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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시골의사 박경철이 말한 거나 아트스타코리아에서 나왔던 거랑 유사하다.

01:29:55 ~

저기서 나오는 국립현대미술관 얘기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보면요 그 3층에 가면 재밌는 그림이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큰 캔버스에 대충 그려놓고 칼로 주욱 찢어놓은 그림이 있습니다 곱표로. 이걸 보고 사랑이라 붙여놨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사랑좋아하네 ㅋㅋ 하고 지나갑니다. 언제 한 번 제가 직접 목격한 일인데 그 작품 앞에서 어떤 사람이 한 30분을 서있더니만 눈물을 뚜르륵 흘렸어요. 이유가 뭐냐하면, 이런 겁니다. 여기 앉아있는 우리 잉여인간들보고 사랑을 그림을 표현해보라고 하면 하트 화살 지나가죠. 한 발 더나가면 뽀뽀하는 그림. 아니면 키스같은 거 벤치마킹 그림. 그 이상은 상상 불가입니다. 상상 되십니까? 안 되잖아요. 화가가 가슴속에 타오르는 예술혼을 사랑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것으로는 뜨거운 감정을 다 드러내지 못 했어요. 붓을 들고 이게 아니야 사랑은 이런거야 막 떡칠을 합니다. 우리 눈으로 보면 황칠입니다. 그래놓고 난 다음에도 화가는 자기가 가슴속에 있는 뜨거움을 다 표현하지 못 했기 때문에 칼로 캔버스를 다 그어버립니다. 그러고서야 그 사랑이라는 영감에서 화가는 해방되고 작품으로 등장하고 걸어놓습니다. 하루에 만명이 지나가는 미술관에 9999명이 황칠이네 이거 미친놈이 그렸구나 하고 지나가는데 한 사람은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부르르 떨면서 그 화가가 사랑이라는 감정 속에서 뜨거운 교감을 했느냐..”

04:36 ~

이거 되게 재밌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저 작품이 제일 인상깊었다. 왜냐면 평가하는 분이 저 작품을 보다가 울어서. 정말 병신같은 작품이고 현대예술 특유의 “현대예술은 공부 안 하면 느끼기 힘들다”라는 말을 보여주듯이 되게 혼자 수조안에 들어가서 똥꼬쇼하는 작품인데 저 작품을 보던 평론가가 눈물을 흘려버린다는 것이다. 그 애절함이 슬픔이 느껴지는 것이다 저 작가의 의도를 느꼈기 때문에. 자신이 바라는 이상향과 그 안에서 헤엄칠수록 그 이상향은 자신과 멀어지는 모습을 보고 저 작가는 그걸 간접적으로 느끼고 괴로워하는 걸 보면서 흐윽윽 해버렸다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원사운드 텍사스홀덤에서 이런 나름의 예술의 정의가 몇 번 나오는데

게임을 보고 이 게임은 예술이다 라는 표현을 하는 사람일수록 게임을 오히려 예술보다 못하다고 한다는 평가가 아닐까 (2짤) 라던가, 누군가가 이 그림을 엄청난 가격에 샀기 때문에 가장 높은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이나 (1짤) 이런 게 되게 나는 마음에 들었었다

나는 게임을 보고 예술이라는 표현을 쓰고싶어하진 않지만, 게임이 다른 예술과 동급으로 취급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되게 옛날부터 자주 했던 얘기다. 그러니까 영화가 예술이 되어야하는 게 아니라, 영화 그 자체로 예술인 것이다. 소설 그 자체로 예술이고, 판타지 소설조차 예술이다. 왜냐면 소설이 예술의 영역에 포함되고 소설 안에 판타지소설, 라이트노벨 다 포함되어있으니까 똑같은 예술인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술이라는 범주 안에는, 건축이나 음악, 영화 등 모두가 포함된다.

이러면 “네가 오히려 예술이 뭔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라고 물을 수 있는데

그게 아니다 다시 말했듯이 똑같은 예술이기 때문에 판타지소설조차 예술에 범주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판타지소설과 내가 쓰는 일개 일상글조차 같은 수준의 글인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과 내가 블로그에 쓰는 일상적인 감정의 글들이 똑같은 것으로 취급을 받아야하는 것이다.

당연히 영화도 예술영화와 상업영화가 같은 영화 안에 있는 거고 예술영화는 예술이고 상업영화는 상업인 게 아니라 모두 똑같은 영화기 때문에 둘 다 예술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군가의 감정을 흔들어놓기 위해, 누군가에게 어떠한 감정을 전해주기 위해 목적을 가지고 목적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에게 감정을 전해줄 수 있는 결과물이라면 그게 모두 예술이라고 나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예술적인 것과 예술적이지 않은 것을 구분하려고 하는 인간을 내가 역겹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범주를 자기 기준으로 말해버리고 자기가 말하는 힙스터같은 것을 예술이라고 치부하고 나머지 것들은 구린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니까. 고작 자신의 기준에, 특정한 그룹의 기준으로 나누니까 그 행위 자체가 역겨운 것이다. 이 사람은 착하고 저 사람은 나쁘다 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내가 개좆같아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친한 친구나 가족은 그 사람을 그 누구보다 아낄 것이다.

그런거처럼 그 사람이 싫어하는 작품이라도 누군가에겐 절절한 작품인데 고작 그 사람, 그 그룹의 생각에 따라 예술이 되고 아니고로 나뉜다는 게 졸라 꼽다.

고작 니가 뭔데, 좆도 아는 거 하나 없고 예술작품 몇 개 쳐 보면서 힙스터질 한 니가 무슨 권리로?

이센스가 자기 이야기하는 에넥도트 앨범이나 졸라 예술영화계에서 유명한 새기가 만든 예술영화나 존나 똑같다는 것이다.

당장 내가 여기다가 내 고추사진을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올리고 그거에 대해 약간의 무언가를 설명만 해도 그것도 예술이고, 그저 담벼락에 낙서를 쳐하는 것도 예술이고, 어떤 사람이 빨개벗고 거리를 돌아다녀도 예술이다. 물론 그게 범법적인 거냐 누군가 피해를 받느냐 이런 문제를 제쳐두고 말이다. 내가 지금 당장 거리에서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사진을 찍어서 여기다 올려도 그건 내가 사진 작가로 작품을 올린 것이고 그것도 예술인 것이다.

결국 예술이라는 건 별 게 있는 게 아니고 관측자가 느끼기에 그걸 좋다, 아름답다, 슬프다 그런 감정을 느끼게 만들면 성공인 작품이고 그걸 실패하면 망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한 형식이 정해져있는 게 아니라 어떠한 방식이 되었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현대로 올수록 사진 등의 발달로 그저 예쁘게 그린 그림이나 그저 일상적인 사진은 이게 무슨 작품이야 하면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아무 가치를 부여받지 못 하기 때문에 점점 이상한 방식으로 기괴해지는 것이지, 당장 내가 그냥 아무 사진이나 올려두고 이게 내 작품이다 하면 그게 작품인 거라고.

실제로 그런 식으로 사진 찍어 올린 적이 있다. 책 잔뜩 쌓아가지고 밑에 문학작품 이런 거 잔뜩 쌓아두고 그 위에 베이비리프(만화책) 딱 하나 올려두고 “이게 예술이다” 하고 사진 올렸떤 적이 있다 한 8년 전에. 물론 그냥 아무것도 아닌 사진으로 취급 받고 아무도 관심 안 줬지만 그게 예술이라고 내 기준에서는..

하다못해 뮤비가 100억짜리 영화보다 더 나은 경우도 있다.

고작 5분에 여러 하고싶은 말을 다 담아냈지 않은가? 이걸 보고 감동한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외모지상주의 개극혐이라고 못생긴 여자를 저런 식으로 표현했냐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나는 미녀를 괴로워 영화를 조금 더 좋아했기 때문에 이런 걸로는 별 생각 없었지만..

내가 좋아했던 그림쟁이중에 네이버블로그에서 그림 그렸던 분이 있는데 그 분이 지금 그림/소설을 다 닫아버리긴 했지만 소설을 되게 맘에 들었다 유명한 소설가가 쓰는 그런 거보다 그 하나가 더 내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근데 그 사람이 책으로 안 냈다고, 그게 문학작품이 아니라고 그게 예술이 아닌가?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쓰는 글, 여러분이 찍는 사진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찍고 쓰고 있다면 그것이 곧 예술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책 작가 니노미야 히카루가!!!, 내가 좋아하는 장르소설 작가가!!, 하다못해 개찐따망가작가 XXXX가!!! 헤르만헤세보다 추종자가 적다고 해서 평론가에게 높은 평가를 못 받는다고 해서 개좆병신같은 데미안 같은 엠1창소설이나 호밀밭파수꾼같은 개허세찐따소설보다 못할 이유가 없고 그것보다 언제든지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포르노라서, 만화라서, 장르소설이라서 무시당하겠지 많은 사람이.

그런데 그 마음이, 그 마음을 움직인 것이 헤르만 헤세보다 걔네들이 못하냐는 거냐구 아니라는 거지..

그저 작품이 오래 사라지지 않고 버텨서, 그저 많은 사람이 좋아해줘서 그 작품은 예술이고 다른 건 예술이 아니다? 누가 그렇게 정했는데?

자신만의 예술이라는 정의를 내려놓고 이건 예술은 아니지 하면서 ‘자기만의 잣대로’ 평가를 한다는 것이지.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예술로 취급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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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 하아토 그는 찐성우인가?

어젠가 영상 올라왔던데 이거 보자마자 “오..” 했다. 목소리의 바리에이션이 넓다? 라는 생각을 했다.
성우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공연을 잘 했던 이유가 이건가? 싶기도 했다.

어떤 부분에서 그런 걸 느꼈냐면

약간 잘나가는 성우들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부분을 묘하게 느꼈다. 예를 들면 아마미야 소라의 아쿠아 역이라던가, 타카하시 리에의 메구밍 역 같은 거. 왜 굳이 코노스바 역할을 꺼내냐면, 코노스바에서는 진지한 씬 장난치는 씬 평범한 씬 참피같은 씬 이런 게 종합적으로 섞여있기 때문에 성우에게 요구하는 그 요구치가 되게 높다. 그러니까 진지하다가도 카즈마상~~ 웃쨔뗴ㄸ안암널애ㅑ어ㅐㅇ요!!! 이런 걸 해야하는데, 이건 휙휙 바뀌는 장면의 그 감정선들을 따라가면서 바로바로 만들어야 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렇게 장면이 바뀌고 감정선이 바뀌었는데 이전의 톤을 유지하면 당연히 어색할 수밖에 없다. 여러 감정선을 그 장면에 최적화될 수준으로 전부 꺼내야한다는 말인데 이걸 못 하는 성우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건 성우만 그런 게 아니라 배우에게도 공통되는 것이다.

울다가 웃는 씬이 있다치면 울때는 울먹울먹거리다가 울고나서 흐흐흫 하면서 웃어야 한단 얘기다. 김민아가 울었던 걸 생각해보면 된다. 김민아는 진짜 울었고 다시 웃는 모습을 보였던 적이 있다. 그게 우리가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울고-웃고 장면이 전환되는 모습의 실제 사례다.

그런데 이걸 연기로 하라고 하면 되게 어렵다. 사람마다 감정선을 못 꺼내는 부분들이 있고 어떻게 톤을 바꿔야하는지 전혀 모르는 부분들이 있다. 그래서 진중한 톤밖에 못 하는 사람은 그런 장면이 전환되고 흐흐흫 하는 그 느낌을 살릴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코노스바 같은 건 진지하다가도 바로바로 참피처럼 바뀌기도 하는데, 이게 성우 능력이 안 되면 그 참피같은 걸 전혀 못 꺼낸다. 일상적인 씬이나 섹스씬은 할 수 있더라도 그 참피같은 씬을 꺼낼 능력이 없어서 못 꺼내고 결국 못 하는 역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건.

그래서 연기하는 사람은

자기 목소리를 상황에 맞게 정말 넓게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건 유명한 영화에 나오는 배우, 유명한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 뭐 이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걸 못 하면 대부분 양지로 못 올라온다. 그러니까 예술영화에선 연기를 하고 쩌리같은 드라마에선 좀 쓰일 수 있겠으나 돈이 많이 투자되는 드라마나 대배우랑 같이 할 확률은 매우 낮다는 것이다. 성우같은 경우는 양지 성우 / 음지 성우 확 갈리니까 그런 면이 더 심할 거라고 본다.

그렇다고 아예 못 한다.. 까진 아닐 것이다. 노희경한테 멱살까지 잡혀본 배종옥이라는 배우가 있는데, 이 배우는 뭔가 넘나드는 그런 게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 나름 종종 나오기도 했으니까 그런 게 아예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런 배우는 수요가 엄청 적다는 것이다. 가끔 힙스터들이나 “와 이 배우 ㅠㅠ” 하지만 대부분 이 사람보고 연기를 잘 한다고 못 느낀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배우는 자기 한계를 알아서 오바하는 게 없다” 같은 식으로 좋게 평가해주는 작가들도 있긴 하다. 근데 그 말이 뭐냐면 “한계를 가지고 있다” = “못 한다”는 것이다 사실.

흔히 말해서 음지 성우한테 아쿠아 같은 역을 소화해보라고 하면 대개 잘 못 할 것이다.

왜냐면 톤이 그런 식으로 막 넘나드는 그런 걸 못 하니까.

그런데 하아토는 저걸 저 영상에서 넘나드는 걸 보여주기 때문에 내가 “오………… 얘 뭐야..” 하고 느껴버린 거다. 고작 버튜버하는 애가, 나이도 별로 안 되는 애가, 이런 식으로 연기를 한다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표현하면 약간 전달이 잘 안 되는 거 같은데 이걸 일일이 짚어서 평가를 하면

처음에 “하쨔마쨔마~”이러는 톤이 있고, 그 다음에 “재미있군..” 하면서 톤이 아예 바뀐다. 그러다가 다시 이야이야이야이야~ 하면서 다시 돌아왔다가, 다시 하쨔마!?!?!?!? 하면서 또 새로운 톤을 보여주는데 이게 그 상황에 써야할 목소리 톤을 적재적소에 끌어내서 되게 “나는 내 목소리를 이 밑바닥부터 여기 천장까지 전체적으로 다 활용할 줄 안다” 라는 거처럼 보였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음지성우 중에 좀 연기못한다고 욕 많이 먹는 친구한테 코노스바의 아쿠아 역을 하라고 하면 되게 병1신 같겠지만, 하아토보고 하라고 하면 스킬은 조금 부족할지언정 그 톤을 사용하는, 그 참피톤 여신톤 이런 걸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면서 그 느낌을 잘 살릴 가능성은 보인다 이런 느낌이라는 것이다.

내가 야겜성우 잘 모르긴 해서 좀 뇌피셜이긴 한데, 주변에서 네모타니를 그렇게 높게 취급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네모타니 연기를 내가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한창 핫했던 봉지련 연기를 볼 때 그런 양지 성우의 면을 다 갖추었다는 느낌을 좀 받는다. 봉지쓰고 섹스하는 씬에서 “오니사마 어쩌고저쩌고 ㅇ뭐 어쩢저ㅗ저꺼ㅗ ~!@$#! 모랏떼쿠다사이!!!!” 하는 하는 게 있는데 처음에는 되게 간질간질하게 하다가 갑자기 톤을 천천히 바꿔나가면서 마지막에 톤을 확 바꿔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걸 못 하는 성우 진짜 많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게 진짜 어려운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음지성우 유명한 애들중에 이 뱀의 머리같은 연기조차 못 하는 성우가 넘쳐날 것이다. 무시하는 건 아니고 아마 이게 현실일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연기는 감정을 실어야 하는 건데 이걸 못 한다는 건 자기가 감정을 못 싣는다는 거니까.

정말로 현실에 있는 거처럼 그 연기를 해야하는데 자기가 어떤 정신적인 잠금장치가 걸려있어서 그걸 못 한다는 것이니까.

그 사람들이 그정도로 연기를 잘 했으면 네모타니처럼 점점 양지로 가는 게 맞으니까.

우리가 어색한 사람들이랑 만나서 노래를 부를 일이 있다 해보자. 아니 그냥 혼자서 노래를 부를 일이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도 혼자 있는데, 아무도 안 보는데, 노래방에서 방방 뛰고 막 소리질르고 싶은 부분에서 소리 지르면서 부르고 싶은데도 잘 못 한다. 고작한다는 게 말달리자 같은 곡 부르면 닥쳐!! 닥쳐!! 하는 이거에서 ‘소리를 크게 지르는 것’ 밖에 못 한다. 그런데 우리는 소리를 크게 질러야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누구 아가리 여물라고 닥쳐!! 하는 그 느낌을 살려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 감정을 전해줄 수 있다 누군가에게.

그저 소리를 크게 지르는 건 감정을 싣는 게 아니다. 그냥 시끄러운 말소리지.

그런데 이게 노래에서도 이렇게 우리가 리미트가 걸리는데, 연기는 더 어렵다. 우리가 그 캐릭터를 모르고,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를 모르고(연기를 모르고) 그러다보니까 결국 우리는 우리 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채로 그냥 그럴듯한 느낌만 살리려고 하면서 말을 따라 읽는 것밖에 못하는 것이다.

당장 디스코드에서 랄로 같은 친구 따라하기도 어렵다. “~~한 거 누구야!!” “머선일이고~~” 이런 짧은 드립 따라할려고 해도 이게 되게 어렵다. 나는.. 솔직히 웃겨볼려고 해보고싶었던 적이 있는데 이게 붕뜨고 전혀 느낌을 못 살리겠어서 못 하겠더라고.. (두번시도하다가 포기함) 하다못해 오마에와 모 신데이루!!! 이지랄 하는 것조차 어색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도 이거 되게 많이 하고 싶었는데 부끄러워서 많이 하지도 못 했고 할 때마다 되게 찐따같았다… 그 오마에와 모 신데이루!! 하면서 과로사 느낌을 살리는 그것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연기라는 게. 이미 누군가가 했던 걸 그걸 똑같이 따라해서 느낌을 살리는 일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근데 배우는 그 예시조차 없는데도, 시나리오 대사만 보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배우 실력에 따라 그게 되는 사람이 있고 안 되는 사람이 있는 거고

특히 배우같은 건 자본이 많이 투자되는 것이기 때문에 못 하는 사람은 들어올 구석이 별로 없다. 자기 강점을 잘 살리면 어떻게든 한 자리씩 차지는 해볼 수 있겠지만, 그 이상, 그러니까 뭐 100억 투자되는 작품의 주인공을 할 일 같은 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왜냐면 그 정도 규모의 작품을 하는 감독들이 병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듀스101 시즌4에서 이동욱이 그 배우출신 출연자보고 “아니 주인공까지 하신 분이 무시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뭐 이런 비슷한 느낌으로 말하는데 아마 그 주인공이라는 걸 아무나 하기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했던 말일 것이다.

근데 하아토가 보여주는 저런 목소리들이 그 감정선을 넓게 사용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저 말들이, 저 대사들이 그냥 대충 말하는 게 아니고 되게 그 상황에 맞게 목소리를 자기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쿠아같은 되게 난이도 높은 연기를 시키면 그걸 잘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선은 0~100까지 있다.
그리고 캐릭터는 아무리 캐릭터라도 ‘사람’이 몰입하게 만들어야해서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쓸 수 있는 감정선이 0~10 정도밖에 없다면 나머지 11~100을 쓸 수가 없다. 그러니 특정한 톤 하나, 그러니까 그 캐릭터에 내 목소리를 덧씌우는 정도는 할 수 있어도 그 캐릭터가 사람처럼 날뛰는 모습까지 연기하는 건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0~10밖에 없으니까. 조곤조곤하게 말하거나, 야하게 말하거나 그런 식으로 밖에 못 하니까. 조곤조곤하다가 분노하는 씬에서 이씨발련!! 하는 느낌을 전혀 낼 줄을 모르니까 그런 걸 할 수가 없는 거고, 결국 그 사람은 그저 텍스트에 목소리를 씌워주는 그 정도의 작업밖에 못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목소리들이 되게 넓다는 느낌을 주면 정말 잘 할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개 음지에 많이 머무는 성우는 이 목소리 활용도가 0~10 이런 식으로 좁을 확률이 높다.

배우들 중에서도 비슷한 역만 주구장창 맞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요즘 시대가 되게 축복받은 환경이다. 그 중에서는 자기 이미지를 팔려고 그런 식으로 연기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그 중에서는 정말로 그런 연기밖에 못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연기를 조금 못 해도 나름 자기 자리를, 선점한 이미지로 나름 먹고살 환경이니까 좋은 거지.

그리고 대개 연기를 진짜 잘 하면 그런 평준화된 똑같은 역이 아니라 아 이 사람 진짜 연기 잘 하네 내 작품에서 이걸 시키면 잘 할 거 같다 해서 픽업을 하게 되고 결국 그 똑같은 역만 하는 거에서 벗어나기 마련이다. 나름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면 그런 식으로 이미지가 바뀌는 연기를 요청받기 마련이다.

미생의 김동식역 했던 사람이 처음에는 그저 김동식 하나였지만 점점 주연위주로 많이 맡는 거처럼 말이다. 김성균도 처음에는 그저 범죄와의 전쟁에 조폭 역할이었을 뿐이었다. 정말 연기를 못 했다면 계속 비슷한 그런 조폭 조연이나 계속 맡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니까 점점 다른 역할의 기회를 부여받는 거고 점점 유명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기들은 대개 내가 말한 그 0~100을 얼마나 자기가 넓게 활용하는 걸 보여주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쨔마 영상 저걸로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고.. 그리고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캐릭터의 감정선 같은 것도 되게 표현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보고 우리는 연기를 잘 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이다..

* 약간 오해할까봐 덧붙이면 내가 톤이 바뀐다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 ‘한 장면 내에서 톤이 바뀐다’라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성우는 할 줄 아는 톤이 하나밖에 없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톤이 하나밖에 없는 연기자는 평상시 말하는 씬 그런 종류밖에 못 하고 그 이상 감정이 강하게 들어가야하는 톤들, 그런 건 못 하기 때문에 되게 어색한 연기처럼 느껴지는데, 하아토는 저 2분도 안 되는 영상에서 극과 극의 톤을 왔다갔다 넘나드는데 그걸 보고 오 뭐지 하면서 좋다고 느낀 거다. 즉 아쿠아처럼 ‘짧은 장면내에서 톤이 많이 바뀌어야한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아쿠아처럼 “여러 톤을 가지고 있어야 다른 많은 장면들을 전부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가진 연기톤이 하나밖에 없으면 나머지 톤이 필요한 다른 연기를 못 하니까 결국 이상해진 연기가 된다는 것이다. 여러 톤을 활용못하는 연기자라면 결국 할 수 있는 연기가 감정선이 안 실리는 그런 연기밖에 못 하게 되고 배역 지정에 한계를 가지게 되서 양지로 못 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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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제작자의

작품과 제작자를 동일선상에 놓는 건 내가 되게 혐오할 수밖에 없는 건데, 왜냐면 나는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되게 유치하고 뻔한 노래가, 누군가가 듣고 전율할 수 있다면 그건 잘 만든 작품이다. 그리고 작품이라는 게 한 갈래로만 이해해야 하는 게 아니라, 다방면에서 60억명이 보면 60억명의 새로운 생각이 느껴지는 게 나는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내가 나데시코랑 린이랑 되게 꽁냥댈 때 저게 너무 부러운 감정이 들어서 되게 우울했던 적이 있다. 남들은 그냥 꽁냥대는 걸 보고 좋아할 감정이지만 나는 그 장면에서 다른 걸 느꼈고 조금 슬펐단 얘기다. 그리고 한창 케모노프렌즈 유행하던 시절에 코노스바 2기도 같이 방영되는 시기였다. 나는 케모노프렌즈를 별로 안 좋아했어서 대충 슥 보고 말았는데, 코노스바에서는 마지막 명장면에서 진짜 울컥 했다. 그건 되게 재밌고 영웅스럽고 되게 잘 해내가는 장면이지만, 나는 그게 너무 슬프더라 약간 그것도 부러운 감정이었다.


3:25 ~

저 장면 진짜 좋아하는 장면이다 지금도 보면 울컥울컥 한다 저거 보고나서부터는 저 오프닝만 들어도 좀 윽 해질 때가 있다

아니 저 장면에서 도대체 슬플 게 뭐가 있죠? 할 수도 있는데, 되게 한 조각 같은 인간들이 (피자로 따지면 원판형이어야 하는데 쟤네는 그 중 한 조각 같은 애들밖에 안됨 혹은 한 조각이 빠져있거나 여튼 부품 몇 개가 부족함) 부족한 어디서 써먹지도 않을 애들끼리 모여서는 서로 그간 그렇게 바보처럼 어울리고 다니고 서로에게 맞춰가면서 결국 자기 역할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완성된 평범한 파티보다 더 잘난 파티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되게 감성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아 나도 저런 무언가 판타지를 채울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있음 좋겠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부 럽 다 하고 느끼면서 울컥 하는 것이다

여튼 작품마다 작품에 기본적으로 내재시킨 감정과 달리 전혀 다른 부분을 자극받을 수 있다는 거고

나는 그런 작품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 장면의 연출을 아주 잘 했다는 거고 그 작품 줄기와 감정이 있어도 그 장면만으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는 거니까. 작품 줄기는 줄기대로 느끼고 개별 장면에선 이렇게 또 +a 적인 요소들을 자극시켜줄 정도로 연출을 잘 한 그런 작품을 나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방향성에서 작품을 만들었더라도 보는 사람이 저게 뭔 개소리야? 하고 느끼는 게 있다면 그건 저자의 생각이 아니라 감상하는 사람의 생각을 따라줘야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작품은 제작자로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작품은 독자가 의미를 부여해주면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독자가 없는 작품은 일기일 뿐인데 자기 일기를 “다르게” 읽었다고, 아니 하다못해 “틀리게” 읽었더라도 그 작품은 그런 감정을 전해주는 요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독자가 그렇게 읽은 거다.

만약 자기가 그런 요소를 철저히 배제했다면 독자는 그런 식으로 절대 읽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위플래시도 대한민국 국민이 작품을 “오독”하는 걸 수도 있지만, 위플래시 제작자가 그걸 아니라고 했더라도, 독자가 그렇게 읽었기 때문에 독자의 손을 들어주는 게 맞다. 위플래시는 그런 학대하는 감정을 자극을 어느 정도 시켰다는 거다. 그게 싫었으면 자기가 그런 마지막의 애매한 장면을 안 넣었으면 된다. 근데 지가 그런 장면을 처 넣어놓고 너희들이 잘못 읽었다! 하는 건 그냥.. 애새끼 징징거림이다.

인셉션에서 마지막 팽이 돌아가는 장면 그거 보고 되게 많은 사람이 이 놀란 씨발련.. 이라고 당시에 많이 그랬는데 그게 자꾸 문제 되니까 놀란이 “ㅎㅎ 팽이 사실 쓰러짐” 했는데 그건 다 의미없다. 놀란 인터뷰를 안 본 사람은 그 팽이를 계속 돌아간다고 생각할 거고, 인셉션 본 사람이 꼭 놀란의 인터뷰를 봐야하는 것도 아니다.

작품은 작품으로만 소비되는 게 이런 점들 때문이다.

결국 제작자가 아무리 떠들어도 작품만 감상해버리면 작품에서 끝나버린다.

그런데 맨날 “제작자의 의도”를 생각하는 사람은 자꾸만 인터뷰를 찾아다니고, 자기가 그 의도를 “들었으니까” 그 작품을 볼 때 혹은 그 작품을 봤던 경험을 자꾸 그 제작자 의도랑 겹쳐서 연계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그 제작자가 한 말을 듣지 못 했으면 생각도 못 했을 거를 제작자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 그 때부터 작품에 자꾸 추가시켜서 보고, 처음에는 그냥 즐겁게 보던 장면이 의도를 가진 장면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꾸만 착각을 한다.

제작자는 무언가 의도를 가지고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돈 벌려고 만드는 사람도, 그저 재밌는 작품을 만들려고, 하다못해 스티븐킹도 글을 쓸 때 자기 부인이 읽다가 웃어주는 걸 염두해두고 쓴다고 한다. 그러다가 작품 다 만들고 나면 그냥 대충 자기 작품 슥 보고는 여기서는 이런 메시지 아무거나 붙여두면 될 거 같애 하고 만들었다고 했다.

그 사람이 대중을 교화하기 위해 세뇌시키기 위해 만들었는지, 아니면 그저 자기가 하고싶은 얘기가 있어서 그저 영화가 좋아서, 아니면 뭐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딘가에서 이걸 봐주길 바라서, 아니면 하다못해 자기가 옛날에 강간했던 사람이 있는데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지만 그 사람이 이 영화를 보게 만들고 그 사람만 아는 그 장면을 넣어서 그 사람이 보다가 질겁하게 만들려고 하는 건지 모른다고 시발

의도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제작자의 의도를 감안하느냐는 거임

제작자가 더러운 사람이니 작품도 더러운 의도로 만들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되게 악인이 뭔가 특별하고 마귀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대개 악인은 우리 옆집 사람, 우리 윗집 사람일 수 있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가족도 챙기는 사람들이지만, 가끔 어떤 버튼을 눌렸을 때 살인까지도 저지를 수 있고 사기도 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게 보통 우리가 아는 악인이다. 연쇄살인마사이코패스라도 가족을 끔찍히 사랑할 수 있는 거고, 조폭이라도 자기 가족에게는 되게 애틋할 수가 있다.

그런 거처럼 더러운 제작자라고 해서 작품에 진심이 아니거나 작품을 더러운 의도로 만들지도 않았을 거란 얘기다.

마재윤이 아무리 기록말살형에 처해질 정도의 쓰레기라한들 마재윤이 주작에 손대기 전의 그 잘나간 시기까지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고, 주작을 하던 와중에도 진심으로 했던 경기들에서 잘 한 경기마저 무시할 순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마재윤이 그저 쓰레기라는 이유로 그 시절의 커리어와 그 사람이 게임을 잘 했다는 사실까지 무시할 순 없다는 거고 그 게임을 할 때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 한 점까지 없었다고 말할 순 없다.

더러운 제작자라고 해서 작품에 진심이 아니었을 리도 없고 그 작품에 무언가 의도를 나쁘게 넣었다고 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자기가 더러운 제작자라는 걸 아니까 모든 장면장면에 자기가 의도를 덧씌우면서 이 사람의 이런 장면은 이러이러한 불순한 의도가 있었을 거야, 자기 변호를 위해 만든 작품이야 하는 의심을 한다는 거다. 그냥 자기가 그 작품을 보고 느낀 좋은 감정이 있으면 그냥 좋았다 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나는 이런 걸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건 되게 불순한 의도가 있어 이건 더러운 애가 만든 거야 내가 그걸 보고 즐기면 이 더러운 제작자를 옹호하는 게 되는 거야 나는 이 더러운 작품을 보면 안 돼 이런 식으로 뒤틀린 생각을 한다.

애초에 작품만 봤을 때 저자의 의도를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작품만 보고 느끼는 그 의도가 전부다. 그런데 작품에서 그 의도가 드러나지 않았으면 그건 끝이다. 그 외 인터뷰에서 말하는 의도같은 건 작품 외적인 요소들이고, 그 사람들이 그 사람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작품 ‘외적인’ 요소다. 작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요소인데 자꾸 작품을 볼 때 그 요소를 신경쓰려고 한다.

혹여나 착각할 사람들을 위해 말하자면 시대적배경이나 공간적배경은 작품 내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라 작품 외적인 요소랑은 다르다. 작품에 1950년대가 들어가있으면 그 시기가 한국전쟁 시기라는 걸 알 것이다. 그런데 한국전쟁에 관한 느낌과 1950년대라는 그 분위기를 하나도 안 넣고 제작자가 “이 작품의 배경은 1950년대입니다” ㅇㅈㄹ 하는 건 그냥 웹툰 처그리면서 관심도 없는 이 캐릭터의 발바닥은 245mm입니다 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다니깐? 의미가 없다고 작품이랑 별 연관성이 없는데 니들 좋으라고 넣은 설정이라구..



사람들은 전쟁영화는 전쟁영화 그 자체로 반전의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그게 왜 그런 거냐면, 전쟁 영화는 되게 잔혹한 장면이 많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면서 되게 질척해지는 나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걸 보는 사람들이 으흑흑 전쟁은 나빠 하면서 반전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즉 감상자 우선주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더러운 제작자는 의도가 있을 거라고 또 그런다.

전쟁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정말 그걸 반전의 의미로 만들었을까? 그냥 탱크 쏘고 사람 죽이고 밀따쿠라서 그런 거 만들었을 텐데 왜 그런 불순한 의도는 체크하지 않으면서, 왜 더러운 제작자라고 낙인 박힌 사람에게만 주홍글씨마냥 따라가면서 나쁜 의도가 있을 거라고 하냐고. 전쟁영화 만드는 사람 중에 싸이코패스가 없을까? 내 생각엔 있을 거 같은데, 사람 죽는 걸 조금 더 아름답게 그릴려고 하는 제작자 분명 있을 거 같은데? 그 사람이 성공하진 못 했어도 말이다.

고어물을 그리면 되게 잔인하니까 반잔혹 만화인가? 아니잖어 그냥 고어물 좋아하는 작가가 고어물 그린 거지. 전쟁 영화를 만들면 전부 막 반전을 보여주기 위해 막 나서서 전쟁영화를 만든 것인가? 정작 블랙호크다운 같은 영화는 아무리봐도 국뽕 심하게 넣고 야 군대 지원해 하려고 만든 영화 같던데. 이런 식으로는 안 따지면서, 왜 시1발 제작자에게 어떤 결함이 있을 때만 달라붙어서는 “에헴에헴 이 제작자는 나쁜 제작자다! 불순하다!” 이러는 거냐고..

왜 자꾸 제작자의 도덕적인 부분/법적인 부분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참견하는 요소가 되냐고..

제작자는 제작자지
어차피 작품 감상하는 사람의 감상이 젤 중요한 건데.

왜 자꾸 제작자를 끌어들여서 작품을 감상하냐고

개씨발 놀란이 팽이 계쏙 돌아간다 했어도 놀란이 그 씨발같은 장면 넣어놨으면 그건 계속 팽이 돌아가는 거지 십년들아 열린 결말이잖아 해석하는 사람 마음이지

놀란이 갑자기 당장 내일 폭풍섹스하고 난교파티벌이고 총으로 막 사람 100명씩 쏴죽이면 지금까지 좋게 평가받던 인셉션의 평가가 떨어져야만 하나? 메멘토의 평가를 떨어뜨려야만 하나? 아니잖어 그냥 인셉션은 인셉션이지. 그러다가 놀란이 수감한 상태에서 교도소 내에서 촬영을 못 하니까 페이퍼로 만든 애니같은 영화를 냈다고 가정 해보자. 근데 그게 되게 내용이 좋아 무슨 애틋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내용이야. 자기가 교도소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못 만나서 느낀 감정을 구체화시켜서 작품으로 만든 거야.

근데 놀란이 난교파티 벌이고 사람 100명씩 쏴죽인 정신병자인데 그 작품을 만들었으니까 이 작품은 더러운 작품이다!! 하면서 무시당해야 하냐고

아니지.. 그냥 그 작품은 작품이지
놀란이 교도소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나서 느낀 감정이니까 그건 더러운 감정인가? 교도소에 있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울 수 있지. 그건 누구나 느끼는 똑같은 감정이다. 싸패도 느끼고 초딩도 느끼고 죽기 일보 직전의 사람도 느끼는 평범한 감정이라고. 근데 그 사이코패스정신병자가 느낀 거랑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하니까 소름이 끼치나? ㅗㅗㅗ

작품은 작품일 뿐이다!!!!!!!!!!!!!!!!!!!!!!!!!!!!!!!!!!!!!!!!!!!!!!!!!!!!!!!!!!!

작품내에서 불쾌한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냥 평범한 작품이다!!! 그리고 대개 불쾌한 메시지를 느꼈더라도 네가 그 제작자에 가진 편견일 확률이 높다!!!

나는 매년 나오는 영화와 드라마 연출 감독들의 사생활을 모른다! 분명 그 사람들도 예술계에서 일하는 놈들이니 정신병자가 많을 것이다. 예술하는 놈들은 원래 반이상이 병쉰이다. 내가 본 영화하는 새끼도 개또라이였다 아다 떼볼려고 할카스랑 섹스하는 미친련이었다. 폰도 훔치고 그런 세끼였다. 근데 그런 애들이 영화는 또 좋아해서 영화에 대해 진심을 다하던데, 그런 애들이 영화계에 나간 경우가 많을 테니 그런 영화감독들은 베개영업도 많이 시키고 따먹었을 것이다. 그런 걸 너무 많이 해서 들킨 새끼랑 별로 안 해서 안 들킨 새끼의 차이일 뿐이다!! 내가 그저 걔네의 사생활을 알 이유도 없고 알 루트도 없으니 모르고 있을 뿐이다!! 걔네들의 사생활을 우리가 다 볼 수 있는 빅브라더가 될 수 있다면 너는 그 때도 으윽 영화는 역겨워 못보겠어 할 것이냐!!!

이적도 야한농담을 그렇게 좋다고 한다더라!!
그런데 이적이 야한농담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해서 이적의 애절한 노래가 구리게 되는 것은 아니다!!

!!!!!!!!!!!!!!!!!!!!!!!!!!!!!!!!!!!!!!!!!!!!!!!!!!!!!!!!! 증오와분노!!!

2년 전인가? 그런 셰끼가 잇었지 한국인들은 도덕적으로 옳은 걸 자꾸 내세우려고 한다 그런 사설인가 그런 게 돌았던 적이 있다. 근데 -근-들이 이러는 거 같다고 ㅋㅋㄹㅋㅋ 하던 와중에 “도덕적으로 옳은 거 내세우는 게 뭐가 잘못된 거야!!” 하는 지성주의 추종자분이 계셨는데 그런 사람들이 꼭 저런 소리 하고 제작자가 도덕적이지 못하면 그걸 쓰레기라고 그렇게 욕하더라 ㅋㅋ 말대가리 같은 거 누군지도 모르지만 뭐 대충 난봉꾼이겠거니 하는데 그 때 한국인들은 도덕적으로 옳은 걸 자꾸 내세우려고 한다고 할 때 그게 뭐 잘못된 거야!!?!? 이러는 인간들이 저렇게 제작자 일일이 따지면서 말대가리 극혐~~ 이러면서 욕하고 있다고 ㅋㅋ

사람들이 왜 이런 세끼랑 친하게 지내는지 모르겠어 프랑스인이 한국에 사는데

아오 말하다보니까 생각나서 화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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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네 전생

한창 버천지 확신시기에 봤던 코로네 사진이었다

당시에 버튜버 올라오는 거 보고 슬쩍 보고 이잉~ 내취향아니야~ 하고 다 넘기고 있었는데
코로네 전생 이야기하면서 저 사진이 지나갔었다

저거 보고 오.. 이쁘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잊혀졌는데 어느 날 또 막 무언가 지나가는 사이에 “코로네 키 큼” 이런 말이 지나갔었다 몸무게가 무슨 80키로…… 이런 말도 본 거 같은데(정확하지 않음) 몸무게를 그렇게 보고 살이 좀 있나 하고 봤는데 그 뒤에도 몇 번 코로네 전생 사진이 막 지나갔었다. 약간 어두컴컴한 배경의 사진이랑 이런 것들.

근데 아무리봐도 80키로 나갈 거 같진 않은데?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많이 지나고

아카이 하아토가 토하는 걸 보게 되고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걸 의미함)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코로네 이야기 나오는 걸 보고 잘 아는 분에게 물어봤었다. 그리고 전생도 찾아보다 아이 내 취향은 아니네.. (좀 쪄보이네)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날 펩시맨 하는 게 지나갔고

얼마 후 이미 어느정도 관심은 생겼는지 게임하는 거 유튜브 영상(하이라이트)있으면 달라 했는데 보고 되게 재미가 없.. 었다. 물론 재미없는 이유는 스트리밍이 재미없다기보다 예전에 코로네 영업 어쩌고 하는 글 쓴 거 있는데 그 때 이유로 재미가 없었다 (그냥 클립에 특화되어있지 않았음) 영상 보고 흠.. 하고 풀스트리밍 보니까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다.

궁금해서 구독을 누름..

그리고 최근에 쥐 체험하는 게임;; 을 할 때는 생각보다 괜찮아서 흠.. 하면서 나쁘지 않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냥 저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음 ㅎ.ㅎ;
전 전생 때문에 관심가진 거임

저 사진 너무 이쁜 거 같음
얼굴에 은단박는 거 싫어하는데 저건 잘 어울리는 거 같음
얼굴 가려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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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적은 나

얼마 전에 5년 전에 쓴 글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요새 옛날 블로그에 있던 글을 새로운 (주식)블로그에 총 집대성? 하는 작업을 거치고 있는데 (이 블로그 말고) 그러다 이 글을 봤다.

그리고 이 밑에 링크하는 글은 내가 몇달전에 쓴 글이다.

하정우와 관객들의 눈, 제작자.. 등..

지금 다시보니 문장이 개판나서 좀 보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내가 오히려 헷갈림)
이 글의 내용은

1. 평론가는 전문가가 아니다
2. 평론가는 나 같은 일개 블로그와 별 차이 없는데 인기가 많은 사람일 뿐이다.
3. 그리고 작품의 해석 등을 즐기기 위해 평론가의 컨텐츠를 ‘즐기는 거’ 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대개 작품의 해석 등을 즐기면서 남의 감상을 깎아내리고 작품을 무시하기 때문에 그 평론가의 빠들이 극혐이다 (이게 가장 중요함)

라는 내용이다.

그럼 다시 5년 전의 글을 보자.
5년 전의 글은

1. 평론가는 전문가다
2. 대중과 조금 전문적으로 파는 친구들의 작품 평가 차이가 나고, 대중에게만 흥하는 걸 만들면 전체적인 작품들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문가(평론가)의 시선도 필요하다.

라는 글이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나는 당연히 지금의 글이 지금의 스탠스인데 5년 전의 글도 틀린 말 같지는 않다 (지금도 약간 내가 한 얘기지만 내가 긍정됨)

5년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냐면, 저 때는 약간 예술뽕이 남아있던 시기였음.. 예술 오디션 프로그램도 보고, 예술 평론가나 이런 글도 많이 찾아읽었었다. 그리고 주식얘기에 심심하면 예술 타령을 진짜 많이 했었다ㅎ; (지금은 블로그 글 옮겨적으면서 그런 발언은 다 잘랐음 넘 부끄러워서)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자신의 감상’ 그러니까 무언가 장치를 비롯해서 작품의 ‘퀄리티’나 그런 요소보다는 자신의 주체적인 감상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리 똥쓰레기같은 작품이라도 내게 의미가 있으면 그건 엄청난 작품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감상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물론 고등학생 때부터 내 감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긴 했는데, 그게 점점 더 강해졌고 전문가적인 건 오히려 필요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의 감상이 아니라 남의 감상이 주체가 되어버리니까.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평론가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싫어졌다. 몇달전의 글에도 적혀있지만 ‘남의 감상’을 소비하는 거 까진 나도 이해한다. 그런 글로 즐기고 싶어할 수 있다. 자기가 캐치하지 못 한 무슨 장치나 의미를 찾아 작품을 즐길 수 있다. 근데 문제는, 그걸 ‘정답’이라고 여긴다는 게 문제다. 그건 ‘정답’이 아니라 ‘인기있는 사람’의 감상일 뿐이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의 인기있는 감상), 정답이 아니니까 그게 전적으로 옳다는 식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걸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걸 정답처럼 취급하고 자신들이 뭔가 ‘잘난 사람이 됐다는 것처럼’ 행동을 한다. 웃긴 건 그 감상조차 자기가 만들어내고 느낀 게 아니라, 자기가 ‘누군가의 글을 읽고 복사한 감상’인데 복사한 감상 주제에 아는 척도 심하고 남을 무시도 많이 한다.

그 부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게 듀나와 듀나 빠돌이가 아니었나 싶다. 위플래시 때 한국독자는 오독하고 있다 같은 되게 발언을 하는데, 듀나 얘기는 다 옳다는 듯이 쉴드를 치는 사람을 좀 많이 봤다. 물론 듀나 얘기도 일리는 있었다. 위플래시는 애를 되게 학대한 모습인데, 한국 관객은 와 진짜 선생은 저거지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좀 있었으니까. 근데 그건 오독한 게 아니라 난작을 한 거라고 나는 생각을 하고, 그게 싫었으면 그렇게 생각을 못 하는 장치를 넣었으면 된다.

근데 마치 개인의 감상들을 전부 후려치면서 너희들은 틀렸다 너희들은 병신이다 내가 옳고 내가 잘났다 하는 모습이 되게 싫었는데

그게 듀나만 그랬으면 걔 혼자라고 여겼겠지만, 그걸 소비하는 애들은 ‘지가 느낀 바’도 아니면서 남의 느낀바에 탑승해서 그렇게 무시를 하는 것을 보니 너무 싫었다.

그 뒤로 점점 평론가와 평론가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좀 싫어졌던 거 같다. 그리고 그 시대즈음부터 힙합이 유행했는데, 힙합에서는 평론가 무시하는 경우가 되게 많았다. 애들이 되게 공격적이고 자기 할 말을 다 하다보니까 평론가에 대해서도 거리낌없이 쌍욕을 박아버리는데, 그 말도 나름대로 다 일리가 있었다. 그럴듯한 남의 이름 팔아 유명세 얻을려고 한다는 말 하나도 틀린 거 없고, 오히려 창작자들이 평론가를 더 싫어하는 점이 참 재밌었다. 그리고 스티븐킹 소설은 별로 안 읽어봤지만 스티븐킹 작법서는 되게 여러번 읽었는데 스티븐킹도 그런 무시를 되게 많이 받았고. 그런데 스티븐킹은 잘나가는 작가지 않나.

그래서 뭐 여튼 평론 관련한 건 어느 순간부터 되게 싫어졌다. 작품마다 의미부여하고 해석하는 일도 싫어졌고.

근데 최근에 옛날 내 글을 다시 읽으니까 참 감회가 새롭고 그 시절 의견도 틀린 건 없다고 생각한다. 약간 평론가는 그냥 필요 악 같은 존재인 거 같다. 누군가는 좀 떠들어야 뭔가 이런저런 장치도 하고 조금 더 고급스러운 포장을 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같다. 대중만 좋아하는 걸 만들면 결국 질 떨어지는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대중음악 욕하는 니네 귀가 더 쓰레기같다고 욕하던 래퍼 산이가 최근에 개쓰레기처럼 변한 걸 보면 오히려 어느 정도는 대중을 안 따라가는 것도 맞지 않나 싶다. 그런 부분에서 필요악 역할을 하는 게 평론가가 될 수 있찌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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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바닐라셰이크

1.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투게더를 사용했고
2. 설탕은 베라 아이스크림 스푼으로 두 스푼
3. 우유는 100ml 정도 부은 거 같은데

이렇게 하면 맛은 밀크셰이크 맛이랑 유사해진다.

그리고 이걸 맛없게 만들려면
우유를 많이 넣으면 된다.

결국 바닐라로 셰이크를 만드는 거라..
우유는 맛을 더해주는 정도로만 사용해야 하는 거 같다



그리고 맥도날드 셰이크가 괜찮고, 예전에 롯데리아에서 팔던 바닐라셰이크는 조금 애매한데.. 나는 맥도날드식 셰이크가 먹고 싶은데 이 방식으로는 롯데리아식 셰이크만 만들어진다. 바닐라맛이 강하고 뭔가 시원하지 않고 뭔가 아이스크림 녹은 꿉꿉하게 달달한 맛?

그래서 얼음을 넣으면 얼음이 완벽하게 갈리지도 않고
뭔가 집에서 해먹긴 애매모호하다.

맥도날드 셰이크 레시피 만들 수 있으면 바로 3평짜리 임대해서 셰이크 장사했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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