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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1

귀여운 여동생을 가지고 싶다고 소원해왔다.

하지만 가질 방법이 없어 나는 평생을 남동생으로 살아왔다. 누나는 상냥하고 누구 앞에 내놔도 못 생겼다는 소리를 들을 일 없는 자랑할 만한 누나였지만, 결국 누나는 누나일 뿐이었다.

친구가 종종 내게 부럽다고 말한다. 나도 너희 누나 같은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나는 누나일 뿐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누나에게 그 이상의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동생을 가진 친구가 부러웠다. 너처럼 귀여운 여동생이 있으면 정말 잘 해줬을 거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듣는 친구는 항상 질색했다. 여동생은 여동생일 뿐이야. 짜증 안 나면 다행이지. 그런가? 나는 누나만 있어서 잘 모르겠는데.

오히려 누나를 가지고 있는 날 부러워했다. 하지만 내 대답도 친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누나는 누나지. 그랬더니 친구가 하는 말은, “봐 너도 그렇잖아. 가족끼리는 그럴 수가 없다니까? 여동생이라고 다른 게 아냐. 이상한 꿈 깨.”

그래도 여동생인데. 내 안의 여동생은 귀엽고 정말 아껴주고 싶어하는 존재라고. 누나가 나에게 잘 대해주는 걸 보면, 그리고 내게 선 넘는 행동을 하는 걸 보면, 나도 분명 여동생이 있으면 누나처럼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나에겐 여동생이 생겼다.

나는 여동생이 무섭다.

 

“오─빠, 오빠아. 오빠! 여기야 여기!”

학교를 마치고 나오면 여동생은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손을 흔들면서 방방 뛰고 있다. 여동생은 행복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날 반기고 있지만, 나는 여동생의 얼굴 가죽 뒤에 일그러진 기괴한 얼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여동생의 정체를 아무에게도 밝힐 수 없다.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고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니까. 내가 여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 기괴한 존재는 내 앞에서 오빠 이상해, 라고 말하면서 얼굴 가죽 뒤에서 소름끼치는 오오라를 뿜어댄다. 정말 귀여운 소녀의 얼굴이지만 나는 공포 영화에 나오는 일그러진 귀신의 얼굴을 보는 기분을 느낀다.

내 앞에 있는 이 기괴한 존재가 내 여동생이라고 믿을 수 없다. 분명 내 기억에는 없는 존재니까. 그런데 내 여동생이 아니라는 근거를 나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내 기억이, 나는 여동생이 없었다고 알려줄 뿐이다. 단지 소름끼치는 오오라가 내 여동생이 아니라 이상한 존재라는 걸 알려줄 뿐이다.

내가 구구절절 진심으로 떠들어도, 여동생 가지고 이상한 소리를 하지 말라고 혼이 날 뿐이다. 나를 가장 아껴주었던 누나조차도 나를 혼을 낸다.

 

여동생은 항상 내 앞에서 웃으며 나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어필한다.

나는 너무 무섭다.

귀신이, 유령이 나를 놀리고 기만하는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여동생과 오늘도 집으로 걸어간다. 즐겁게. 웃으면서. 연기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름끼치는 오오라가 느껴지니까.

내가 잠시 기억을 잃었을 뿐일까? 나에게 처음부터 여동생이 있었던 게 아닐까? 저 소름끼치는 오오라는 내 기분탓이 아닐까? 나도 내가 의심된다. 내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오빠, 오늘은 있지 우리 반 반장이 말야, 나한테 고백을 하는 거야.”

여동생이 팔짱을 끼려는지 내 팔을 잡아 끌려고 했는데 나는 깜짝 놀라 경직되고 말았다. 그게 티가 난다는 듯, 키가 작은 여동생은 나를 올려다본다.

“아이 참, 오빠두. 요새 왜 그러는 거야? 내가 싫어진 거야? 아니면 부끄러워? 오빠도 사춘기인 거야? 사춘기는 내가 와야하는 건데 왜 오빠가 오는 거야? 오빠는 끝날 나이인 거 아니야?”

“그러게. 하하.”

나를 해꼬지하기 위해 찾아온 외계생물 같아서, 세상에 살아있으면 안 될 존재가 자꾸만 나에게 무언가 뺏어가기 위해 존재하는 거 같아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다.

한 번은 내 기억이 틀린 거라고 여동생이라고 믿어보려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의 오오라를 잊을 수 없다. 소름끼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여동생이 생생하다. 자기가 정말로 여동생으로 보이는 거냐고 내게 묻는 거 같았다. 너는 연기만 하고 진짜라고 믿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듯 했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차라리 대놓고 이 외계생물이 내게 원하는 걸 말한다면 최대한 들어주려고 해줄 텐데, 그런 게 없다. 그저 내가 자신을 여동생으로 인지하는 걸 거부하고 있고 자신은 여동생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이 여동생이라고 여기고 있다.

분명 나는 여동생이 없는데.

집으로 가면 나는 또 가족들 앞에서 여동생과 친한 척 연기를 해야만 한다. 소름끼친다. 소름끼치는 존재와 같은 침대에서 살을 비비면서 자야만 한다. 성적인 행동까지 하면서 말이다. 살가죽 하나만 벗기면 귀신 얼굴이 나올 거 같은 이 존재와 같은 침대에서 성적인 감정까지 공유하고 자야만 한다.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여동생이 생긴 뒤 나는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여동생과 공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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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잊지 말아줘

* 창작입니다.



– 나를 잊지 말아줘 –



저녁마다 집에 같이 가던 친구가 있었다.

그 때의 나는 중학생이 되어 학원을 옮기게 됐다. 아는 얼굴은 많았다.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살았고 학교가 그렇게 많지 않아 초등학생 때 봤던 얼굴이 여럿.

그 때 봤던 얼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는 그 친구였다.

단발머리에 주근깨가 조금 있던 동글동글한 여자애.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친구. 성격은 약간 남자애 같았지만 남자애와는 달랐다.

어릴 때부터 남자애 같은 친구가 편했다. 여자라고 특별취급 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친구면 똑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자애 같은 행동을 하는 친구가 이성이어도 친구처럼 대할 수 있어 항상 편했다. 하지만 이성은 이성이라서, 남자애와 있을 때와 달리 두근거리는 마음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나의 마음을 잘 모르겠어서 확신할 순 없지만.

집으로 가는 길이 겹쳤기 때문에 집에 갈 때 같은 길로 가면 좋았다.

그 친구가 내게 어떤 감정을 품었는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조금 좋아했다. 그 친구만 좋아하는 감정은 아니었지만, 내가 대화를 하기 편하고 외모가 조금 귀여운 친구였다면 다 좋아했으니까. 그 친구도 거기에 포함되는 친구였을 뿐이니까.

그 친구와 친한,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던 다른 여자애가 그 친구에게 왜 나와 같이 다니냐고 사귀냐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친구도 장난스레 한 말일 거고, 옆에서 듣던 나도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지만, 사실은 나는 조금은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의 일이 아직도 기억나는 거 보면.

그리고 10년 넘게 지났다.

나는 내가 봐왔던 사람이 잘 잊혀지지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하다보면, 친구 하나를 찾으면 그의 친구 주변으로 가지처럼 뻗어나간 친구 네트워크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잘라버린 과거의 네트워크지만, 그 친구들은 하나도 자르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일부처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친구 하나를 찾으면 대개 20명 이상의 친구를 발견할 수 있다.

언젠가 중학교 동창의 페이스북을 들어가게 됐고, 거기서 발견해버렸다.

너무 반가웠다. 10년이 지나도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시 잘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메시지를 보내봤고 친구 신청도 걸어봤다.

친구 신청을 받아주어 좋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누구냐는 질문을 해왔다. 마음 아팠다. 그래서 나 그 때 누구라고,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을 말하면 그 친구가 기억해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끊어져있는 친구.

나에게 여전히 빛나는 기억은,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어둠일 수 있다. 나도 모든 사람을 기억하진 못 한다. 중학생이 되어 길가다 마주친 초등학교 때의 친구는, 얼굴은 기억나도 어떤 친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을 때가 내게도 있었으니까. 고작 초등학교 4학년에서 중학생이 되었을 뿐이었는데.

중학생을 벗어난 지 10년도 넘게 지난 시점에서 기억해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아름다운 기억이 그저 나만의 기억이 되버린 시간.

내가 아름다웠다면, 내가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20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초라한 모습의 나라서, 평범조차 못 한 나라서 기억하지 못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우울감은 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나를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떠나고 10년이 지나도, 내가 더나고 20년이 지나도.

나를 기억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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