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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라는 책이 있는데, 선물 받았는데 솔직히 많이 못 읽었다. 많이 못 읽었다기보다 읽다가 굳이 이걸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조금 들어서 굳이 안 읽고 있다.

나는 원씽 이라는 책을 군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그 책에서 몇 가지 배운 게 있는데, 그 중 가장 커다란 무언가가 뭐였냐면 재미없으면 책을 덮고 의미없다고 생각되도 책을 덮고 다 읽었다고 생각되는 책도 그냥 덮는 거였다.

왜 그런 걸 배웠냐면, 그 책을 읽다가 어떤 글귀에 그런 게 있었다.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였나 뭐 그런 문구였던 거 같은데, 나는 그 글귀를 내 식대로 내 마음대로 내가 듣고싶은대로 받아들였다.

그걸 읽다가 정확히 어떤 내용인진 잘 기억 안 나지만, 책을 다 읽었다고 생각되거나 더 얻어갈 게 없다고 판단되면 그냥 그 페이지에서 책을 덮는 걸 배웠다. 왜냐면 그 책 내용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나는 결국 그 책을 완독해야한다는 생각이 끝까지 다 읽었고 후회했기 때문이다. 초반 20% 정도 읽었을 땐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끝까지 읽고 만족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책이 더 이상 할 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때 접어야한다고 그 때 깨달았는데,

그 뒤로 거기에 해당하는 책이 머니볼이었는데, 한 70 페이지 정도 읽고 매우 만족했다. 그 뒤로는 더 이상 읽지 않았다. 어차피 이 책의 내용이 여기서 완결이구나 싶었기 때문에.

여튼 그래서 아니다 싶은 책은 더 안 읽는데 이 책도 처음에는 흐음 하다가 나중에는 굳이? 하는 생각이 들어서 (왜 굳이? 라고 생각했냐면 내가 개인적으로 하는 얘기를 남의 눈으로 또 봐야하나? 같은 생각을 느껴서) 안 읽고 있다.

그 저자의 글과 내 생각이 유사한 점은 딱히 없을 수도 있는데 그냥 말하는 방식이 비슷해서 그렇게 느끼나 싶기도 하고, 솔직히 별 다를 게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내용은 다른데 바라보는 관점? 바라보는 기준? 이 유사해서 아 이 뒤에도 대충 이런 느낌의 글로 이어지겠구나.. 싶어서.

여튼 여기까지는 안 읽고 있는 이유의 이야기였고

그래서 남이 읽는다고 하면 비추천. 그냥 나랑 자세한 생각 나눌 정도로 깊게 친구하면 되지 않을까? (뜬금)

 

여하튼 문득 저 제목으로 글을 쓰는 이유가 뭐냐면 그냥 힙합 얘기가 조금 하고 싶었다.

저게 제목인데 저걸 제목으로 삼은 이유가 있긴 있구나 싶었다. 요새 사람들은 남의 이미지만 소비하면서 자기 삶을 잊으려고 한다 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인스타그램에는 뭐 절망이 없다 그런 내용의 부분이 있는데

내가 취미로 요리하는 남자 채널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왜 이렇게 화려한 채널을 보고 있을까. 그리고 약간의 현탐도 왔다. 나는 이런 채널을 보면 종종 현탐이 온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다들 현탐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채널은 은근히 인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우결 같은 프로그램도 인기가 많았고, 이 외에도 내가 지금 생각이 안 나서 예시를 들긴 힘든데 이러한 대리만족형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건 많았다.

그래서 이게 시대의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이 부분에서 가장 언급하기 좋은 건 흑인과 힙합이다. 흑인 노래를 들으면 돈 자랑, 가사 자랑이 많다. 흔히 흑인이 성공하고 자기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그런 가사를 쓴다고 하지만, 갑자기 문득 드는 생각이 그게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좋은 가사를 써도 그 가사를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자기네가 아무리 돈을 과시하고 싶어도 듣는 사람이 싫어하면 안 쓴다. 반면 그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 가사를 쓴다.

그런데 흑인은 쓴다. 힙합은 돈 자랑을 존나게 한다.

그런데 한국은 예전엔 그런 게 안 먹혔다. 2010년대 이전. 그런데 지금은 먹힌다. 아주 잘 먹히고 누구나 좋아한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일리네어 때부터 가속화되기 시작해서 (2010년대 초) 언에듀케이티드 키드의 유행 (2018년 즈음)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이게 왜 그럴까?

왜 못사는 흑인은 돈 자랑을 존나게 하고

왜 못 살게 된 지금 시대를 사는 10-20대가 돈 자랑 하는 힙합을 좋아하는가?

 

결국 삶이 힘들수록 삶을 잊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삶이 힘들수록 삶이 팍팍할수록 오히려 더 화려한 걸 찾아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명품을 쓰지 않아도 명품 자랑하는 래퍼의 노래를 듣고, 잘난 연인이 없어도 우결에서 연예인급 연인을 소비하고, 인스타에서 잘 생기고 잘 사는 사람의 이미지를 소비해야만 한다.

내가 가장 비참해질 때는 거울을 볼 때다. 거울을 보면 못 생긴 사람이 하나 있고 되게 그지같은 사람이 하나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 거 처럼 우리는 힘들수록 현실을 직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힘들수록 더 좋은 걸 보고 더 화려한 걸 쫓고 더 화려한 일상을 소비하고 싶어한다. 내가 꿈에서 깨어나면 너무나 서글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이를 소비할 수가 없었다. 주변에 다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으니까, 자기의 주변 사람들과의 무언가에서 그걸 찾아내야만 했다. 인터넷이 없었고 스마트폰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미지를 매우 간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시대가 와버렸다. 삶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으로 월 N만원만 납부하면 무제한으로 이미지와 영상을 소비하면서 남의 잘난 삶을 내것처럼 소비할 수 있다.

나도 인스타에서 잘 생긴 셀럽 사진을 보면서 연애도 안 하는데 내 옆에 저런 친구가 있는 것마냥 저런 친구와 연애라도 하는 것마냥 대리만족을 느낀다. 우리는 그저 사진을 보기 위해 팔로우하고 있는 거 뿐이지만, 그걸 볼 때마다 그런 대리만족이 있는 건 분명 사실이다.

이건 인스타 셀럽만 그런 건 아니다. 우리가 연예인을 보면 친구처럼 여긴다. 실제로 전원책 같은 사람도 항상 썰전 하던 시기에 주변에서 되게 친구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 할배가 말이다.

나도 인스타를 보면 네오 아카리랑 친구가 된 거 같고 창민이나 성호랑 친구가 된 거 같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네오 아카리와 친구도 아니고 창민이나 성호랑 친구도 아니라는 점이다. 내 손을 뻗었을 때 절대 닿지 못 하는 곳에 있는 친구들이고, 나는 평생 살아가도 저런 친구와 길거리에 지나치다 보는 거 말곤 마주할 일이 없다. 그런데 그런 친구를 내 옆에 두고 마치 내가 걔네의 친구가 된 거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단 얘기다.

그런데 그거 알고 있나? 서울대가 아닌데 서울대에서 서울대인 척 하고다니면 진짜로 자기가 서울대생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런 거처럼 우리가 단순히 우리 옆에 저런 잘난 친구들을 팔로우하고 보고 있을 뿐인데도 우리는 걔네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단 얘기다.

나는 솔직히 어느 정도 대리만족 했던 거 같다. 내가 마치 잘 생긴 사람의 친구라도 되고 잘 생긴 사람이라도 된 거마냥 약간은 소비했던 거 같다. 처음에는 그저 잘 생긴 사람 관음할려고 한 거지만, 부작용으로 그런 대리만족도 느꼈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시대가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로 바뀐 게 아니라 원래 인간은 대리만족을 하면서 살아왔다.

단지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속으로 자리 잡으면서 그걸 일상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 아닌가 싶다.

그간 힘들면 음악과 같은 그런 요소에 의지하는 장재인 같은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음악에 의지하는 시대가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소비할 수 있는 모든 컨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마약을 걸어다니면서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힘들수록 행복한 걸 보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이건 졸라 그지같이 사는 흑인이 돈자랑 힙합을 즐겨듣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고 점점 살기 팍팍해지는 한국에서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걸로 증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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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지 않은 에그 샌드위치

최근에 샌드위치를 이것저것 만들어봤는데 느낀 바로는 감자 들어가는 감자사라다류의 앙꼬(?)를 만들면 안 된다. 그러다 에그샌드위치 생각나서 아 이건 쉽고 간단하겠다 싶어서 만들었는데 되게 만족했다.

맛은 딱히 특별한 게 없고, 개인적으로 샌드위치를 먹는다면 이삭토스트같은 게 더 맛있기 때문에 이삭토스트식으로 그 안에 들어갈 내용물을 만들어서 하는 게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오늘 문득 한 건 그렇게 하려 했지만 달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달걀 샌드위치 맛은 편의점 달걀 샌드위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편의점 달걀 샌드위치의 포인트는 달걀맛과 단맛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탕으로는 비비기가 되게 어렵고, 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꿀을 썼다.

달걀을 삶는다 그리고 달걀을 으깬다. 아마 숟가락이나 이런 거 쓰면 탱탱하게 삶아져서 잘 안 될 거다. 아마 비닐장갑 끼고 손으로 짓눌러야 할 거다. 뜨거울 수 있으니 좀 식힌 다음에 해도 된다.

다 으깨고 나면, 끈적거림이 없기 때문에 쓸 수 없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꿀을 적당히 넣는다. 얼마나 적당히 해야하는진 모른다. 점도를 만들어주려고 넣는 게 아니라 그냥 단맛 만들려고 넣는 거다.

적당히 넣으면 된다. 적당히가 얼만지는 묻지마라. 어차피 자기가 먹을 샌드위치니 맛은 알아서 자기 입맛에 맞추면 된다.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넣을거고 단맛을 안 좋아하는 사람은 덜 넣을 테니 달면 단대로 먹고 안 달면 안 단대로 먹으면 된다. 다만 안 단 거는 꿀을 더 넣으면 되는데 존나 단 거는 해결방법이 없으니 맛 보면서 넣었으면 좋겠다.

꿀을 넣고 숟가락으로 비벼주면 된다.

그리고 조금 먹어보고 괜찮다 싶으면 간은 됐다.

그럼 이제 마요네즈를 넣어야한다. 마요네즈는 그 계란들을 접착시켜주기 위해 넣는 거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적당량 넣으면 된다. 그 적당히는 마요네즈는 일단 넣어서 비벼보면 된다. 얼마 안 들어갔을 때는 계란의 색이 되게 밝다. (노른자 위주의 색이) 그런데 양을 늘릴수록 되게 짙은 노란색이 된다. 그게 적당량이다. 그리고 많이 넣어도 뭐 문제되는 맛은 안 생기기니 상관없고 중간중간 한 입씩 먹어보면 된다.

그럼 여기서 이제 안에 넣을 건 다 완성됐는데

여기 다음에 넣을 건 식빵이어도 되고 모닝롤이어도 되고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식빵을 추천하는데, 식빵을 추천하는 이유는 나는 그냥 식빵을 먹을 게 아니라 겉테두리를 잘라낸 식빵을 버터에 구워 먹을거기 때문이다.

버터를 소고기 넣을 때 만큼 잘라내서 팬에 두른다. 그리고 거기에 식빵을 올린다. 큰 팬이면 좋다 큰 팬이면 여러개 올릴 수 있으니까. 이왕이면 그 고기 전기불판 사각형이어도 상관없다. 버터를 대충 두르고 식빵을 대충 굽는다. 다시 말하지만 테두리를 잘라내야한다. 그래야 더 맛있다.

식빵 잘 구울 필요도 없고 대충 버터 두른 팬에 올리고 버터 잘 스며들고 갈변하면 된다. 뒤집어서 버터 남은 부분에 또 올려주면 되고 만약 버터가 이미 다 스며들어서 없어도 딱히 상관없다.

대신 너무 바싹 익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토스트 하는 거 아니니까. 대충 버터만 머금으면 된다. 갈변 살짝 하고.

그럼 이 상태에서 달걀 해놓은 걸 두숟갈 정도 퍼서 식빵 위에 올려주고 접어서 먹으면 된다. 맛은 버터에 구운 식빵에 달걀사라다를 넣은 맛이다. 그냥 편의점에서 파는 달걀샌드위치에서 샌드위치가 구워진 거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둘 다 맛있는 거라서 실패하기도 어렵고 대충 보편적으로 먹을 만한 맛이 나온다. 문제는 되게 번거롭고 귀찮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이 해서 여러명이 먹는 게 아니라면(소풍나가는 게 아니라면) 해먹을 이유가 없다.

난 파오후라서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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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1차 대전의 원인은 유대인에 있다. 저 잔뜩 쳐먹은 돼지들을 보라. 독일 민족이 다시 건강해지려면 분노의 칼을 들어 기생충들을 섬멸해야 한다. 독일인과 유대인이 같은 침대칸을 타는 일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가? 몇 달 동안 3천 명이 넘는 유대인이 베를린으로 이사했는데,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 기생충들이 여기서 무슨 짓을 하겠는가? 이제 그 악마들의 뿌리를 뽑아야한다.

 

문득 궁금해져서 뭔가 찾아보다가 든 생각을 쓸 생각인데, 이 글은 어떤 사람들에겐 매우 불쾌한 글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무시할려고 쓴 게 아니라 그냥 ‘문득’ 했던 생각을 말한 거니까 오해하지 말아줬음 좋겠다.

그리고 저기 첫 문장은 히틀러 선동 방법 이라고 검색하면 히틀러 선동 방법이 아니라 괴벨스 선동 방법이 나오는데, 거기에 나오는 문구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당연히 히틀러가 괴벨스의 간택을 받은 거고 당연히 괴벨스는 편집자일 뿐이었는데, 이상하게 대중에게는 히틀러보다 괴벨스의 선전 방법이라고 자주 나오는 게 약간 의아한 부분이 있다.

기본 컨텐츠는 히틀러인데 편집자인 괴벨스만 가지고 편집의 신이라느니 하는 게 되게 이상한 거 같다. 히틀러 연설 영상 안 본 사람이 없을 텐데, 히틀러 말빨이 더 중요했던 게 아닌가 싶어서. 근데 시간이 정말 많이 지난 후 대중들은 선동에 대한 그 시기의 정보를 괴벨스로만 기억하고 있고 히틀러는 그냥 희대의 쓰레기 정도로 퉁 넘어가버렸다.. 고 생각하는데 여튼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저 문구를 문득 보면서 든 생각이 뭐냐면

왜 유대인은 항상 ‘쓰레기’로 지목받고 차별의 대상이 될까? 라는 생각인데, 그건 그냥 유대인이 돈을 잘 벌어서인 거 같다.

(유대인이 자본가 같은 프레이밍이 씌워진 건 당시 조건 속에서 결국 할 수 있는 게 돈 가지고 돈 놀이 하는 거였기 때문이라는 듯한 뭐 그런 얘기가 자주 보인다.)

내가 지금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결국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은 증오의 대상이 된다라는 점을 문득 떠올렸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도 부르주아니 뭐니 죽창이니 말을 되게 많이 하는데, 이게 참 신기하게도 강남에 건물 한 채 가진 사람도 이재용 같은 재벌이 극혐이라고 그러고 다들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잘 살면 죽창이니 뭐니 그런다.

그러니까 결국 나를 착취하는 인간들이 존재하고, 나를 착취하는 인간들은 나보다 잘 사니까 나보다 잘 사는 사람은 전부 죽창의 대상이 된다고 믿는 거 같단 얘기다.

그런데 사실 자기보다 조금 잘 산다고 자기를 착취하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보다 조금 잘 사는 사람을 자기를 착취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병적으로 화를 내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문득 든 생각이 그냥 어릴 때부터 그런 쪽의 사설 같은 것들을 찾아읽어서 그러니까 괴벨스의 선동을 보면 유대인을 저렇게 묘사하고 죽어야하는 대상이라고 하고 분노의 대상이라고 여기듯이, 결국 그런 식으로 분노의 대상으로 삼고 그래서 그냥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중국인이 한국에서 도움 안 되는 버러지짓을 하는 걸 욕하면 “인종차별”이라고 말하면서 자기가 보기에 자기보다 조금 잘 사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사는 사람을 전부 “죽창을 맞아야 할 사람”으로 규정하는 행동은 옳다는 듯이 생각하는 게 너무 모순된 거 같단 얘기다.

나는 그 죽창의 대상을 상정해두고 분노하는 거 자체는 마이너스 감정이 크니까 별로 보고싶진 않은데, 그렇다고 그게 잘못된 생각인가? 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

 

물론 내가 그 사람들이 가끔 짜증날 때가 있는 건 자기 기준에서 “부자”나 “부르주아”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월 300 받는 사람도 3억짜리 건물 하나 있으면 부르주아고, 20억 강남 아파트에 살아도 부르주아고, 자기보다 못 사는데 건물이라도 하나 있으면 부르주아고, 그냥 자기보다 잘 사는 사람이 다 부르주아라면 자기도 누군가에겐 부르주아일 텐데 그걸 제대로 규정하지 않는 게 1차적으로 짜증나는 거고, 그 다음으로 짜증나는 건 나보다 잘 사는 인간이 내가 마치 부르주아라는 듯이 보는 게 2차적으로 짜증난다. 가끔씩 보면 있다 즈그 할매할배가 서울에 가진 집이 있고 자기네 부모도 괜찮은 지역에 집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자기는 월급 받고 생활해야 한다고 자기를 “가난하다”라고 표현하고, 나는 자기보다 더 나쁜 조건이지만 뭐.. 가난하진 않지 (여유가 없진 않지) 라고 표현하면 나를 부르주아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느그 애미 전세집이 얼만데? 라고 물어보면 서울전세 5억 7억짜리 들어가있으면서 지방 2억짜리 아파트에서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고 “부르주아!!”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게 좀 꼬운 지점이지

뭐 잠시 얘기가 샜는데

 

하여튼 흑인 혐오나 중국인 혐오나 부르주아 혐오나 그 혐오의 원인 자체가 매우 유사한 거 같다는 말이다. 흑인이 혐오되는 건 흑인이 쓰레기라서는 아닐 것이다. 흑인이 다만 예전에 노예로 팔려오고 노예로 살았고 그래서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결국 못 사는 사람이 많으니 마약도 팔고 총도 빵빵 쏘고 그러는 것일 텐데, 결국 그 이미지가 흑인 혐오 대상이 되는 거고

중국인도 별 반 다를 바 없을 것이고

부르주아 혐오도 자기 주변에서 착취하는 자본가가 있거나 어떻게든 돈을 더 벌기 위해 우리를 착취하는 모습을 보이는 뻔뻔한 모습들을 뉴스 등지에서 보기 때문에 우리가 그 분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정작 실제로 내 주변에 부르주아를 만날 일도 없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이렇게 일을 하면서 일개미처럼 살아야 하는 게 누군가가 착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믿기 때문에’ 그러는 거 같단 얘기다.

흑인도 모두가 마약팔고 총쏘진 않을 거고, 중국인도 모두가 그렇진 않을 거고, 부르주아도 모두가 그렇진 않을 텐데 우리는 우리가 봐왔던 경험과 뉴스만을 보면서 나름의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상태에서 미디어를 통해 중국인, 흑인 등을 혐오하고 주변 사람들끼리 그 경험을 기반으로 혐오하면서 그 혐오가 확대,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가끔 주변에 여초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면서 병적으로 여혐하는 사람이나 흔히 말하는 결혼 후 개판나는 생활 등을 언급하면서 여혐을 또 재생산하지 않는가?

그런 거처럼 흑인, 중국인 등에 대한 혐오도 같아보인다.

그리고 이 혐오는 방식이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자본가나 부르주아에 대한 혐오도 별반 다를 바 없는 거 같다.

그리고 이 혐오를 더 강하게 키워주는 게 뉴스 매체인 거 같은데, 결국 조중동이나 경제신문에서 하는 노조 후려까기와 다를 바 없는 걸 여러 자칭 진보 매체라고 하는 곳에서도 똑같이 하고 있을 뿐인 거 같다.

이 생각을 문득 하니까

아 글로 돈 벌어먹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같은 생각이 들더라.

유튜브에 보면 이걸 그대로 실천하는 친구들이 많다. 우파 컨셉 잡고 박정희 찬양하고 노조 까고 할배들이 좋아하는 말 해주면 할배들이 진짜 좋아죽는다. 그게 윤서인이 대표적인 건데 윤서인 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유튜버가 그러고 다닌다.

근데 또 반대에도 그대로 있다. 진보 컨셉 잡아서 그냥 자본가 죽창 이러고 있으면 걔네들도 좋아죽는다.

결국 우리 경험에 있는 무언가들, 우리가 증오를 가지게 될 무언가들을 발견해서 그걸 무시하고 혐오하면 적어도 그걸 혐오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아래로 끌어모을 수 있단 얘기다.

그리고 그건 흑인, 유부녀, 멕시코인, 중국인 등과 같은 우리가 보기에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 뿐만 아니라 부자처럼 애매모호한 것들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데

결국 그 시절에 유대인이 죽은 이유는 결국 부자가 혐오받는 이유랑 똑같은 거였다고 보인다. 결국 이런 혐오의 감정은 결국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강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거 같다.

그런데 그게 요즘 기준에서 pc한 부분을 자극하는 거라면 우리가 잘못됐다고 언급을 하는데, 문제는 pc한 부분을 자극하지 않는 것들-부자-이 더 위험한 거 같다. 왜냐면 유대인이 그렇게 박해받은 것도 그랬을 테니까. 걔네가 잘 사는 사람이 많고 돈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이 많으니 저런 애들을 다 잡아 족쳐야한다고 그럴 수 있었겠지.. 싶어서

 

이 글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근데 내가 보기엔 그냥 그런 거 같다.

내가 따라서 한 번 써보겠다.

 

2020년 3월 대폭락의 원인은 기관에 있다. 저 잔뜩 쳐먹은 돼지들을 보라. 경제가 다시 건강해지려면 분노의 칼을 들어 기생충들을 섬멸해야 한다. 건강하게 돈을 버는 일반 회사원과 사기쳐서 돈을 버는 증권사 직원이 같은 침대 칸을 타는 일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가? 몇 달 동안 몇 천명이 넘는 증권사 직원이 여의도로 이사했는데, 화가 치밀어오른다. 그 기생충들이 여기서 무슨 짓을 하겠는가? 이제 그 악마들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이건 틀린 말이다 전적으로.

대폭락의 원인은 기관에 있지 않다.

금융가 사람이 돈을 가지고 놀고 업무량이 많아서 연봉을 많이 받는 건 맞다. 실제로 사기꾼 같은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인간들도 종종 기사로 뜬다. 그런데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일반 횡령이 종종 발생하듯이 증권쪽에서도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건데, 이런 식으로 혐오를 하려면 끝없이 할 수 있다.

부자에 대해서도 똑같은데 그냥 유대인을 부자로 바꾸면 똑같다. 자기 게임기 버리는 배우자, 흑인, 멕시코인 그 어떤 걸 넣어도 똑같다. 배우자는 게임기 버리고 자기를 통제하고 월급 다 뺏어가고 집에서 노는 쓰레기들이고, 흑인은 마약파고 총으로 사람쏘고 범죄하고 강간하는 쓰레기들이고, 멕시코인은 마약쟁이들인데

 

그런데 우리가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그러니까 그런 경향성을 가지는 조건이 있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그걸 ‘그 사람’이라고 믿는다.

나는 아직도 2020년에 관상 믿는다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어이없는데, 관상이 아예 또 어이없는 건 아니다. 왜냐면 찐따는 찐따처럼 표정을 짓고 다니고 아닌 사람은 즐겁게 표정을 짓고 다닐 건데, 그게 당연히 얼굴에 드러나겠지 그걸 10년 20년씩 하고 다녔으면. 근데 그렇다고 관상이 맞다는 소리는 틀린 거라는 거지.

근데 관상이 맞다고 할 거면 내가 종종 중국인을 혐오하는 거도 공감을 해줘야하는 거고(왜냐면 똑같은 방식의 근거니까), 내가 찐따 혐오하는 거도 공감해줘야지. 근데 그런 건 부정하는데 부자는 그래도 된다..? 이건 이상한 거 같다.

나도 돈 많이 가지고 배부른 소리하는 사람 싫다. 근데 너희들도 내가 중국인 혐오하는 거 싫지 않느냐. 중국인을 비롯해서 국내 외의 다른 못 사는 국가에서 돈을 벌겠다고 3D 직종의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건 걔네가 없었으면 임금이 올라가고 다른 사람이 행복하게 살 일들이었는데 걔네가 들어옴으로 인해 걔네가 저렴한 값에 자기 노동력을 덤핑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계속 불행하게 살아야하는 거다. 수급이 안 맞으니까. 지금 내가 하는 소리 틀린 거 하나도 없다. 당연히 공급이 부족한데 수요가 있으면 가격이 올라야하는데 인력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가? 그게 바로 중국인을 비롯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여러 가난한 국가에서 넘어오는 인간들 때문이다.

지금 너도 내 이야기를 보고 “아니 얘 뭐래..” 라고 할 거다. 아니 공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근데 이렇게 ‘그걸 문제삼고 그걸 없애야한다’라고 말하는 이 방식이 유대인은 바퀴벌레고 죽여야한다! 고 하는 거랑 똑같단 얘기다.

그리고 이건 흔히 말하는 혐오에 다 쓰이는 방법들이고, 내가 아까 말했듯이 PC한 건 “혐오하면 안 돼”라고 하지만 “PC에 포함되지 않는 것(부자)” 같은 건 당연스레 혐오를 한다는 거다.

근데 결국 그것도 하면 안 된다는 거고.

아니면 그걸 허용하고 다른 것도 다 허용해주든가.

그런데 사람들은 이건 허용하지만 저건 나쁜 거다 이런 식으로 자기 기준에서 편을 갈라버린다.

 

이런 식으로 혐오되는 감정을 이용하면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전쟁도 일으킬 수 있다. 2020년에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단지 그 시대의 상황처럼 모두가 분노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뿐이다.

1차 세계대전으로 핍박받는 독일인이 있었기 때문에 그 분노의 감정이 너무 커져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거지, 만약 그런 경제상황이 없었다면 히틀러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선전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까 결국 그런 식으로 누군가를 향해 증오와 분노의 칼날을 들이미는 건 결국 자기자신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기 가장 좋은 조건이라고 보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부자 혐오든 가난한 사람 혐오든 어떤 혐오든 간에.

 

누군가는 매체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할 것이다. 그 때 이용하기 가장 쉬운 게 특정 부분에 대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버튼 눌린 거처럼 행동하는 혐오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메갈을 욕하고 일베를 욕하면, 부자를 욕하면 가난한 사람을 욕하면, 노조를 욕하면 어딘가에서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당연시 되는 순간 처음에 그 ‘경험’ 정도로 잘 모르던 사람도 그걸 ‘원인’으로 규정해버리고 그런 식으로 병적으로 혐오하게 되고 그러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리고 아 나도 뭔가 혐오하고 무시하면 관심받을 수 있을까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나도 가난한 사람 후려까고 노조 까거나 아니면 아예 반대 노선에 있는 참여연대처럼 그런 식으로 하면 되나 그런 생각도 들고 그러더라

걍 그렇게 하면 관심이 0이 아니라 적어도 10 정도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구~ 마치 얼굴 달고 스트리밍하면 안 봐주는데 판때기 달면 오타쿠들이 좋아죽는 거처럼 말이야 거기도 하꼬는 많겠지만 0명이 아니라 50명이라도 봐주는 게 판때기 달아서인 경우도 많자너. 없었으면 0명이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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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끼 주의사항

미리 말하자면 난 요리사가 아니고 내가 하는 말 중에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물삼겹과 다를 바 없는 소리가 있을 수도 있다.

 

일단 나는 조리용 온도계를 사용한 적은 있는데 고기 구울 때는 사용해본 적이 없다. 조리용 온도계를 알게 된 지도 얼마 안 됐다. 저번에 치킨할 때 그 때 처음 샀다. 그리고 고기를 완벽하게 하는 방법은 온도계를 쓰는 게 답이라고 몇몇 유튜버가 그래서 흠 그런가 하고만 있었고, 어차피 일자 조리용 온도계르 조리중에 쓸 수가 없어서 새로 사지 않는 이상 쓸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항상 시간에 의존해서 스테이키를 만들어왔다는 걸 미리 알림

일단 나는 17년인가? 그 때 스테이크를 처음 만들어봤다. 주변에 누가 스테이크 해먹는 걸 보고 별로 안 어려운가? 나도 해보고 싶은데 라는 마음으로 그 때 처음 사서 시작해봤고 나한텐 딱히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 기껏해야 제이미 올리버 (화질구지) 고든 램지 (화질구지) 번역 영상이 전부였다. 지금도 고든램지 스테이크 나 제이미 올리버 스테이크 라고 치면 상단에 뜨는 영상들이다.

여하튼 저 영상을 본 거 빼고는 주변에 할 줄 아는 사람한테 물어봐도 그냥 글로서 대충 알려주고 주의사항 뭐 이런 건 하나도 안 알려줬다. 그냥 고든램지 스테이크 영상에 있는 그대로 글자만 쓴 게 전부였다. 자신의 실패담 같은 거도 없었고 주의사항이나 어떻게 해야한다 이런 게 전혀 없었다.

그래서 혹시나 누군가가 스테이끼를 하게 된다면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단 고기를 잘 골라야한다. 나같은 경우는 한우는 비싸고 어차피 연습하고 싶은 거니까 저렴한 고기를 사게 됐다. 처음에는 모양이 이쁘다는 이유로 구이용 부채살을 샀는데 당연히 구이가 되어버렸고 (스테이크가 될 수 없는 존재의 고기들이었다 맛은 있었는데 그게 끝이었다)

그 뒤에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두꺼운 스테이크용 고기를 팔 때 몇 번 사왔다. 나는 당연히 ‘미국산’ 을 샀다. 가격 차이가 너무 심해서. 그리고 미국산 중에서도 싼 거, 스테이크 모양인 걸 샀는데 그건 대체로 윗등심살이나 척아이롤이었다.

척아이롤은 한 번도 산 적이 없거나 딱 한 번 샀을 거다 아마.

척아이롤은 이름만 봐도 척아이롤이라서 이게 고기인가 뭔지 몰라서 구매를 안 했고, 내가 산 건 보통 윗등심살이었다.

윗등심살은 대개 100g당 호주산 4천원이나 미국산 4천원 정도에 파는 일이 많은데, (내가 마트 자주 다닐 때 우리 동네 마트에선 그랬다) 이건 비싸다고 생각해서 안 샀고 가끔씩 윗등심살이 2천원대에 풀릴 때가 있었다. 그걸 샀었다.

대개 나처럼 이런 고기를 살 확률이 높은데 (잘 할 자신도 없는 사람이 한우 100g당 9천원 만원하는 걸 사진 않겠지),

이 고기들은 맛있을 때도 있고 맛 없을 때도 있다.

그리고 한우는 정말 예쁘게 썰려 나오는 반면 이 고기들은 가끔씩 개차반으로 썰려나올 때가 많다. 우리가 바람의 검심 같은 무사 만화를 보면 베었을 때 쇼쇽 하고 단면이 깨끗하게 잘리는 고수의 검술이 있다. 그렇게 잘려나오는 고기가 있는 반면 마치 어디 고문 영상에서나 나올 법한 톱질하는 거처럼 잘려나오는 고기도 있다.

당연히 톱질한 거처럼 잘린 고기는 단면이 울퉁불퉁한데, 이 고기들은 이상하게 잘 안 익는다. 원인은 잘 모르겠다 단면이 문제인지 원래 맛없고 질기고 안 익는 면이라 안 잘리는 건진 잘 모르겠다.

여하튼 고기를 구매할 때는 단면이 최대한 매끄럽게 되어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고기의 색이 중요한데 흔히 마블링이라고 그런다 고기에 박혀있는 그 뭐라해야 되나 지방? 한우를 보면 되게 무슨 은하수처럼 나와있는 반면 미국산 척아이롤을 보면 시뻘건 고기가 있다. 안심을 보면 비슷한 색을 띄고 있는데 그래서 안심도 집에서 직접 해먹으면 맛이 없다. 밖에서 파는 건 잘 모르겠구연.

윗등심살도 적당히 하얀 게 들어가있는 (한우급은 당연히 아니고 새빨간 수준은 아니다 중간에 뼈는 아닌데 하얀 뼈대같은 게 있고 적당히 하얀 게 좀 퍼져있는 것들이 있다) 걸 선택해야한다. 만약 갔는데 이런 고기가 하나도 없다? 안 사는 걸 추천한다. 이건 마트에서 자주 봐야만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척아이롤은 딱봐도 뭔가 이상하게 빨갛다. 반면 살치살 같은 걸 보면 적당히 하얀 게 퍼져있는데 윗등심살 같은 경우는 그 중간 타입 정도라고 보면 된다. 하여튼 척아이롤 같이 생긴 윗등심살은 사실상 척아이롤이니까 피하라는 것이다.

윗등심살과 척아이롤이 유사한 부위에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검색을 해보니 이에 따른 논란거리도 있고, 어휘차이라는 말도 있고 하여튼 말이 많다. 하여튼 그래서인지 척아이롤과 다를 바 없는 윗등심살을 종종 보는데, 이게 내가 표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척롤 = 윗등심살이고 척아이롤 = 알목심이라고 나오는데, 여하튼 존나 큰 차이가 없는 족같은 저렴한 분위들이라는 것만 알아두면 된다.

대개 4천원으로 팔 때는 확실히 척아이롤이랑 다른데 2천원으로 팔 때는 척아이롤과 똑같은 수준인 경우가 있다! 여하튼 그렇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척아이롤과 다를 바 없는 고기를 타겟으로 하기 때문에 맛없는 척아이롤은 피해야하고 그러다보면 지금 내가 말하는 기준대로 골라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한 5번 넘게 실패했고 10번 정도 시도해봤을 때 뭔가 다른 게 있다는 걸 깨닫고 단면이 매끄럽지 않고 너무 빨간 고기는 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창 퇴근하면서 마트에 들르던 시절이 있었는데 목요일마다 고기가 리셋된 걸로 기억한다. 안 팔리면 연장되는 때도 있었고. 하여튼 맨날 정육코너 앞 지나갈 때마다 오늘은 어떤 윗등심이 왔나 하면서 확인하고 위 조건에 만족하는 3천원 이하의 윗등심살이 있으면 사왔다. (가끔 4천원일 때도 사온 적 있긴 함)

그때부터는 뭔가 아 이제 좀 되는 거 같은데? 하고 느꼈다.

왜냐 맛없는 고기를 맛있게 만들려는 노력보다 그냥 처음부터 맛있는 고기를 사면 맛있게 만들 노력을 별로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정말 쉽게 성공하고 싶다면 그냥 한우를 사면 된다 다만 조리를 할 줄 모르면 태워먹을 수도 있다.

여하튼 우리는 이렇게 고기를 하나 낚아채왔다.

그럼 여기에 소금도 적당량 뿌리고 (그냥 님들이 고기 구워먹을 때 그 소금정도면 된다 그리고 맛소금 뿌리는 거 아니다 ㅡㅡ 고운소금 말고 약간 결정이 있는 소금을 쓰시오) 올리브유도 뿌리고 대충 슥슥 비벼주면 된다.

해동은 시킬 필요 없다. 내가 해동을 40분~1시간 해야한다는 말을 듣고 항상 그렇게 했었는데 어느 순간 귀찮아서 안 했는데 하나 안 하나 맛 차이는 쥐뿔도 없고 조리도 쥐뿔도 차이 안 난다는 걸 옛날에 이미 깨달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걸 안 했는데

최근에 승우아빠 유튜브 같은 걸 보면 그딴 해동 몇도 떨어지지도 않는다고 의미없다고 욕하는 걸 보고 내가 틀리지 않았군.. 하고 생각을 많이 했다.

여하튼 그래도 상온에 놔두는 걸 추천하는 이유는 소금 때문이다. 별로 차이 안 나서 나는 대충하는데 소금은 실제로 뿌려두면 시간 지나서 스며들기 때문에 차이가 있긴 있을 것이다. 나는 차이 안 나서 안 하지만.

 

이렇게 준비가 끝났다. 여기서 조금 더 필요한 건 숙주, 마늘, 후추, 버터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다 갖다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스테이크를 구우면서 숙주를 신경쓴다? 나도 아직도 스트레스 받아서 안 하는 것들이다. 옛날엔 항상 당연히 해야하는 걸로 믿었는데 의미없다고 생각해서 안 한다.

마늘은 넣어주면 좋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야하는 게 마늘을 구워먹을 게 아니라 마늘향을 입히는 거다. 알리오올리오도 마늘’향’을 입히는 건데 우리가 조센징들이라 마늘을 존나 좋아해서 마늘을 팍팍 넣는 거지 이탈리아인이 마늘 팍팍 넣는 거 보면 오우 쉿 너 지금 뭐하는 거야 한다. 하여튼 마늘 기름을 뽑아내서 입히는 게 아니라 마늘향 입히는 거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딱히 안 해도 상관없다 하면 좋고. 근데 귀찮고 정신없다. 30초 혹은 1분마다 뒤집는 것도 은근히 힘들다.

그리고 마늘이 없으니 다진마늘을 넣겠어! 같은 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 스테이크로 한 짓은 아닌데 내가 똑같은 이유로 마늘 넣어야 할 때 다진마늘을 넣은 적이 있는데 보통 후라이팬이 뜨거워서 다진마늘은 시꺼매지고 다진마늘이 팬에 늘러붙고 고기 밑에 다진마늘 때문에 다진마늘이 닿은 부위들이 안 익는 그런 불쌍사를 겪게된다. 애초에 마늘기름을 차근차근 뽑아내서 소스화에 쓰는 알올과는 다르다. 지금 하는 고기 굽는 건 당장 바베큐 파티할 때 쓰는 그런 도구에서 쌩불로 구워도 되는 것이다. 단지 잘 굽기 위해 기름칠을 한 거 뿐이다..

후추는 취향껏 하면 되고 버터는 넣는 걸 추천하는데 버터를 넣고 나서 올리브유랑 섞인 버터를 숟가락으로 퍼서 계속 위에 뿌려주는 식으로 해야한다. 안 해도 카라멜맛이 입혀지기야 하겠지만. 여튼 좀 더 풍미를 만들어주는 거지 안 해도 딱히 상관없다.

그래서 이 4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건데 나는 초보때부터 이걸 굳이 하면서 힘들게 먹으라고 하고 싶지 않다.. 차차 적응하면서 버터도 넣어보고 마늘도 막 보벼 누구라도 할 수 있게 보벼 하는 걸 추천한다.

 

여튼 이미 고기에 올리브유도 발라놔서 굳이 팬에 올리브유도 안 뿌려도 되고 그냥 이대로 팬 달궈서 (팬이 확실히 뜨거워졌을 때) 고기를 올리면 된다.

고기 굵기에 따라 총 조리 시간은 당연히 다르게 걸린다.

우리가 이걸 얼마나 구워야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조리를 하게 될 줄 알고도 가끔씩 실패하는 일이 생기는데, 조리용 온도계를 쓰면 뭐 65도를 기다린다 하면 65도 찍히는 걸 보면 되니까 그런 게 편한 거다.

그리고 한 면만 계속 구우면 탈 거 같은 느낌이 막 들 때가 있다. 그래서 30초 혹은 1분 기준으로 양면 똑같이 구워주는 걸 추천한다. 그리고 양쪽 면을 같은 시간으로 익혀야한다. 한 면은 2분 익히고 한 면은 4분 익히면 고기를 잘랐을 때 많이 익힌 면은 더 익고 덜 익힌 면은 덜 익는 불쌍사를 보게 된다.

보통 1.5cm 우리동네 이마트 기준으로는 대개 총 조리시간 8분 정도가 걸린다. 이건 조리시간을 확답할 수 없다. 조리용 온도계를 얼마를 설정해야하는지를 보고(나도 모른다) 그 온도에 맞춰 구우면 된다.

그럼 이렇게 하면

성공했을 수도 있고 실패했을 수도 있다.

일단 조리 부분에서 실패하는 건 흔히 연기 많이 난다고 쫄았을 때다. 스테키를 하면 연기가 조금 많이 난다. 탈 거 같으면 불을 줄여야겠지만 아무리 연기가 많이 나도 고기는 안 타고 잘 익고 있는 상황이 종종 있다.

그런데 연기가 많이 나고 고기가 탈 거 같으니까 불을 줄이거나 1분씩 4번x2를 해야하는데 쫄아서 3분 하고 꺼버리고 썰어봤더니 안에 안 익는 경우가 있다.

나는 이렇게 실패를 두 번인가 해봤다.

어차피 웬만해선 안 타니까 자꾸 고기 들추지도 말고 그냥 쌩까고 익히면 된다.

다른 실패는 이제 숙주니 마늘이니 같이 하겠다고 깝치다가 숙주에 정신 쓰느라 고기에 소홀해지고, 마늘에 막 10개씩 처넣어놓고 막 안 타게 한다고 혼자 애쓰거나 아니면 자기가 고기를 굽는 건지 마늘을 굽는 건지도 모른 채로 막 정신없이 하다가 마늘 태우고 혼자 헛짓거리하는 경우다.

대개 고기를 똑바로 뒤집는 걸 못 하고 이런 걸 같이 하면 고기에 숙주 부스러기나 마늘 탄 부분이 막 들러붙거나 아니면 팬에서 마늘 태웠는데 고기 뒤집다가 마늘 태운 부분에 고기 묻히거나 뭐 그런 일들이 생긴다. 맛에는 크게 변화가 없겠지만 기분이 나쁘다.

나는 고기 굽는 거 익숙해지기까지 꽤 오래걸렸는데 위의 헛짓거리를 계속 계속 계속 했다. 어느 순간 아 시발 이게 아니야 하고 숙주도 마늘도 안 한다. 그냥 마늘을 넣고 싶으면 마늘을 따로 조리해라. 마늘향 입히고 싶으면 굳이 마늘 바르지 말고 그냥 미리 올리브유에 마늘 여러개 넣고 약불에 살살 달군 다음에 마늘 스윽 빼고 그 뒤에 하던가. 채소와 함께 하려고 하지마라!!

그래서 고기에만 집중해서 굽는다치면

성공했을까?

나는 이렇게 하고도 실패한 적이 많다. 이유는 아주 다양한데, 요새는 인터넷 주문으로 고기를 많이 산다. 그러면 가끔 내가 원하는 이미지의 고기가 아닌 고기들이 올 때가 있다. 전체적으로 평평한 고기를 고르고 싶은데 가끔 한 면이 조금 더 두껍고 옆으로 갈수록 얇아지는 그런 고기들이 있다.

나는 당연히 두꺼운 면을 기준으로 조리를 했으니 얇은 면은 더 바싹 익혀지고 탈까 싶어 조금 일찍 고기를 회수하면 굵은 쪽의 고기는 덜 익는 그런 불쌍사가 발생한다. 고기는 원래 평평했는데 자꾸 눌려지다보니 얇아지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귀찮아서 그런 걸 해야지 하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흔히 워크맨 아웃백 영상 같은 걸 보면 고기굽는 애들이 고기를 모양 이쁘게 해서 따로 담아둔다. 그런 식으로 아마 모양을 잡아서 담아두면 전체적으로 평평해지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귀찮아서 안 하는데.

그럼 이렇게 평평하게 다 하면 성공할까?

아니다 네가 부채살을 샀다면 그거도 실패다. 근데 그건 고기가 실패했다기보다 그냥 부채살의 문제인데, 부채살의 중심에는 무슨 근육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아주 질긴 무언가가 있다.

그건 먹을 수 없다. 존나 질기다.

그런데 이걸 모르는 나는 와 고기 완전 잘됐는데 하면서 막 썰었는데 이 중앙 부분은 이상하게 썰리지도 않고 (소고기 잘 모르던 시절) 먹긴 먹어야겠는데 해서 똑같이 썰어서 먹으면 질겨서 질겅질겅 씹다가 퉷 한 적이 있다. 당시엔 내가 실패한 건가? 이잉 했는데 알고보니 부채살 특유의 문제였다.

참고로 구이용 부채살은 얇아서 이런 거 없는데 스테키용 부채살을 할 때만 항상 이런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부채살을 사면 안에 제거하고 조리하는 건 어렵고 귀찮으니까 조리를 한 다음에 칼질을 할 때 중앙 부분은 제외하고 덜어내듯이 그런 식으로 먹었다. 맛은 있었다.

그리고 살치살 같은 거도 문제가 조금 있는데, 살치살 같은 건 다른 부위에 비해 크기가 조금 작다. 다른 곳도 다 그런진 모르겠는데 우리동네에서 파는 건 항상 부위가 작았다. 살치살은 한 팩에 3개 들어있고 윗등심은 한 팩에 1개 들었다. 그런 차이가 난다. 그런데 스테이크를 하면 3개를 동시에 뒤집는 게 은근히 스트레스 받는다. 그리고 살치살이 이상하게 길쭉하게 나오는데 또 한 쪽은 굵고 한 쪽은 얇은 특이한 모양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조금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살치살 1개만 조리하는 사람이야 상관없는데 나는 살치살을 사면 그 한 팩에 들어있는 걸 다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항상 좁은 팬에 3개를 다 올리고 하는데 가끔씩 정성이 덜 들어간 고기들이 있는 거 같다.

 

하여튼 고기는 쉽게 구울 수 있고 이렇게만 구워도 아웃백 스테이크보다 낫다. 내가 소고기를 밖에서 거의 안 먹는데 2017년 6월에 코엑스에서 모 님들이랑 퀘사디아 먹으러 갔다가 못 먹어서 그 근처의 스테이크 가게에서 먹은 적이 있는데 거기 스테이크는 정말 맛이 없었다 농담이 아니라 그냥 1분씩 뒤집기만 하는 거 8분만해도 그 스테이크보단 맛있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 스테이크는 5만원이고 내가 하는 스테이크는 윗등심살 100g당 3천 x 4 정도라서 12000원이다. 그래서 나는 밖에서 스테이크를 안 사먹는다. 5만원대 스테이크 중에서 맛있는 스테이크라는 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만약 이렇게 다 하고도 잘 한 거 같은데 고기가 심심할 수 있다. 실제로 소고기는 약간 심심한 맛이 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면 다음에 버터를 넣어라. 버터를 넣으면 심심한 맛은 거의 없어진다. 4분정도 조리했을 때 버터를 적당량 넣고 (너무 많이 넣으면 버터맛만 날 것이다 고든램지가 얼마나 넣는지 대충 봐라 영상으로) 숟가락으로 팬 기울여서 계속 숟가락으로 퍼서 뿌려줘라. 그럼 고기에 버터가 스며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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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너먼트 VS 리그제

재미없는 경기는 존재한다

이 때 말했었다.

재미없는 경기는 실존하지만, 원래 스포츠라는 게 리그제고 ‘자기 팀 경기만 보는 게’ 정상이라고. 모든 경기를 다 보는 이스포츠 문화가 이상한 거라고.

야구에서도 수준 낮은 경기는 존재하지만 자신이 어떤 팀의 팬이기 때문에 1:0으로 이기든 2:0으로 이기든 8:7로 이기든 뭐든 다 재밌다.

다만 대부분의 야구팬이 좋아하는 건 1:0의 경기보다는 8:7처럼 역전에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고 홈런포의 짜릿함 안타의 짜릿함이 있을 때를 더 선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팀 팬은 어쨌든 이기면 재밌는 경기다.

이건 실사례로 간단하게 증명할 수 있는데, SK와이번스는 김성근 시절에 ‘노잼 야구’라고 타 팬들에게 비방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SK와이번스의 팬이 빠르게 늘어난 시절이 그 시절이다. 재미가 없으면 안 봐야하는데 왜 볼까?

다들 강한 팀, 우승하는 팀을 좋아할 대상으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밌는 경기를 해도 정말로 특이한 수준의 급이 아닌 이상(예 : LCK내의 APK프린스) 주목을 못 받고, APK프린스 같은 주목받는 팀이 기깔나는 게임 만들어주는 거보다 그냥 2연속 우승 두 번 하는 게 더 팬을 잘 빨아들인다.

뭐 져도 재밌는 경기? 그딴 건 없다.

젠지가 팬이 없는 이유는 젠지가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젠지가 못 하기 때문이다. 롤드컵 우승팀에게 못 한다는 수식어를 왜 붙이냐고 하는데 못 하는 게 맞으니까 못 한다고 하는 거다.

젠지가 롤드컵 우승할 때조차 LCK에서 우승해서 간 팀이 아니다. 아니 쟤네 또 롤드컵만 진출했네! 였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강팀이라는 이미지가 없는 상태에서) 우승까지 한 거다.

거기다 내가 아까도 말했듯이 “2연 우승” 할 때 팬이 많이 생긴다고 했다. 왜냐면 1회 우승으론 우승했다고 사람들이 크게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얘네는 LCK에서조차 우승을 못 했고 롤드컵에서 그저 우승 한 번 한 게 끝이었다. 뜬금없이 말이다. 그러니 성적으로 보면 롤드컵 우승까지 한 팀인데 강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고 그래서 팬이 없는 거라고 봐야한다.

여튼 팀 얘기를 조금 했는데 리그제는 결국 자기 팀의 팬이 자기 팀 경기를 봐주는 게 기본 베이스다.

 

하지만 대회의 본질적인 재미 자체는 토너먼트가 훨씬 재밌다.

초반에는 흥미가 약간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16강, 8강, 4강 이렇게 좁혀질수록 우승권에 들어갈수록 점점 강팀끼리 매칭이 되고, 점점 우승 상금이라는 절실함, 그리고 4강 이내로 좁혀들어오면서 만들어진 스토리 라인들을 풀면서 되게 재밌어진다.

(대회 흥행을 위해서는 인기 많은 팀이 있어야겠지만. 스타 개인리그에서도 조밥같은 애들만 있으면 리그의 흥행이 실패할 수 있었다)

하지만 토너먼트에서 임요환이랑 홍진호가 붙어서 임진록 한다? 강민이랑 마재윤(..)이 붙어서 성전이 치뤄진다? 하면 난리가 났다. 그런 식으로 경기 하나하나에 스포트라이트가 가니까 그런 식으로 라이벌이 매칭되면 엄청난 주목을 해준다.

하지만 모든 팀이 번갈아가면서 N번씩 하는 리그는 별로 스토리라인이 잡힐 거도 없고 그냥 진행하는 많은 경기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닥 메리트가 없다. 하다못해 자기팀팬들조차 그렇게 중히 여기진 않는다. 뭐 질 수도 있지. 빡치진 하지만. 딱 이 정도다.

하지만 토너먼트에선 걸린 게 많다보니 그 이기고 지는 게 마치 돈 내기 많이 걸린 무언가처럼 여겨진다. 응원하는 팀들도 여기서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조금 더 긴장하게 되고(WBC, 올림픽 야구를 생각해보면 된다), 약팀은 하위 단계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상위 리그로 갈수록 재밌어질 확률이 높다.

근데 결국 문제는

인기 많은 팀이 일찍 떨어지면 어떡하냐 는 게 대회 흥행에서 매우 신경쓰이는 부분이고, 대회 자체로 흥해야하는 게 아니라 대회를 보는 ‘팬’이 늘어나고 그 팀을 응원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본질적인 대회 파이가 커진다는 점에서 토너먼트 방식은 (계속 누군가가 떨어져야만 하니까) 그 부분에서 좋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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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1

귀여운 여동생을 가지고 싶다고 소원해왔다.

하지만 가질 방법이 없어 나는 평생을 남동생으로 살아왔다. 누나는 상냥하고 누구 앞에 내놔도 못 생겼다는 소리를 들을 일 없는 자랑할 만한 누나였지만, 결국 누나는 누나일 뿐이었다.

친구가 종종 내게 부럽다고 말한다. 나도 너희 누나 같은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나는 누나일 뿐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누나에게 그 이상의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동생을 가진 친구가 부러웠다. 너처럼 귀여운 여동생이 있으면 정말 잘 해줬을 거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듣는 친구는 항상 질색했다. 여동생은 여동생일 뿐이야. 짜증 안 나면 다행이지. 그런가? 나는 누나만 있어서 잘 모르겠는데.

오히려 누나를 가지고 있는 날 부러워했다. 하지만 내 대답도 친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누나는 누나지. 그랬더니 친구가 하는 말은, “봐 너도 그렇잖아. 가족끼리는 그럴 수가 없다니까? 여동생이라고 다른 게 아냐. 이상한 꿈 깨.”

그래도 여동생인데. 내 안의 여동생은 귀엽고 정말 아껴주고 싶어하는 존재라고. 누나가 나에게 잘 대해주는 걸 보면, 그리고 내게 선 넘는 행동을 하는 걸 보면, 나도 분명 여동생이 있으면 누나처럼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나에겐 여동생이 생겼다.

나는 여동생이 무섭다.

 

“오─빠, 오빠아. 오빠! 여기야 여기!”

학교를 마치고 나오면 여동생은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손을 흔들면서 방방 뛰고 있다. 여동생은 행복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날 반기고 있지만, 나는 여동생의 얼굴 가죽 뒤에 일그러진 기괴한 얼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여동생의 정체를 아무에게도 밝힐 수 없다.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고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니까. 내가 여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 기괴한 존재는 내 앞에서 오빠 이상해, 라고 말하면서 얼굴 가죽 뒤에서 소름끼치는 오오라를 뿜어댄다. 정말 귀여운 소녀의 얼굴이지만 나는 공포 영화에 나오는 일그러진 귀신의 얼굴을 보는 기분을 느낀다.

내 앞에 있는 이 기괴한 존재가 내 여동생이라고 믿을 수 없다. 분명 내 기억에는 없는 존재니까. 그런데 내 여동생이 아니라는 근거를 나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내 기억이, 나는 여동생이 없었다고 알려줄 뿐이다. 단지 소름끼치는 오오라가 내 여동생이 아니라 이상한 존재라는 걸 알려줄 뿐이다.

내가 구구절절 진심으로 떠들어도, 여동생 가지고 이상한 소리를 하지 말라고 혼이 날 뿐이다. 나를 가장 아껴주었던 누나조차도 나를 혼을 낸다.

 

여동생은 항상 내 앞에서 웃으며 나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어필한다.

나는 너무 무섭다.

귀신이, 유령이 나를 놀리고 기만하는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여동생과 오늘도 집으로 걸어간다. 즐겁게. 웃으면서. 연기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름끼치는 오오라가 느껴지니까.

내가 잠시 기억을 잃었을 뿐일까? 나에게 처음부터 여동생이 있었던 게 아닐까? 저 소름끼치는 오오라는 내 기분탓이 아닐까? 나도 내가 의심된다. 내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오빠, 오늘은 있지 우리 반 반장이 말야, 나한테 고백을 하는 거야.”

여동생이 팔짱을 끼려는지 내 팔을 잡아 끌려고 했는데 나는 깜짝 놀라 경직되고 말았다. 그게 티가 난다는 듯, 키가 작은 여동생은 나를 올려다본다.

“아이 참, 오빠두. 요새 왜 그러는 거야? 내가 싫어진 거야? 아니면 부끄러워? 오빠도 사춘기인 거야? 사춘기는 내가 와야하는 건데 왜 오빠가 오는 거야? 오빠는 끝날 나이인 거 아니야?”

“그러게. 하하.”

나를 해꼬지하기 위해 찾아온 외계생물 같아서, 세상에 살아있으면 안 될 존재가 자꾸만 나에게 무언가 뺏어가기 위해 존재하는 거 같아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다.

한 번은 내 기억이 틀린 거라고 여동생이라고 믿어보려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의 오오라를 잊을 수 없다. 소름끼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여동생이 생생하다. 자기가 정말로 여동생으로 보이는 거냐고 내게 묻는 거 같았다. 너는 연기만 하고 진짜라고 믿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듯 했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차라리 대놓고 이 외계생물이 내게 원하는 걸 말한다면 최대한 들어주려고 해줄 텐데, 그런 게 없다. 그저 내가 자신을 여동생으로 인지하는 걸 거부하고 있고 자신은 여동생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이 여동생이라고 여기고 있다.

분명 나는 여동생이 없는데.

집으로 가면 나는 또 가족들 앞에서 여동생과 친한 척 연기를 해야만 한다. 소름끼친다. 소름끼치는 존재와 같은 침대에서 살을 비비면서 자야만 한다. 성적인 행동까지 하면서 말이다. 살가죽 하나만 벗기면 귀신 얼굴이 나올 거 같은 이 존재와 같은 침대에서 성적인 감정까지 공유하고 자야만 한다.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여동생이 생긴 뒤 나는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여동생과 공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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