하려고 애를 썼어도 결국 내 의도는 전해지지 않고 위의 글에서 찾을 수 있는 여러 요소를 가지고 재해석하고 내가 의도하지 않은 대로 받아들이고 있을 수도 있다.
그저 독일 제복이나 독일 탱크와 같은 부분을 매력적이라고 여겨 세계 2차 대전 당시를 주제로 영화를 만든 감독이 있다해도, 정작 영화의 퀄리티가 올라갈수록 관객은 잔혹한 사실만 두 눈으로 느끼게 되면서 세계 2차 대전의 독일을 욕하듯이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 걸까.
내 말이 내 의도대로 내 생각대로 내가 바란대로 전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