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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머스 시험지

전에도 몇 번 한 말인데 이제 조금 아니다 싶은 사람이랑은 아예 거리를 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릴 때야 이 사람 저 사람에 대한 경험치들이 없다보니까, 모든 사람을 다 겪어보고 망하는 과정까지 다 겪곤 했다.

그런데 아무리 넓은 인간관계를 가지지 못 한 나라고 해도 일정 이상의 경험치들이 쌓이게 된다. 대개 이 사람이랑은 나랑 안 맞겠구나 싶을 때가 있다.

대표적인 걸 언급하자면, 사람 사이에 쓸데없는 의미부여를 많이 하는 사람이나 기브엔테이크를 중요시하는 사람 등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랑은 결국 어느 부분에서 파탄이 나게 되어있다.

왜냐면 의미부여나, 기브엔테이크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시 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내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들을 매우 중요시여기고 있으니, 지금은 안 친해서 조금 잘 지낸다고 해도 결국 그게 문제가 아니어도 다른 부분으로 문제가 터진다.

예를 들면 위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은 ‘의미부여’를 많이 하다보니까 내가 지 욕 한 거도 아닌데 지가 조금 까이는 소리를 했다고 들으면 자기처럼 돌려서 표현한 줄 안다.

그러니까 나는 2012년부터 탑솔러들 하는 짓이 개꼬왔는데 탑솔러 좆같다고 하면 탑솔서는 사람이 자기 욕 하는 줄 안다는 것이다. 2012년부터 나랑 만난 거도 아닌데 그냥 자기 욕 하려고 그런 말을 꺼낸 줄 안다. 아니다 난 원래 걔네의 그 이기적인 마음이 싫었다. 그런데도 자기 욕 하는 줄 안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도 표현을 그런 식으로 한다. 자기가 그런 식으로 ‘남에게 미움 안 사면서 남 욕하기’를 하기 위해 돌려서 욕을 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으니, 남이 그렇게 하면 자기처럼 그러는 줄 알고 그렇게 보는 것이다. 대개 사람이라는 것들이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여하튼 그래서 나는 별 욕도 안 했는데 자기혼자 나한테 악감정 가지면서 맨날 불평불만을 또 돌려서 하는 거다. 근데 나는 의미부여를 안 하니까 걔가 나를 두고 하는 말인지 남을 두고 하는 말인지 모르고 그냥 그런갑다 하고 넘기는데, 그러다가 쓸데없는 톡을 자꾸 보내서 읽씹이라도 하면 “나랑 쌩까자는 거지?”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혼자 차단을 하거나 그런 행동을 보인다는 거다.

나는 그냥 원래 졸라 의미없는 톡은 읽씹하는데 자기 혼자 쌩까는 줄 알고, 그간 쌓인 감정들이 있으니 그렇게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결론지어버린다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예를 들면 뭐 싸이월드 일촌을 해제한다거나, 인스타 팔로잉을 해제한다거나, 카톡을 씹는다거나 이러면 다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결국 위와 같은 행동들을 한다는 거다.

결국 이 경험치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아, 트위터 같은 SNS에서 팔로우를 했는데 인사하는 사람 = 의미부여 하는 사람 = 추후에 극혐 될 사람 이런 식으로 견적이 다 나와버리는 것이다.

아빠 BMW 타고다니면서 벤츠 옆쪽에 2개 있다고 쪽팔려서 시동걸러 못 간다는 장애인을 보면, 딱봐도 아 이 세끼는 졸라 허세충이구나 애미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랑 똑같은 상황이다.

굳이 사귀어볼 필요가 없다. 중소기업 사장인데 사장실이 삐까번쩍하고 사장실 뒤에 골프채 비싼 거라도 놓여있으면 견적 다 나오지 않나? 아 이 회사에는 투자 안 하는 게 낫겠구나.

정말 대화를 해보면 깊고 다른 이유로 그런 결과가 나온 사람도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은 10명 중 9명은 대개 내가 생각헀던 것들과 다를 바 없을 거라는 거다.

이런 거처럼 나이를 먹어가면서 리트머스 시험지를 대고 구분하는 것마냥 행동을 하게 된다 점점. 그리고 이게 굳이 나쁜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 사람과 골고루 지내봐야한다”고 하는데, 사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과 지낸다. 그 어떤 사람도 빠짐없이. 근데 “여러 사람과 골고루 지내야한다”고 하는 사람 특징은, 대개 볼품없고 자존감 낮은 사람들이다. 잘난 사람들은 주변에서 알아서 들러붙기 때문에 싫어도 골고루 지내기 때문에 그게 당연한 거라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는데, 대개 쌩까이고 이리저리 쌩까이는 사람만 자기가 쌩까이는 걸 아쉬워하면서 쌩까이기 싫어서 그런 소릴 하고 다니는 거다.

특히 자기 입맛에 안 맞는 사람은 회사 학교 가족 등 온갖 곳에 넘쳐난다. 평소에도 싫은 걸 보고 지내는데 사적인 시간까지 좆같은 사람 보고 살 필요는 없다.

여하튼 결국 모든 사람은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과 지내고 싶어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험으로 걸러지는 경우를 굳이 또 좆같은 기억을 남길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그 사람과 친해져야하나? 나는 잘 모르겠다.

결국 친해져봐야 좆같은 의미부여나 해대고 팔로잉이라도 풀면 지랑 쌩까자는 뜻도 아닌데 “그래요 수고하세요”이지랄이나 하는 인간들이랑 자기가 선물 하나 줬는데 자기한텐 왜 안 주냐고 정신병 떠는 인간들이나, 친한 사람들한테 하루에 3~4개씩 톡 보내면서 자기 일기 안 쓰면 버티질 못 하는 인간들일 텐데, 내가 굳이 그걸 알 수 있는 아주 단순한 시그널들을 경험으로 축적해온 걸 보고도 친하게 지내야하나?

결국 SNS에서 팔로잉했는데 “안녕하세요^^” 이딴 인사 보내면서 처음 본 사람에게 인간관계로서의 의미부여를 진행하면서 친하게 지내려는 사람이랑 굳이 친하게 지낼 이유가 있냔 말이다. 어차피 이 사람이 저 위의 유형의 사람들인데. 기브엔테이크 타령하고 일기쓰는 놈들이 결국 내가 싫어하는 행동 다 골라서 하는 놈들인데 걔네를 거를 수 있는 수단이 있을 때 그걸 거르지 않을 이유가 있냐고.

 

지내다보면 바뀔 수도 있겠지. 나도 그런 것들을 했던 시절이 있으니까. 그럼 그 때 바뀌고나서 와라. 나는 이전에 가진 감정이나 기억으로 사람 차별하진 않으니까 언제든지 추한 사람이 멋있어져서 돌아오면 언제든지 다시 좋아할 수 있다 우러러 볼 수 있다.

기다려줘 라는 노래가 있다.

김필이 다시 부른 게 되게 마음에 들었었는데,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자기를 기다려달라는 게 포인트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는 게 정말 어렵다.

기다려줘 는 적어도 자기가 사랑의 연인으로 생각하고 반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바뀌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부르는 건데,

나한테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냐구. 그렇게 애절하게 기다려달라고 하면 솔직히 못 기다려줄 거도 없는데, 대개 기다려달라는 말은커녕 자기가 이해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뿐이다.

그런 사람들을 내가 참고 기다릴 이유는 없다.

바뀌어서 돌아오면 좋아해줄 테니까 바뀌어서 돌아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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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틈새시장 한국어 버튜버

솔직히 버튜버를 보는 사람은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보는 듯한 감성으로 보고 싶어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씹덕 감성은 일본어로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일본어를 쓰는 버튜버만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한국어 감성도 먹히는 사람들이 있는 거 같다. 그러니까 ‘컨텐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이게 무슨 의미의 말이냐면, 컨텐츠를 필요로 한다는 건 자기 감성과 컨텐츠의 내용이 맞아야 한단 뜻이다. 그런데 오타쿠들이라고 꼭 씹덕 감성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오타쿠들이라고 모두 일본어를 잘 하진 않는다.

일본어를 못 해도 대충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일본어를 못 하면 죽어도 못 즐기는 사람이 있다. 1. 후자같은 경우는 일본어를 못 하면 그 안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 해서 컨텐츠가 사실상 없는 것이고 재미를 못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2. 씹덕 감성은 판때기 스트리밍하는 친구가 일본어도 써주고 씹덕이 좋아하는 걸 해주면서 겜도 하고 그런 것들을 컨텐츠로 삼는데, 굳이 씹덕 감성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일본어로 판때기 뒤집어쓰고 일본어 특유의 귀여움을 보여주는 걸 컨텐츠로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단 얘기다.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결국 한국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약간 개그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유머 코드가 한국에서 안 먹히기도 하고 한국에서 먹히는 코드가 미국에서 안 먹히기도 하는데, 이 사람들은 일본어 감성에 젖어있지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씹덕 노리는 일본 버튜버가 오히려 별로일 수 있단 얘기다.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한국어 쓰는 한국어 감성의 버튜버에겐 또 넘어가는 거 같다. 이게 어떤 차이냐면 코로네와 전수진(순당무)의 차이라고 해야하나? 코로네가 일본어 쓰고 그래주니까 그걸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수진이 소리 지르고 뀽뀽!! 씨발!! 하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단 얘기다.

그래서 조금 한국어 버튜버에게도 넘어가는 사람이 있긴 한 거 같다.

다만 조금 애매한 건, 그 사람들이 “판때기를 쓰고 있기 때문에” 귀여워하는 건진 잘 모르겠다. 아까 말했듯이 씹덕 감성 자체가 애니캐릭터스러움을 원하는 건데, 논씹덕 감성인 사람들은 애니캐릭터스러움을 원하는 게 아니다 당연히.

다만 “판때기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걸 언급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래서 보러 갔다가 비캠 스트리머 보듯이 빠져든 게 아닐까? 하는 게 내 약간의 생각이다.

여하튼 생각외로 비캠스트리머라는 거부감은 덜하면서 한국어 컨텐츠 / 한국어 감성으로 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거 같다. 특히 주변에서 버튜버 많이 보고 자기도 보고 싶다 생각은 하는데 맞는 게 없어서 불평하다가 마침 그 구석을 파고드는 한국어 버튜버가 있으니 그걸 좋아하게 되는 경향도 있는 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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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식을 교육시키는가?

가끔 잘못된 생각들을 하는 사람이 있다. 자식 교육 시킬 돈을 자식에게 직접주는 게 낫다느니, 전세가 있는데 집을 ‘왜’ 사냐느니. 한 번만 생각하고 두 번은 생각 못 하는 바보같은 생각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로또를 왜 사느냐 그건 멍청할수록 많이 내는 세금이다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대개 진짜 바보같은 사람들이다.

 

만약에 주식을 산다고 해보자. 주식을 살 때 엄청 위험한 대신 엄청 리턴이 좋은 경우가 있다. 이게 실제 헤지펀드에서 보여줬던 포트폴리오 이론이었는데, 한창 2017년인가 2018년 초에 이를 인터뷰한 헤지펀드 매니저가 있었다.

비트코인을 포트폴리오의 1% 정도 사두면 자산에 큰 영향은 주지 않으면서 커졌을 때 리턴은 엄청 좋다고 이를 미리 생각하고 자산 분배해둔 헤지펀드 매니저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암호화폐가 급등을 했고 그 덕분에 엄청 좋은 수익률을 가져갔다.

비트코인이 ‘투기’라고 하더라도 그게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 1% 정도 리턴이 없다해도 투자해볼 수 있는 거다. 만약 그게 비트코인이 아니라 선물이나 옵션이라도 그럴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정작 결과만 따지면서 “이런 위험한 걸 사니까 그 돈을 날리지”하는데, 이는 리턴을 생각하고 리스크를 감수해서 그 돈을 베팅한 것이다. 만약에 30% 확률로 돈을 따는 게임이 있는데 너는 70% 실패확률은 너무 높다 무조건 내가 지는 게임이다 생각해서 그 게임을 무시했다. 너는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아니다. 넌 틀린 선택을 한 거다.

왜냐면 30%의 리턴값을 생각을 안 했으니까. 만약 30% 확률이라도 30% 확률로 벌어들이는 총 금액 > 70% 확률로 날리는 돈 일 경우엔 그 게임을 해야만 한다. 장기적으로 버는 게임이니까 무조건 해야한다. 그런데 너는 그 계산을 안 하고 안 했는데 70% 확률로 패배하는 게임인데 저걸 하네 ㅋㅋ 이런 식으로 ‘반만 생각하고’ 무시를 한다는 것이다.

저기서 자식에게 교육시키는 돈을 자식에게 주는 게 낫다, 로또는 세금이다, 집은 살 필요가 없다도 다 똑같은 이유에서, 자기가 똑똑한 줄 아는 멍청이가 하는 말들의 대표적인 말들이다.

 

1.

자식에게 비싼 돈 줘가면서 교육을 시키는 이유는, 워렌버핏의 말을 한 번만 생각해보면 된다. 자신에게 투자하는 (공부적인) 돈이 가장 좋은 투자라고 대학을 가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워렌버핏은. 왜냐면 그렇게 돈을 쏟아부었을 때 돌아오는 연봉은 그간 교육에 들인 돈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당장 대학 들어가서 기본 연봉이 높아진 친구와 대학에 못 들어가서 기본 연봉이 작은 친구를 비교해보면 된다. 걔네는 최소한 학력에 자기 돈을 투자한 거고 그걸 리턴값으로 돌려받는 거다. 그게 실력적인 부분이든 그냥 사회의 잘못된 통념 때문이든 자기가 그 돈을 투자했기 때문에 돌려받는 거다.

물론 자기가 실력이 더 좋은 거 같은데 쟤가 컴공만이라는 이유로 연봉을 더 받으면 억울하긴 하겠지. 근데 어쩔 수 없다 내가 이전에 쓴 글을 읽고 오면 된다.

대개 “자식 교육에 쓸 돈을 자식에게 그냥 주면 된다”라는 건 프랜차이즈 가맹점비 2억 내고 가맹점 창업하느니 그거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게 낫지 않냐는 말과 똑같다. 이걸로 생각해봐라. 당연히 가맹점 창업하는 게 낫다.

물론 가맹점이 망하면 돈 다 날릴 수도 있지만, 가맹점을 창업하면 그 2억보다 훨씬 큰 돈을 장기적으로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투자하는 거다.

자식 교육도 딱 그 이유라고 보면 된다. 근데 그걸 자기가 수학적인 대가리가 부족해서 이해 못 했다고 남을 바보취급하면서 무시하면 안 되는 거다.

 

2.

전세가 있는데 집을 왜 사느냐는 내가 스무살 초에도 자주 들었던 말인데, 진짜 웃긴 얘기다. 우리동네는 매우 지방이라 아파트 값이 조금 싼 편인데 1억 조금 넘는 아파트만 있던 지역에서 2억 넘는 아파트가 나오는 걸 봤다.

그리고 서울에 사는 사람의 경우는 집값이 2배 3배씩 올랐다. 전세는 계속 가만히 있는 금액이 아니다. 집값이 오르면 전세가도 결국 따라서 오른다.

너는 그 집에서 이 돈을 빌려주고 영원히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인플레이션에 따라 집값은 계속 오른다. 일본도 디플레이션이라고는 하지만 도쿄 집값은 계속 오른다고 하는데(나도 정확히는 모름), 너도 결국 서울이나 서울 근처 경기도에 살 거면서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난 잘 모르겠다.

먼 미래에 포탈건이 나와 하와이에서 서울로 출퇴근 할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는 이상, 일자리가 많은 지역의 집값은 계속 오를 거다. 그럼 집값이 오르는 동안 너는 인플레이션 방어를 전혀 못 한다는 얘기가 된다.

정작 똑똑한 사람들은 레버리지 계산 다 하고 이미 집을 덜컥 사버렸다. 네가 “멍청하게 집을 사네”하는 동안 그 사람들의 집값은 더 올라서 자본이득을 엄청나게 챙겨버렸다.

집을 꼭 살 필요는 없다. 자기가 100억 자산가인데 그거보다 돈 더 잘 굴릴 자신이 있으면 굳이 집 살 필요는 없다. 그런 투자자 봤다. 자기가 집 보유하고 있는 거보다 자기가 투자 더 잘 한다고 생각해서 자기는 월세 살고 남는 보증금마저 투자에 다 꼴아박는 사람도 있다.

근데 투자도 안 하고 집도 안 사고 전세 있다고 집을 안 샀다보니까 집값이 오를 때마다 전세금 올려주고 항상 현금가치는 떨어지고 빌려야할 돈은 커지는 멍청한 너는 뭔데?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집을 산 사람들은 그냥 온전히 인플레이션도 방어하고 자본 이득까지 취했는데 네가 왜 남을 무시하는 거지?

 

3.

로또도 똑같다. 로또에 막 10만원 20만원 박는 건 병신짓이 맞다. 하지만 흔히 말해서 로또 일주일에 5천원 정도 투자해서 소소한 재미를 얻거나, 로또를 맞고 싶다 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로또를 사는 사람은 아까 그 포트폴리오 1% 이야기처럼 자기가 리스크를 이해하고 그걸 소소하게 사는 거기 때문에 무시당할 이유가 없다.

 

자기가 믿는 바를 옳다고 생각할 순 있다. 나도 내가 믿는 여러 것들을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옳다고 생각하는 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왜 그러냐는 것이다. 자식 대학 보내는 부모가 바보고, 로또 사는 놈은 세금이나 내는 멍청이고, 집 사는 건 멍청하다는 애자같은 표현을 안 하면 죽는 건가?

문재인 안 뽑았다고 다른 사람 멍청하다고 말하는 애, 지구를 위해 페트병을 덜 써야하는데 페트 쓴다고 지랄하는 애랑 저 위에 1,2,3 말하는 애랑 다른 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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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은 중요하다

글을 들어가기 전에

  1. 이 글은 코딩을 기준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코딩이 가장 ‘학력이 없어도 되는 거처럼 착각하기 쉬운’ 분야고, 실제로 그렇게 믿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2. 그리고 이 글은 코딩 외 모든 분야에서도 통용되는 이야기다.
  3. 이게 가장 중요한데, 이 글은 학력차별을 조장하기 위함이 절대 아니다. 이 글은 오해하기가 쉬운데, 학력주의나 학력차별을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말로 이러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대학생과 아닌 사람의 차이가 ‘평균적으로’ 발생한다는 걸 말하기 위함이다. 나도 학력은 개판이다.

중요하니까 한 번 더 말하는데, 절대 학력차별을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다.

 

예전에 컴공은 이과가 아니다 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거기서 연장되는 글이라고 생각해보면 된다.

 

고졸, 대졸 등의 ‘스팩’ 때문에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 대개 공부를 조금이라도 더 한 사람이 체계적인 커리큘럼 내에서 배우는 쓸데없다고 생각한 부분이 쓸데없는 게 아니라서’ 역량 차이가 벌어진다.

그런데 실업계 출신, 방구석 코딩쟁이 등만 이를 무시한다.

 

나도 그 차이를 무시하고 싶다. 나도 이 좆같은 생각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런데 무시할 만한 요소가 아니다.

당장 코딩이 아니라 금융쪽을 기준으로 예를 들어주겠다. 당장 서울대에서 금융관련 학과 4년 졸업한 친구가 내가 12년 넘게 투자한 거보다 더 금융/투자적인 지식이 뛰어나다. 왜냐면 나는 혼자 헤딩하면서 쓸데없는 집밥 10년 동안 해먹은 거고, 걔는 전문적인 요리학과에서 여러 체계적인 커리큘럼 내에서 배운 거니까. 나는 내가 관심을 안 가지면 못 배우는데 걔는 관심을 안 가진 거까지 억지로 배웠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4년을 매우 단기간에 체계적으로 공부에만 힘 쓰면서 배웠다. 그것도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 밑에서. 물론 안 뛰어날 순 있는데, 개인투자자가 혼자 백날 애자짓해봐야 그와 유사한 스승조차 못 가지는 걸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상대적으로)뛰어난 스승이 맞다.

결국 김밥집, 제육덮밥집, 고기집, 집밥, 이런 식으로 10년 요리한 인간은 그저 10년 요리했을 뿐인 인간이다. 그저 요리 조금 할 줄 아는 인간일 뿐이고 요리적인 지식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전투를 인간보다 많이 참여한 노새가 있다한들 노새는 노새일 뿐이다.

물론, 방구석 코딩쟁이든 개인투자자든 자기가 이런저런 공부를 하긴 할 거다.

그런데 대규모로 집단 양성할 수 있는 곳의 더 나은 사람에게 배우는 체계적인 커리큘럼 아래서 죽자사자 공부하는 친구와, 개인이 혼자 헤딩하면서 박치기 한 건 분명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많은 실업계, 방구석 출신이 “요리사는 요리만 잘 할 줄 알면 된다”고 하는데 학력을 부정하려고 하는데, 그건 틀렸다.

요리사는 요리만 잘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요리만 잘 한다고 알아서 뽑아주지도 않는다. 요리사도 공부를 해야만 한다. 요리사가 괜히 양식할 때 해외로 유학가고 죽자사자 배우면서 돌아다니는 게 아니다.

괜히 요리대학이 존재하는 거도 아니다.

그 4년 동안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했지만 배워야하는 여러 부분들을 배우게 되고 그건 추후 자신이 무언가를 배울 때 필요한 아주 좋은 양분, 그러니까 치트키 같은 영양제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다.

 

당장 머신러닝을 얘기하자면, 머신러닝 같은 건 코딩이 아니라 통계학이 중요하다. 그런데 정작 코딩쟁이는 통계학을 안 배웠으면서, 코딩만 잘하면 되는데 내가 왜 통계학을 배워야하는데? 하고 반발감만 가지고 통계학을 못 배워도 코딩만 잘 하면 자기도 머신러닝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초라한 학력을 방어하기 위해, 흔히 성공한 만화가들을 예시로 든다. 강풀처럼 그림 공부 안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느니, 레바처럼 대학 안 갔어도 성공할 수 있다느니. 맞다 그런 사람은 존재한다.

실제로 ‘만화’를 그릴 때 그림이 덜 중요한 부분인 건 맞다. 스토리텔링이 더 중요한 거도 맞다. 하지만 걔네가 만약 그 정도의 스토리텔링을 하는 강점이 없었다면, 그 시절 인터넷 특유의 웹툰 문화가 생성되는 초기 시절이 아니었으면 뜨기 어려웠을 거다. 차라리 같은 실력이라면 그림의 기본기가 있고 그림을 조금 더 예쁘게 그리는 사람이 잘 됐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시장이 커졌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나? 예전처럼 그림 못 그리는 강풀같은 친구가 그렇게 쉽게 주목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됐나? 아니다. 지금은 그림도 잘 그리고 스토리도 잘 그려야한다. 그런 작가들이 주목받기 쉽고 그런 작가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물론 가끔씩 예외인 사람도 있겠지만, 레바가 레진에서 괜히 왕따설이 돈 게 아닐 것이다.

그 만큼 그림 배운 인간이 레진에 많았다는 거다. 결국 웹툰 시장이 커지면 그림은 당연히 기본으로 장착한 애들이 들어가게 된단 얘기다.

 

결국 웹툰시장의 초기가 끝난 지금은 예전처럼 강풀처럼 그림 개씹못그려도 뜰 수 있는 그런 신화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 빈도가 점점 줄어든다. 있기야 있겠지만. 당연히 그림도 잘 그려야하고 스토리텔링도 잘 해야하는 시대가 와버린다.

 

그럼 지금 코딩 업계가 그런 상황 아닌가? 그렇게 된다는 거다 코딩업계도.

그래서 내가 매번 “코딩 업계도 결국 학력보게 된다”라는 얘길 하는데, 자꾸 고졸/방구석 출신들은 자기 학력컴플렉스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못 하고 “아니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학력은!!” 혼자 그렇게 믿는다.

 

내가 하는 얘기가 어떤 얘기냐면, 예전 한국은행 블라인드 건과 같다.

블라인드를 하고나니 서울대가 오히려 더 많이 뽑혀버렸다는 그 얘기. 공평성을 위해서 블라인드를 해야한다고 그렇게 주장하더니 정작 한국은행 채용에서 블라인드 후에 서울대가 더 많이 뽑혔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학력이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대개 학력 좋은 친구들이 (서류쓰는)실력도 뛰어난 경우가 많단 얘기다.

 

대학 4년졸이랑 석사/박사 한 친구랑 다 똑같을까?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 어떤 사람은 대학 4년밖에 안 나왔는데 박사보다 뛰어날 수도 있고, 박사하고도 고졸보다 못 한 친구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평균적으로는 학사 < 석사 < 박사 일 것이다. 그리고 그 평균적인 궤도에서 자신이 벗어났다고 정말 자신하고 말할 수 있나?

대학에서도 이런 차이가 나는데, 고졸과 대졸 차이가 그렇게 없겠냐는 거다. 그 차이가 없다는 건 상대적으로 학력이 낮은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대졸보다 뛰어난 애를 고졸이라는 이유로 연봉을 덜 주는 건 잘못됐지. 실력만 있으면 더 줘야지. 그런데 정말로 자기가 실력은 있는데 대학을 안 가서 저평가 받고 있는 게 맞나?

솔직히 자기도 일 안 하고 누가 돈 준다고 하면 바로 대학 갈 거면서 왜 대학을 안 가도 되는 거처럼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경제학을 공부한다고 해보자. 집에서 백날 경제학 원론 책 보는 애는 백날 공부해봐야 거기서 수학 관련 억지로 떠먹여진 거 안 당해봤으니 반쪽짜리 경제학이다. 수학 못 하는 경제학도는 경제학도 사이에서 경제학도로 취급받지 못 한다.

그런데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우면 커리큘럼을 따라가고 자연스레 싫든 좋든 그 수학을 배우게 된다. 배워야만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그걸 배웠느냐 안 배웠느냐에 따라 추후에 실력적으로 스노우볼이 구를 수도 안 구를 수도 있다.

수학못하는 경제학도 = 이과적인 함량이 부족한 (실업계/학원/방구석출신) 개발자

수학못하는 경제학도, 그러니까 이과적인 함량이 부족한 개발자는 결국 내가 컴공은 이과가 아니라는 글에서 말했던 레고질하는 인간밖에 안 된다는 거다.

물론, 그 사람이 김밥집, 제육덮밥 집에서 이모들이 일 하는 거처럼 일하고 살 거라면 물론 그런 함량이 필요없긴 하지. 이과적인 함량 필요없고 오류뜨면 구글 검색이나 하고 대충 해결하고 대충 굴러가게만 설계할 수 있으면 필요없지.

내가 회계 못 해도 투자할려고 재무제표 보는 수준만 되도 투자할 수 있듯이, 이과적인 함량 부족하고 그렇게 구글 검색하고 자기 내에서 해결 못 하고 라이브러리나 쓰면서 레고질해도 아무래도 상관없지.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내가 회사에서 내가 재무제표를 조금 안다는 이유로 회계적인 일을 시켰다고 해보자. 나도 재무제표 작성 대충 할 수 있을 것이다 보고 들은 것도 있고 검색하면 어떻게든 erp 같은 걸로 회계작성 가능할 거다.

그런데 회계학과 나와서 회계 원리 다 이해하고 할 줄 아는 사람이 하는 거랑은 차이가 분명 있을 거다.

대개 작은 회사, 초기단계의 회사에선 회계적인 지식이 그렇게 많이 필요없으니 상관없을 거다. 결과물만 나오면 되니까 그 회계원리 모르고 부실하게 대충 만들어도 큰 문제가 없을 거다.

하지만 만약 회사가 커지고 대기업급 정도가 되면 결과물 뿐만 아니라 속도나 과정, 완벽도도 중요해질 거다. 그러니까 결국 재무제표로 대충 배운 나는 회계적인 업무를 할 수 없게 되고(회사에서 필요로 하지 않게 되고), 나는 그 ‘선점효과’로 인해 실무를 모르는 책임만 지는 관리자급이 되거나 다른 부서로 옮겨짐 당할 확률이 높다. 그리고 대개 그 재무부서에 들어오는 친구들은 전부 대학에서 제대로 회계를 배운 친구들을 데려올 거고.

이게 내가 하는 이야기다. 이런 식으로 결국 학력을 보게 된다는 얘기다.

코딩만 하는 개발자가 아니라, 코딩을 ‘제대로’ 하는 개발자를 원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제대로 공부한 사람을 데려갈 수밖에 없고, 방구석, 학원, 실업계 출신은 결국 ‘실력적으로’ 구분당한다는 거다. 결국 학력이 안되면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작은 회사’ 정도가 끝이란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방구석, 학원, 실업계 출신도 대기업에 가고싶어 한다는 얘기다. 대기업은 아니라도 연봉도 많이 받고 싶어한다.

작은 회사에서 다니면 정말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을 거다. 요리 지식이 뭐가 중요한가? 그냥 미원 치고 간 맞출 줄 알고 손 쓸 수 있으면 누구나 다 쓸 거다.

그런데 고급 레스토랑으로 가면 요리를 제대로 배우고 정말로 리트머스지마냥 특정한 부분에 대한 대응을 할 줄 아는 요리사를 쓰고 싶을 거고, 그러면 그 예전에 배웠던 여러 지식들로 ‘구별되는’ 그런 것들이 시작된단 얘기다.

대기업에서는 못 배운 개발자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면 함량 미달인 게 눈에 보이니까. 학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만 죽자사자 요리만 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자기가 대기업 못 가는 게 학력 때문이라 믿는다. 애초에 그 학력을 쌓는 과정에서 배운 게 없기 때문인데.

내가 매번 짜장면집이 짜장면만 잘하면 되지 굳이 마파두부를 잘 할 필요가 있냐고 매번 말한다. 어차피 내가 먹을 건 짜장면인데 굳이 마파두부까지 잘 하는 요리사는 필요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냥 짜장면 만드는 거에 숙달되서 요리 자체를 못 해도 짜장면만 잘 만들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고급 중식집에 갈 때도 그렇게 생각할까? 라는 거다. 내가 고급 중식집에 가면 맛있는 중식집을 가고 싶을 거다. 그러면 마파두부처럼 요리사의 스킬이 드러나는 음식을 잘 만드는 집으로 테스트를 해볼 수밖에 없다.

이게 학력으로 벌어지는 차이라고 보면 된다.

어디나 네 자리는 있을 거다. 하지만 네 자리는 그런 곳밖에 없을 거다. 비싼 인력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은 결국 마파두부까지 잘 만드는 사람을 원할 거고, 너는 짜장면밖에 못 만드니까 애초에 거기 들어갈 수 있는 번호표조차 못 뽑는다.

대기업에서, 비싼 연봉 줘가면서 쓸 사람을 찾는데 “굳이” 이과적인 함량이 부족한 방구석 개발자들을 쓸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정작 그 정도 급(비싼 연봉 줘가면서 쓸 사람)이 되는 애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수학 올림피아드니 뭐니 이런 거 준비했던 경험들, 이런 걸로 근본이 차이나는 애들이니까. 흔히 개발자들이 매번 말하지 않나? ‘컴공은 이과다’ 컴공에서 논리적인 걸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일 웃긴 건 컴공은 이과라는 소리를 실업계 출신 같은 애들이 한다는 거다ㅋㅋ 이과적인 함량이 쥐뿔도 없는데 코딩 몇줄 검색해서 할 줄 안다고 지가 이과라고 한다는 거다. 얘네들은 파이썬을 배우다가 다른 언어로 갈아타라고 하면 쉽게 못 하는 애들이다. 왜냐면 코딩이 논리적인 무언가가 필요한데, 자기는 그 논리적인 함량이 안 되고 그저 언어를 배우면서 배웠던 경험치들로만 코딩을 하니까 언어를 바꾸라고 하면 쉽게 못 하는 거다.

그런데 정작 실력이 되는 애들은 언어를 한 번 갈아타라고 하면 그것도 곧잘 갈아타버린다. 왜? 어차피 코딩은 언어가 아니라 수학적인 부분을 필요로 하는 거고, 그 논리만 이해할 수 있으면 언어는 도구일 뿐이니까 각잡고 갈아타면 금새 갈아탄다는 거다.

근데 이 이야기를 죽어도 납득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냐면 자기가 가치없는 사람이라는 말과 똑같으니까.

그저 하는 말이라곤 요리사가 요리만 잘 하면 된다는 말 뿐이다. 그런데 정작 다른 요리사들은 화학적인 작용도 배우고 여러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디 제육덮밥집에서 제육덮밥하는 애가 요리사가 미원이나 잘 치면 되지 마이야르 반응 같은 게 뭐가 중요하냐고 궁시렁댄다.

그러니까 제육덮밥집에 있는 거다.

결국 좋은 부모한테 좋은 교육 받은 애가 명문대에 갈 확률이 높듯이, 결국 좋은 대학에서 공부를 받은 애가 그 업계에서 좋은 실력을 가지게 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건 절대 우울한 얘기가 아니다. 이 말을 반대로 말하면, ‘논리적인 이해’를 네가 갖추고만 있다면 어딜가도 너를 무시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걔네(나 포함)는 죽어도 수학적인 걸 배우고 싶어하지 않는다.

내 얘기를 하자면,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분석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보면 수학적인 내용이 조금 나온다. 그래서 그 부분을 나는 결국 못 읽었고 완독을 할 수가 없었다.

이 뿐만 아니다 금융학과 관련 내용을 인터넷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그 수학적인 한 줄을 이해하지 못 하면 그 내용 자체를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 긴 글을 설명해서 읽을 필요가 없고 그 한 줄을 보고 이해할 수 있으면 되는데 그 한 줄을 이해를 못 한다.

나는 수학적인 것만 나오면 뇌가 정지되어버린다. 그래서 결국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분석이라는 책조차 완독을 못 했다는 거다.

완독을 하려면 수학공부를 다시 하면 된다. 근데 수학적인 거 배우라고 하면 난 하기 싫다. 이걸 왜 해야하지 나는 안 할래 너무 어려워. 대충 포기해버린다.

그런데 방구석, 학원, 실업계 출신 친구들도 똑같다. 너희가 좋은 가치를 평가받고 싶으면 이과적인 함량을 키워야한다고 말해도 수학공부와 같은 걸 하지 못 할 것이다. 안 하는 거기도 하고 못 하기도 할 것이다. 나랑 똑같이 안 하고 싶어하고 안 할래 하고 포기해버릴 것이다.

대개 학력이 낮은 애들이 공부머리가 없다. 그래서 나처럼 수학적인 면이 필요할 때 수학을 배우고 싶어도 못(안) 한다.

그런데 대학을 간 애들은 이 기본 테스트들을 통과한 친구들이고, 좋은 대학일수록 이 기본 능력치가 높을 확률이 높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그 이과적인 함량을 갖춘 애들일 확률이 높고 코딩을 배워도 걔네가 훨씬 이해가 빠르고 잘 배울 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또 이런저런 것들을 배우다보면 기본 지식 + 추가 지식 = 더 나은 실력적인 면이 생길 거고. 그러다가 이제 언어 같은 거 몇 개 배워서 그걸 개방시키는 거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결국 컴공이 인기가 없을 때야 어쨌든 인력이 필요하니까 대충 제육덮밥 하는 애라도 데려와서 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급에서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음) 이제는 컴공이 인기가 되면서 학원/실업계/방구석보다 훨씬 나은 “높은 가능성을 가진” 인력들이 시장에 쏟아지기 시작한다는 거다.

지금 제육덮밥집에서 요리하는 친구는 3할 칠 포텐은 없는 2할 5푼 치는 10년 된 내야수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지금 시장에 쏟아지는 대학 출신 중에서는 3할 쳐줄 거 같은데? 하는 0년차 신인이라고 보면 된다.

보통 어느 선수가 가치가 높을까? 항상 0년차 유망주가 훨씬 가치를 높게 지닌다. 물론 모든 유망주가 포텐이 터지는 건 아니다. 2할도 못 치고 몇년 안 되서 결국 뜻을 못 펴고 2군에만 썩다 사라질 수도 있다. 방출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네 쓰임이 있는 거고, 하지만 ‘높은 성적을 얻고 싶어하는 구단주라면’ 결국 그 포텐이 있는 0년차를 쓸 거니까. 그리고 대개 똑같이 10년이 지나면 너는 여전히 2할 5푼치는 내야수일 거고 그 10년이 지나고 보면 그 신인은 3할 2푼 정도 치는 초특급이 되어있을 수도 있단 얘기다.

 

다시 말하지만 학력차별을 조장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 얘기의 포인트는, 결국 똑같은 조건을 갖추면 똑같이 대우받을 수 있지만 흔히 공부머리가 없는 사람들은 그 공부를 안(못) 하기 때문에 그 대우를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화학적인 이해를 필요로 하는 요리사가 있다고 하면 그 화학적인 부분을 배우면 된다. 그런데 그 화학적인 이해를 왜 배워야 하냐고, 그리고 자기도 배우기 귀찮고 싫어서 안 배우니까 결국 계속 그런 취급을 받는단 얘기다.

이과적인 함량이 필요하면 이과적인 함량을 키우면 된다. 그리고 자기도 대학가면 된다. 그런데 이런저런 온갖 이유로 공부도 안 하고 대학도 안 가는데 그럼 결국 좋은 가치는 못 받는단 얘기다.

결국 너는 나처럼 12년 넘게 투자했어도 증권분석 하나 못 읽고, 금융공학적인 ELW 가치산정방식조차 이해 못 하는 찐따일 거라는 것이다. 선물옵션조차 제대로 이해 못 하는 반푼이일 것이라는 거다. 그럼 결국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투자라고는 개인투자자의 개찐따같은 투자방식밖에 없고, 나는 영원히 선물옵션을 이해하지도 못 하고 못 하니까 시도할 수도 없다. 한다고 해도 홀짝의 도박에서 벗어나질 못 한다.

결국 개발자도, 라이브러리 땡겨쓰고 대충 스택오버플로 검색하면서 대충 남이 만들어둔 거 따라서 레고질이나 하는 개발자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증권사도, 어느 IT회사도 그런 인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결국 내 연봉은 결국 고만고만한 상태에서 비슷비슷한 회사만 옮겨다니면서 ‘경력빨로’ 조금씩 높아지는 게 전부다. 아니면 어디 인맥이라도 써서 자기가 절대 못 들어갈 회사 들어가면서 연봉 뻥튀기라도 시키던지..

기본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가지지 못 했고, 그래서 못 하니까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는” 부분을 너나 나는 못 하게 되고, 결국 이왕 비싼 인력 데려올 거라면 나중에 그런 걸 시킬 수도 있는 그런 완벽한 친구를 원하게 되니 학력이 안 되는 애들은 결국 갈 자리가 많이 없다는 거다.

이 얘기가 학력차별 처럼 들리고 불편하다면 나도 모르겠다. 근데 이게 현실이다. 너도 당장 맛있는 음식점을 간다면 항상 짜장면만 먹을 땐 짜장면 대충 시켜먹다가도, 유산슬 팔보채 이런 건 졸라 잘 하는 집에서 먹어야하니 마파두부나 볶음밥 같은 걸로 그 요리가게의 실력을 테스트해보려고 하겠지.

그거랑 똑같다 우리가 사는 게.

 

군대에서 탁구 10년, 20년 쳐봐야 학원에서 프로 밑에서 1년 친 인간보다 못 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어차피 탁구를 치는 행위 자체는 둘 다 똑같겠지만 그 기본기에서 부터 그런 차이들이 발생한다.

결국 대학의 커리큘럼 내에서 체계적으로 도움 될 만한 무언가를 같이 배운 사람이 가진, 학원에선 절대 가르치지 않는 이과적인 부분들이 있고. 그걸 배운 사람과 안 배운 사람의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그런데 대개 그 교육을 못 받은 사람에게 이 얘기를 하면 너무나 불쾌해하고, 그리고 이를 따라잡기 위해선 결국 그 대학에서 배우는 ‘스킬 외적인 부분들’도 배워야한다고 하면 결국 공부머리가 없어서 그걸 배우고 싶지 않아한다. 애초에 (상위 교육과정을 못 배웠으니) 어떻게 배워야하는지도 모르고, 그 배워야하는 곳에 가지도 못 하고(공부 머리가 없으니).

그런데 이로 인해 차별받는 쪽에서는 이 현실 자체를 못 견뎌한다. “요리 공부는 필요없다 요리 공부 2-4년 해봐야 요리 공부 10년 한 실전 경험 있는 내가 더 우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가 이 이유로 인해 “학력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하면 되게 불편해하면서 너는 개발자도 아닌데 네가 뭘 아냐고 무시한다. 근데 이건 개발자만 그런 게 아니다 어느 곳이나 똑같다.

당장 XX상사 같은 곳으로 가라고 하면, 어학 능력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무역용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나 해외와 통화해야 할 때 에로사항이 발생하는 것들에서 차이가 날 것이다. 딱 그런 차이라는 것이다. XX상사에서 상사맨 고졸이라고 못 하나? 누구나 노력하면 장그래처럼 하지. 근데 그걸 뚫으려면 장그래만큼 죽자사자 해야한단 얘기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 노력을 못 한다.

코딩은 ‘언어’가 아니라고 한다.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거라고 한다. 그런데 실업계 고졸은 대부분 빡통이라(실제로 공부머리 부분에선 대부분 다 빡통이다) 그 수학적인 부분의 능력이 없다. 그럼 당연히 코딩도 허접인 거 아닌가? 걔가 하는 코딩은 그냥 언어를 배우면서 오버스택플로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지금까지 해온 경험치의 산물로 대충 레고질 하는 결과물이라는 거다. 우리가 가끔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이 공부할 때 가끔 그런 말을 한다. “야 너는 이거 이해하지말고 푸는 방법을 외워” 그렇게 푸는 방법을 외운 애가 그 수학적인 함량이 부족한 코딩맨들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네가 가고싶어하는 대기업/연봉많이주는 곳은 팔보채, 유산슬 먹을 때 중국집 탐색하는 나처럼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인재’를 데려가고 싶어할 거고 그냥 짜장면 가게는 탈락할 거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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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라는 책이 있는데, 선물 받았는데 솔직히 많이 못 읽었다. 많이 못 읽었다기보다 읽다가 굳이 이걸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조금 들어서 굳이 안 읽고 있다.

나는 원씽 이라는 책을 군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그 책에서 몇 가지 배운 게 있는데, 그 중 가장 커다란 무언가가 뭐였냐면 재미없으면 책을 덮고 의미없다고 생각되도 책을 덮고 다 읽었다고 생각되는 책도 그냥 덮는 거였다.

왜 그런 걸 배웠냐면, 그 책을 읽다가 어떤 글귀에 그런 게 있었다.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였나 뭐 그런 문구였던 거 같은데, 나는 그 글귀를 내 식대로 내 마음대로 내가 듣고싶은대로 받아들였다.

그걸 읽다가 정확히 어떤 내용인진 잘 기억 안 나지만, 책을 다 읽었다고 생각되거나 더 얻어갈 게 없다고 판단되면 그냥 그 페이지에서 책을 덮는 걸 배웠다. 왜냐면 그 책 내용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나는 결국 그 책을 완독해야한다는 생각이 끝까지 다 읽었고 후회했기 때문이다. 초반 20% 정도 읽었을 땐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끝까지 읽고 만족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책이 더 이상 할 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때 접어야한다고 그 때 깨달았는데,

그 뒤로 거기에 해당하는 책이 머니볼이었는데, 한 70 페이지 정도 읽고 매우 만족했다. 그 뒤로는 더 이상 읽지 않았다. 어차피 이 책의 내용이 여기서 완결이구나 싶었기 때문에.

여튼 그래서 아니다 싶은 책은 더 안 읽는데 이 책도 처음에는 흐음 하다가 나중에는 굳이? 하는 생각이 들어서 (왜 굳이? 라고 생각했냐면 내가 개인적으로 하는 얘기를 남의 눈으로 또 봐야하나? 같은 생각을 느껴서) 안 읽고 있다.

그 저자의 글과 내 생각이 유사한 점은 딱히 없을 수도 있는데 그냥 말하는 방식이 비슷해서 그렇게 느끼나 싶기도 하고, 솔직히 별 다를 게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내용은 다른데 바라보는 관점? 바라보는 기준? 이 유사해서 아 이 뒤에도 대충 이런 느낌의 글로 이어지겠구나.. 싶어서.

여튼 여기까지는 안 읽고 있는 이유의 이야기였고

그래서 남이 읽는다고 하면 비추천. 그냥 나랑 자세한 생각 나눌 정도로 깊게 친구하면 되지 않을까? (뜬금)

 

여하튼 문득 저 제목으로 글을 쓰는 이유가 뭐냐면 그냥 힙합 얘기가 조금 하고 싶었다.

저게 제목인데 저걸 제목으로 삼은 이유가 있긴 있구나 싶었다. 요새 사람들은 남의 이미지만 소비하면서 자기 삶을 잊으려고 한다 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인스타그램에는 뭐 절망이 없다 그런 내용의 부분이 있는데

내가 취미로 요리하는 남자 채널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왜 이렇게 화려한 채널을 보고 있을까. 그리고 약간의 현탐도 왔다. 나는 이런 채널을 보면 종종 현탐이 온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다들 현탐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채널은 은근히 인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우결 같은 프로그램도 인기가 많았고, 이 외에도 내가 지금 생각이 안 나서 예시를 들긴 힘든데 이러한 대리만족형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건 많았다.

그래서 이게 시대의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이 부분에서 가장 언급하기 좋은 건 흑인과 힙합이다. 흑인 노래를 들으면 돈 자랑, 가사 자랑이 많다. 흔히 흑인이 성공하고 자기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그런 가사를 쓴다고 하지만, 갑자기 문득 드는 생각이 그게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좋은 가사를 써도 그 가사를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자기네가 아무리 돈을 과시하고 싶어도 듣는 사람이 싫어하면 안 쓴다. 반면 그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 가사를 쓴다.

그런데 흑인은 쓴다. 힙합은 돈 자랑을 존나게 한다.

그런데 한국은 예전엔 그런 게 안 먹혔다. 2010년대 이전. 그런데 지금은 먹힌다. 아주 잘 먹히고 누구나 좋아한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일리네어 때부터 가속화되기 시작해서 (2010년대 초) 언에듀케이티드 키드의 유행 (2018년 즈음)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이게 왜 그럴까?

왜 못사는 흑인은 돈 자랑을 존나게 하고

왜 못 살게 된 지금 시대를 사는 10-20대가 돈 자랑 하는 힙합을 좋아하는가?

 

결국 삶이 힘들수록 삶을 잊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삶이 힘들수록 삶이 팍팍할수록 오히려 더 화려한 걸 찾아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명품을 쓰지 않아도 명품 자랑하는 래퍼의 노래를 듣고, 잘난 연인이 없어도 우결에서 연예인급 연인을 소비하고, 인스타에서 잘 생기고 잘 사는 사람의 이미지를 소비해야만 한다.

내가 가장 비참해질 때는 거울을 볼 때다. 거울을 보면 못 생긴 사람이 하나 있고 되게 그지같은 사람이 하나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 거 처럼 우리는 힘들수록 현실을 직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힘들수록 더 좋은 걸 보고 더 화려한 걸 쫓고 더 화려한 일상을 소비하고 싶어한다. 내가 꿈에서 깨어나면 너무나 서글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이를 소비할 수가 없었다. 주변에 다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으니까, 자기의 주변 사람들과의 무언가에서 그걸 찾아내야만 했다. 인터넷이 없었고 스마트폰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미지를 매우 간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시대가 와버렸다. 삶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으로 월 N만원만 납부하면 무제한으로 이미지와 영상을 소비하면서 남의 잘난 삶을 내것처럼 소비할 수 있다.

나도 인스타에서 잘 생긴 셀럽 사진을 보면서 연애도 안 하는데 내 옆에 저런 친구가 있는 것마냥 저런 친구와 연애라도 하는 것마냥 대리만족을 느낀다. 우리는 그저 사진을 보기 위해 팔로우하고 있는 거 뿐이지만, 그걸 볼 때마다 그런 대리만족이 있는 건 분명 사실이다.

이건 인스타 셀럽만 그런 건 아니다. 우리가 연예인을 보면 친구처럼 여긴다. 실제로 전원책 같은 사람도 항상 썰전 하던 시기에 주변에서 되게 친구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 할배가 말이다.

나도 인스타를 보면 네오 아카리랑 친구가 된 거 같고 창민이나 성호랑 친구가 된 거 같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네오 아카리와 친구도 아니고 창민이나 성호랑 친구도 아니라는 점이다. 내 손을 뻗었을 때 절대 닿지 못 하는 곳에 있는 친구들이고, 나는 평생 살아가도 저런 친구와 길거리에 지나치다 보는 거 말곤 마주할 일이 없다. 그런데 그런 친구를 내 옆에 두고 마치 내가 걔네의 친구가 된 거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단 얘기다.

그런데 그거 알고 있나? 서울대가 아닌데 서울대에서 서울대인 척 하고다니면 진짜로 자기가 서울대생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런 거처럼 우리가 단순히 우리 옆에 저런 잘난 친구들을 팔로우하고 보고 있을 뿐인데도 우리는 걔네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단 얘기다.

나는 솔직히 어느 정도 대리만족 했던 거 같다. 내가 마치 잘 생긴 사람의 친구라도 되고 잘 생긴 사람이라도 된 거마냥 약간은 소비했던 거 같다. 처음에는 그저 잘 생긴 사람 관음할려고 한 거지만, 부작용으로 그런 대리만족도 느꼈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시대가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로 바뀐 게 아니라 원래 인간은 대리만족을 하면서 살아왔다.

단지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속으로 자리 잡으면서 그걸 일상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 아닌가 싶다.

그간 힘들면 음악과 같은 그런 요소에 의지하는 장재인 같은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음악에 의지하는 시대가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소비할 수 있는 모든 컨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마약을 걸어다니면서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힘들수록 행복한 걸 보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이건 졸라 그지같이 사는 흑인이 돈자랑 힙합을 즐겨듣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고 점점 살기 팍팍해지는 한국에서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걸로 증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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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1차 대전의 원인은 유대인에 있다. 저 잔뜩 쳐먹은 돼지들을 보라. 독일 민족이 다시 건강해지려면 분노의 칼을 들어 기생충들을 섬멸해야 한다. 독일인과 유대인이 같은 침대칸을 타는 일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가? 몇 달 동안 3천 명이 넘는 유대인이 베를린으로 이사했는데,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 기생충들이 여기서 무슨 짓을 하겠는가? 이제 그 악마들의 뿌리를 뽑아야한다.

 

문득 궁금해져서 뭔가 찾아보다가 든 생각을 쓸 생각인데, 이 글은 어떤 사람들에겐 매우 불쾌한 글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무시할려고 쓴 게 아니라 그냥 ‘문득’ 했던 생각을 말한 거니까 오해하지 말아줬음 좋겠다.

그리고 저기 첫 문장은 히틀러 선동 방법 이라고 검색하면 히틀러 선동 방법이 아니라 괴벨스 선동 방법이 나오는데, 거기에 나오는 문구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당연히 히틀러가 괴벨스의 간택을 받은 거고 당연히 괴벨스는 편집자일 뿐이었는데, 이상하게 대중에게는 히틀러보다 괴벨스의 선전 방법이라고 자주 나오는 게 약간 의아한 부분이 있다.

기본 컨텐츠는 히틀러인데 편집자인 괴벨스만 가지고 편집의 신이라느니 하는 게 되게 이상한 거 같다. 히틀러 연설 영상 안 본 사람이 없을 텐데, 히틀러 말빨이 더 중요했던 게 아닌가 싶어서. 근데 시간이 정말 많이 지난 후 대중들은 선동에 대한 그 시기의 정보를 괴벨스로만 기억하고 있고 히틀러는 그냥 희대의 쓰레기 정도로 퉁 넘어가버렸다.. 고 생각하는데 여튼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저 문구를 문득 보면서 든 생각이 뭐냐면

왜 유대인은 항상 ‘쓰레기’로 지목받고 차별의 대상이 될까? 라는 생각인데, 그건 그냥 유대인이 돈을 잘 벌어서인 거 같다.

(유대인이 자본가 같은 프레이밍이 씌워진 건 당시 조건 속에서 결국 할 수 있는 게 돈 가지고 돈 놀이 하는 거였기 때문이라는 듯한 뭐 그런 얘기가 자주 보인다.)

내가 지금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결국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은 증오의 대상이 된다라는 점을 문득 떠올렸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도 부르주아니 뭐니 죽창이니 말을 되게 많이 하는데, 이게 참 신기하게도 강남에 건물 한 채 가진 사람도 이재용 같은 재벌이 극혐이라고 그러고 다들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잘 살면 죽창이니 뭐니 그런다.

그러니까 결국 나를 착취하는 인간들이 존재하고, 나를 착취하는 인간들은 나보다 잘 사니까 나보다 잘 사는 사람은 전부 죽창의 대상이 된다고 믿는 거 같단 얘기다.

그런데 사실 자기보다 조금 잘 산다고 자기를 착취하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보다 조금 잘 사는 사람을 자기를 착취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병적으로 화를 내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문득 든 생각이 그냥 어릴 때부터 그런 쪽의 사설 같은 것들을 찾아읽어서 그러니까 괴벨스의 선동을 보면 유대인을 저렇게 묘사하고 죽어야하는 대상이라고 하고 분노의 대상이라고 여기듯이, 결국 그런 식으로 분노의 대상으로 삼고 그래서 그냥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중국인이 한국에서 도움 안 되는 버러지짓을 하는 걸 욕하면 “인종차별”이라고 말하면서 자기가 보기에 자기보다 조금 잘 사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사는 사람을 전부 “죽창을 맞아야 할 사람”으로 규정하는 행동은 옳다는 듯이 생각하는 게 너무 모순된 거 같단 얘기다.

나는 그 죽창의 대상을 상정해두고 분노하는 거 자체는 마이너스 감정이 크니까 별로 보고싶진 않은데, 그렇다고 그게 잘못된 생각인가? 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

 

물론 내가 그 사람들이 가끔 짜증날 때가 있는 건 자기 기준에서 “부자”나 “부르주아”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월 300 받는 사람도 3억짜리 건물 하나 있으면 부르주아고, 20억 강남 아파트에 살아도 부르주아고, 자기보다 못 사는데 건물이라도 하나 있으면 부르주아고, 그냥 자기보다 잘 사는 사람이 다 부르주아라면 자기도 누군가에겐 부르주아일 텐데 그걸 제대로 규정하지 않는 게 1차적으로 짜증나는 거고, 그 다음으로 짜증나는 건 나보다 잘 사는 인간이 내가 마치 부르주아라는 듯이 보는 게 2차적으로 짜증난다. 가끔씩 보면 있다 즈그 할매할배가 서울에 가진 집이 있고 자기네 부모도 괜찮은 지역에 집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자기는 월급 받고 생활해야 한다고 자기를 “가난하다”라고 표현하고, 나는 자기보다 더 나쁜 조건이지만 뭐.. 가난하진 않지 (여유가 없진 않지) 라고 표현하면 나를 부르주아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느그 애미 전세집이 얼만데? 라고 물어보면 서울전세 5억 7억짜리 들어가있으면서 지방 2억짜리 아파트에서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고 “부르주아!!”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게 좀 꼬운 지점이지

뭐 잠시 얘기가 샜는데

 

하여튼 흑인 혐오나 중국인 혐오나 부르주아 혐오나 그 혐오의 원인 자체가 매우 유사한 거 같다는 말이다. 흑인이 혐오되는 건 흑인이 쓰레기라서는 아닐 것이다. 흑인이 다만 예전에 노예로 팔려오고 노예로 살았고 그래서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결국 못 사는 사람이 많으니 마약도 팔고 총도 빵빵 쏘고 그러는 것일 텐데, 결국 그 이미지가 흑인 혐오 대상이 되는 거고

중국인도 별 반 다를 바 없을 것이고

부르주아 혐오도 자기 주변에서 착취하는 자본가가 있거나 어떻게든 돈을 더 벌기 위해 우리를 착취하는 모습을 보이는 뻔뻔한 모습들을 뉴스 등지에서 보기 때문에 우리가 그 분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정작 실제로 내 주변에 부르주아를 만날 일도 없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이렇게 일을 하면서 일개미처럼 살아야 하는 게 누군가가 착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믿기 때문에’ 그러는 거 같단 얘기다.

흑인도 모두가 마약팔고 총쏘진 않을 거고, 중국인도 모두가 그렇진 않을 거고, 부르주아도 모두가 그렇진 않을 텐데 우리는 우리가 봐왔던 경험과 뉴스만을 보면서 나름의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상태에서 미디어를 통해 중국인, 흑인 등을 혐오하고 주변 사람들끼리 그 경험을 기반으로 혐오하면서 그 혐오가 확대,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가끔 주변에 여초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면서 병적으로 여혐하는 사람이나 흔히 말하는 결혼 후 개판나는 생활 등을 언급하면서 여혐을 또 재생산하지 않는가?

그런 거처럼 흑인, 중국인 등에 대한 혐오도 같아보인다.

그리고 이 혐오는 방식이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자본가나 부르주아에 대한 혐오도 별반 다를 바 없는 거 같다.

그리고 이 혐오를 더 강하게 키워주는 게 뉴스 매체인 거 같은데, 결국 조중동이나 경제신문에서 하는 노조 후려까기와 다를 바 없는 걸 여러 자칭 진보 매체라고 하는 곳에서도 똑같이 하고 있을 뿐인 거 같다.

이 생각을 문득 하니까

아 글로 돈 벌어먹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같은 생각이 들더라.

유튜브에 보면 이걸 그대로 실천하는 친구들이 많다. 우파 컨셉 잡고 박정희 찬양하고 노조 까고 할배들이 좋아하는 말 해주면 할배들이 진짜 좋아죽는다. 그게 윤서인이 대표적인 건데 윤서인 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유튜버가 그러고 다닌다.

근데 또 반대에도 그대로 있다. 진보 컨셉 잡아서 그냥 자본가 죽창 이러고 있으면 걔네들도 좋아죽는다.

결국 우리 경험에 있는 무언가들, 우리가 증오를 가지게 될 무언가들을 발견해서 그걸 무시하고 혐오하면 적어도 그걸 혐오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아래로 끌어모을 수 있단 얘기다.

그리고 그건 흑인, 유부녀, 멕시코인, 중국인 등과 같은 우리가 보기에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 뿐만 아니라 부자처럼 애매모호한 것들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데

결국 그 시절에 유대인이 죽은 이유는 결국 부자가 혐오받는 이유랑 똑같은 거였다고 보인다. 결국 이런 혐오의 감정은 결국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강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거 같다.

그런데 그게 요즘 기준에서 pc한 부분을 자극하는 거라면 우리가 잘못됐다고 언급을 하는데, 문제는 pc한 부분을 자극하지 않는 것들-부자-이 더 위험한 거 같다. 왜냐면 유대인이 그렇게 박해받은 것도 그랬을 테니까. 걔네가 잘 사는 사람이 많고 돈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이 많으니 저런 애들을 다 잡아 족쳐야한다고 그럴 수 있었겠지.. 싶어서

 

이 글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근데 내가 보기엔 그냥 그런 거 같다.

내가 따라서 한 번 써보겠다.

 

2020년 3월 대폭락의 원인은 기관에 있다. 저 잔뜩 쳐먹은 돼지들을 보라. 경제가 다시 건강해지려면 분노의 칼을 들어 기생충들을 섬멸해야 한다. 건강하게 돈을 버는 일반 회사원과 사기쳐서 돈을 버는 증권사 직원이 같은 침대 칸을 타는 일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가? 몇 달 동안 몇 천명이 넘는 증권사 직원이 여의도로 이사했는데, 화가 치밀어오른다. 그 기생충들이 여기서 무슨 짓을 하겠는가? 이제 그 악마들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이건 틀린 말이다 전적으로.

대폭락의 원인은 기관에 있지 않다.

금융가 사람이 돈을 가지고 놀고 업무량이 많아서 연봉을 많이 받는 건 맞다. 실제로 사기꾼 같은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인간들도 종종 기사로 뜬다. 그런데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일반 횡령이 종종 발생하듯이 증권쪽에서도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건데, 이런 식으로 혐오를 하려면 끝없이 할 수 있다.

부자에 대해서도 똑같은데 그냥 유대인을 부자로 바꾸면 똑같다. 자기 게임기 버리는 배우자, 흑인, 멕시코인 그 어떤 걸 넣어도 똑같다. 배우자는 게임기 버리고 자기를 통제하고 월급 다 뺏어가고 집에서 노는 쓰레기들이고, 흑인은 마약파고 총으로 사람쏘고 범죄하고 강간하는 쓰레기들이고, 멕시코인은 마약쟁이들인데

 

그런데 우리가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그러니까 그런 경향성을 가지는 조건이 있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그걸 ‘그 사람’이라고 믿는다.

나는 아직도 2020년에 관상 믿는다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어이없는데, 관상이 아예 또 어이없는 건 아니다. 왜냐면 찐따는 찐따처럼 표정을 짓고 다니고 아닌 사람은 즐겁게 표정을 짓고 다닐 건데, 그게 당연히 얼굴에 드러나겠지 그걸 10년 20년씩 하고 다녔으면. 근데 그렇다고 관상이 맞다는 소리는 틀린 거라는 거지.

근데 관상이 맞다고 할 거면 내가 종종 중국인을 혐오하는 거도 공감을 해줘야하는 거고(왜냐면 똑같은 방식의 근거니까), 내가 찐따 혐오하는 거도 공감해줘야지. 근데 그런 건 부정하는데 부자는 그래도 된다..? 이건 이상한 거 같다.

나도 돈 많이 가지고 배부른 소리하는 사람 싫다. 근데 너희들도 내가 중국인 혐오하는 거 싫지 않느냐. 중국인을 비롯해서 국내 외의 다른 못 사는 국가에서 돈을 벌겠다고 3D 직종의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건 걔네가 없었으면 임금이 올라가고 다른 사람이 행복하게 살 일들이었는데 걔네가 들어옴으로 인해 걔네가 저렴한 값에 자기 노동력을 덤핑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계속 불행하게 살아야하는 거다. 수급이 안 맞으니까. 지금 내가 하는 소리 틀린 거 하나도 없다. 당연히 공급이 부족한데 수요가 있으면 가격이 올라야하는데 인력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가? 그게 바로 중국인을 비롯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여러 가난한 국가에서 넘어오는 인간들 때문이다.

지금 너도 내 이야기를 보고 “아니 얘 뭐래..” 라고 할 거다. 아니 공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근데 이렇게 ‘그걸 문제삼고 그걸 없애야한다’라고 말하는 이 방식이 유대인은 바퀴벌레고 죽여야한다! 고 하는 거랑 똑같단 얘기다.

그리고 이건 흔히 말하는 혐오에 다 쓰이는 방법들이고, 내가 아까 말했듯이 PC한 건 “혐오하면 안 돼”라고 하지만 “PC에 포함되지 않는 것(부자)” 같은 건 당연스레 혐오를 한다는 거다.

근데 결국 그것도 하면 안 된다는 거고.

아니면 그걸 허용하고 다른 것도 다 허용해주든가.

그런데 사람들은 이건 허용하지만 저건 나쁜 거다 이런 식으로 자기 기준에서 편을 갈라버린다.

 

이런 식으로 혐오되는 감정을 이용하면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전쟁도 일으킬 수 있다. 2020년에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단지 그 시대의 상황처럼 모두가 분노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뿐이다.

1차 세계대전으로 핍박받는 독일인이 있었기 때문에 그 분노의 감정이 너무 커져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거지, 만약 그런 경제상황이 없었다면 히틀러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선전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까 결국 그런 식으로 누군가를 향해 증오와 분노의 칼날을 들이미는 건 결국 자기자신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기 가장 좋은 조건이라고 보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부자 혐오든 가난한 사람 혐오든 어떤 혐오든 간에.

 

누군가는 매체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할 것이다. 그 때 이용하기 가장 쉬운 게 특정 부분에 대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버튼 눌린 거처럼 행동하는 혐오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메갈을 욕하고 일베를 욕하면, 부자를 욕하면 가난한 사람을 욕하면, 노조를 욕하면 어딘가에서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당연시 되는 순간 처음에 그 ‘경험’ 정도로 잘 모르던 사람도 그걸 ‘원인’으로 규정해버리고 그런 식으로 병적으로 혐오하게 되고 그러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리고 아 나도 뭔가 혐오하고 무시하면 관심받을 수 있을까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나도 가난한 사람 후려까고 노조 까거나 아니면 아예 반대 노선에 있는 참여연대처럼 그런 식으로 하면 되나 그런 생각도 들고 그러더라

걍 그렇게 하면 관심이 0이 아니라 적어도 10 정도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구~ 마치 얼굴 달고 스트리밍하면 안 봐주는데 판때기 달면 오타쿠들이 좋아죽는 거처럼 말이야 거기도 하꼬는 많겠지만 0명이 아니라 50명이라도 봐주는 게 판때기 달아서인 경우도 많자너. 없었으면 0명이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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